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
‘날림’보도에 ‘유령조사’까지 횡행
‘공표금지’조항 현실화 검토해야


TV토론회와 함께 이번 대선을 이끈 쌍두마차는 여론조사보도였다. 후보자에 대한 유권자의 반응 추이를 객관적 데이터에 기초해 전달한다는 점에서 여론조사는 대선보도의 ‘발전’을 이끄는 하나의 힘이 될 것이라는 평을 받았었다. 기자들의 감이나 현장스케치에 의존한 ‘주먹구구식’ 판세보도나, 각당의 근거없는 판세분석을 중계보도하는 그간의 모습을 일소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부정적이었다. 언론사의 영향력 강화 수단으로, 또는 특정 후보 편들기용으로 여론조사가 악용되는 사례가 다반사로 나타난 것이다.

지지도와 호감도, 그리고 자질을 마구잡이로 혼용하고, 마감 시간에 쫓겨 표본을 날림으로 구성하는 행태가 버젓이 이루어졌다. 여론조사 결과에 대한 보도도 ‘날림’이었다. 설문문항조차 제대로 공개하지 않는가하면, 오차한계 범위란 용어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해설기사에서 버젓이 ‘역전’이란 단어가 튀어나오기도 했다. 심지어 오차한계 범위 내에 있는 순위인데도 ‘1위 부동’이란 단어까지 써가며 제목을 뽑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여론조사보도가 비난의 도마위에 오른 것은 객관성을 생명으로 하는 여론조사에 정치성을 가미했기 때문. 특정후보에 대한 유·불리 사정에 따라 여론조사보도 시점을 조율하거나, 제목을 작위적으로 뽑는 행태가 언론계는 물론 정치권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더욱이 일부 방송은 출처 불명의 여론조사결과를 보도하면서 ‘양자대결구도’와 같이 특정 후보에 유리한 내용을 리포트하는 상식 이하의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이같은 정치적인 보도태도는 여론조사 공표금지기간인 11월 26일 이후 더욱 기승을 부렸다. 정체 불명의 여론조사결과가 외신의 허울을 쓰고 버젓이 보도되는가 하면, 선거 막판 대선전을 양자대결로 몰아가기 위해 여론조사가 ‘동원’되기도 했다.

유령여론조사의 남발은 곧바로 선거법상의 여론조사 공표금지 조항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법정 선거기간 내내 여론조사결과를 공표하지 못하도록 한 것은 갖가지 부작용은 물론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여론조사 공표를 무제한으로 풀어놓을 경우 지역감정과 사표방지심리를 더욱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반론의 주된 내용이었다. 특히 공표금지시한 직전 이루어진 각 언론의 여론조사보도가 무리하게 지역별 판세를 분석한 것을 두고 이같은 우려는 더욱 증폭됐다.

여론조사 공표금지 조항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갑론을박이 계속되고 있지만 여론조사 보도의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데에는 언론계나 여론조사계 모두 이견이 없다. 설문문항·표본·조사방법 및 시기가 상세히 공개돼야 한다는 데에도 별다른 이견이 없다. 더 나아가 여론조사결과의 신뢰성을 가늠할 수 있는 로(raw) 데이터까지 필요에 따라 공개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제출되고 있다.

또 언론계에서는 기사 용어를 비롯한 보도기준을 확립해야 한다는 견해가 제시되고 있으며, 대선기간 내내 조사의 신뢰성 문제로 골머리를 앓은 여론조사업계에서는 이참에 조사결과를 자율적으로 심의할 수 있는 ‘여론조사위원회’와 같은 기구의 설립이 필요하다는 제안도 나오고 있다


TV토론
사세 과시욕이 ‘고비용 저효율’ 연출
정책토론 유도할 형식 개발 절실


중앙선관위의 여론조사 결과는 TV토론의 위력을 웅변한다. 지난 6일부터 이틀간 중앙선관위가 21세기 정책개발연구회와 공동으로 전국 유권자 1천2백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결과 ‘지지후보 결정에 TV토론이 영향을 미쳤다’고 응답한 사람은 전체의 79.8%. 미디어선거, TV선거의 위력을 실감케 하는 수치이다.

지난 5월 열린 중앙일보·MBC 주최의 TV토론을 시발로 지난 14일의 제3차 합동토론회에 이르기까지 각종 TV토론의 개최 횟수는 무려 71회. 이 과정에서 TV토론은 각종 진기록과 새 풍속도를 연출해 냈다.

지지율 1%대의 ‘무명소졸’ 이인제 후보를 ‘빅3’의 반열에 올려놓은 게 TV토론이었고, 11만여평의 여의도광장에서 2백여평 규모의 조그마한 스튜디오로 선거전장을 옮겨놓은 것도 TV토론이었다. 덕분에 일용직 선거운동원들은 공을 쳤고, 선거비용은 수직낙하했다.

TV토론의 선거판 데뷔무대는 그만큼 성공적이었다. 적게는 20%에서 많게는 60%에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하며 선거판을 주도해 온 것이다.

하지만 TV토론은 숱한 잡음과 문제점을 드러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TV토론 남발에 따른 고비용 저효율의 문제가 지적됐다. TV토론 총개최횟수 71회를 월별로 나누면 평균 10회. 사흘에 한번 꼴로 TV토론이 화면을 장식한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 문제가 덧붙여진다. 대다수 토론회가 형식과 내용에서 차별성을 견지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후보 1인을 불러다 앉혀 놓고 기자회견식으로 진행하는 형식, 토론회 주제와는 상관없이 획일·반복적으로 퍼부어지는 질문 내용. 한마디로 케케묵은 드라마가 재탕 삼탕 되는 듯한 토론회로 결국 전파만 낭비하는 결과를 부른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공정성 시비. 토론회가 열릴 때마다 사회자와 패널리스트들의 불공정·편파 진행이 구설수를 낳은 것이다. 이는 선거보도의 고질병인 편들기·죽이기 보도에 새로운 옷을 입히는 결과를 가져왔고 TV토론 유해론까지 낳기에 이르렀다.

선거방송토론위원회의 성립과 3당후보 합동토론회 개최로 이같은 불공정 시비는 가라 앉았으나 이번엔 형식의 경직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엄격한 시간 제한, 중개인으로 역할 축소된 사회자, 문제은행식 질문선정으로 인한 쟁점화 실패 등등 숱한 문제점과 과제를 남겨 놓게 됐다.

무엇보다도 우후죽순식으로 개최되는 TV토론에 대한 교통정리를 해야 하는 것 외에도 명실공히 ‘토론’이 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최대의 과제가 될 것이다. 후보자들을 일렬횡대로 앉혀놓고 돌아가며 질문을 던지는, 그것도 지극히 제한된 시간안에 발언을 마치도록 하는 형식을 어떻게 극복해 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