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도 끝났는데 이제 좀 쉬어도 되는 것 아니냐는 말에 조은숙 씨는 “계속할 것”이라고 짧게 끊었다. “남들이 안 하니까 나라도 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반문이었다.

조은숙씨는 이런 심정으로 7년여 간을 ‘언론계’에 몸담아왔다. 활동분야는 주로 모니터 작업. 숭실대 섬유공학과 89학번인 조씨는 대학신문 기자로 활동하던 91년 민주언론운동협의회와 연을 맺게 된 것을 계기로 늘상 부릅뜬 눈으로 언론을 지켜봐왔다.

대학생 꼬리표를 떼고 어엿한 직장인이 되어서도 조씨는 ‘본업’과 ‘부업’을 넘나들며 모니터 작업을 계속해왔고 급기야는 올해 9월 몇몇 지인들과 ‘매체비평은 우리 스스로’ 모임(매비우스)을 꾸리면서 직장까지 ‘때려치우는’ ‘사고’를 치고 말았다. 덕분에 조씨는 지난 석달 동안 ‘땡전’ 한푼 벌지 못하고 직장 다니며 모아놓은 돈만 ‘까먹고’ 있다.

조씨는 “그래도 나는 나은 편”이라고 말한다. 매비우스 회원으로 선감연 방송팀에 파견나가 일했던 강에스더 씨 등 두명은 선감연에서 나오는 활동비마저 매비우스에 꼬박꼬박 ‘헌납’했다는 것. 그래서인지 조씨는 매비우스가 후원회원을 모집하고 있는 사실을 유별나게 강조했다.

조씨는 돈도 안 되고, 성과도 가시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모니터 작업에 뭐 그리 열성이냐는 물음에 이렇게 되받아쳤다. “그나마 했으니까 이만큼 나아진 것 아닌가.”

조씨가 평가하는 이번 대선보도는 ‘평균점.’ 대선기간 내내 그가 담당했던 MBC를 비롯한 TV3사의 대선보도가 92년 대선보도에 비해서는 상당히 나아졌다는 게 그의 평이다. 후보간 시간 배정이나 화면 처리 등에서 형식적 중립을 지켰다는 것. 하지만 보도가 흥미 위주로 이루어지고, 정책 차별화 보도가 전무하다시피했던 것은 큰 흠이라는 지적도 덧붙였다.

조씨는 이런 평가 뒤에 한가지 단서를 달았다. TV3사의 대선보도에 대한 이런 평가는 11월 중순까지로 국한된다는 것. “대선이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TV3사는 ‘발가벗기’ 시작했다.

SBS는 출처도 밝히지 않은 채 여론조사결과를 보도하면서 대선이 양자대결구도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도했으며, KBS는 오익제의 평양 기자회견을 보도하는 등 ‘북풍’보도에 적극적이었다.”

TV3사의 메인뉴스와 함께 주된 모니터 대상으로 놨던 TV토론회에 대한 일침도 잊지 않았다. “내용과 형식에서 차별성을 띠는 토론회가 전혀 없었다. 사세 과시용으로 경쟁적으로 토론회 유치에만 신경썼지 유권자의 알권리를 위해 차별화된 토론회를 이끌어나가지는 못했다. 누차 지적된 것처럼 패널들의 불공정성도 큰 문제였고.”

이런 평가가 나오기까지 조씨는 수많은 낮과 밤을 바쳐야 했다. 매일 아침 9시에 서대문 사무실로 출근해 해가 떠있는 동안에는 전날 모니터한 뉴스 평가서를 작성하고, 청탁원고를 썼고, 해가 지면 뉴스와 하루가 멀다하고 열린 TV토론회를 모니터해야 했다.

평균 귀가시간은 자정. 그나마 이는 TV토론회가 없는 날이었고 TV토론회가 열리면 모니터해야지, 사후 짧게나마 평가 토론해야지, 그래서 귀가 시간은 새벽 2∼3시경. 과년한 ‘처자’가 밤 이슬을 마다않고 모니터 작업에 몸바치고 마음 바친 것이다.

조씨는 “이젠 평상심으로 돌아가야 할 때”라면서 “일상활동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TV3사의 메인뉴스는 물론 드라마, 오락, 다큐멘터리, 토론프로그램 등으로 모니터 대상 프로그램을 넓히는 게 조씨가 말하는 일상활동이다. 남들이 숨을 고르면서 한시름 놓을 때 일을 더 벌이겠다는 것이다.

남들이 안 하는 일들을 찾아다니는 조씨의 열정이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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