“자신과 사회를 위해 큰 족적을 남겼을 인생의 함금기를 전두환쿠테타가 산산조각내고 말았습니다. 40대의 한참 일할 나이에 군사독재 정권의 희생양이 됐고, 해직뒤에 엄습해온 병마는 귀중한 가족들의 생계마저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80년해직언론인 장인영(60). 그가 오랜 병마를 이기고 최근 발표한 ‘어둠을 헤치면서’(삼성출판사)는 경제부기자로 촉망받던 한 젊은 기자의 삶을 군사독재 정권이 어떻게 허망하게 무너뜨렸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66년 시사통신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한 그는 80년 12월31일, 14년만에 기자직을 박탈당했다. 1도1사 조치 및 기존 5개 통신사를 폐사하고 연합통신사를 신설, 수백명의 기자들을 거리로 내몰았던 언론통폐합 조치에 따른 것이다.

해직이후 그의 삶은 병마와의 싸움 그 자체였다. 해직전후 술, 담배에 빠져있던 그는 82년 5월 한밤중 양동이로 피를 쏟고 응급실에 실려가서야 급성결핵이라는 진단을 받았고, 계속되는 불면증과 노이로제로 신경안정제와 소화제, 수면제로 하루하루를 연명해야 했다.

그는 급기야 94년 8월 신경안정제 과다복용으로 소변, 대변이 완전마비되는 예기치않은 부작용으로 서울대 정신병동에 강제입원 됐고, 우울증뿐만 아니라 홧병이 합쳐진 울화병이라는 진단을 받아야 했다. 수면제없이는 몇시간도 잠을 자지 못하는 그는 수면제를 끊은지 10여일째 되는날 자살을 감행하기도 했다. 당시의 고통을 그는 이렇게 표현한다. “주체할 수 없는 고통에서 벗어나기위해 노모에게는 불효자로 처자식에게는 배신자가 될 것을 결심했었노라고.”

지금 그는 건강을 되찾았다. 지난 3월부터는 통원 치료를 받을 만큼 병이 호전됐으며 청소부, 건축잡부에 이어 심부름센터에서까지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처절했던 17년의 삶을 공개하는데 부끄러움을 느껴 주저도 했다는 그는 해직기자의 아픔을 체험한 자로서 무언가 이 사회에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을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전두환이 앗아간 기자직 17년은 누가 보상할 것인가. 개인의 운명으로 돌리고 싶지만 해직기자 문제는 결코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

현재 해직언론인의 배상 및 명예회복과 관련해서는 정동채의원 등 국민회의 소속 의원 79명이 지난 3월 발의한 ‘1980년 해직언론인의 배상 등에 관한 특별조치법안’이 국회에 제출된 상태. 그러나 아직까지 해당 상임위인 문화체육공보위에 상정조차 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80년 당시 해직기자는 약 1천3백명으로, 현재까지 복직된 언론인은 2백~3백명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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