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사상 처음으로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39만여표의 아슬아슬한 표차였지만 국민들은 집권세력과 기득권세력에 대해 ‘표’로 심판했다. 정치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가운데 지역주의가 여전히 기승을 부렸지만 국민들은 ‘변화’를 선택했다. 국내외 언론의 평가는 차치하더라도 이번 정권교체가 갖는 의미는 각별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권교체의 앞날을 낙관만 하기에는 나라 안팎의 상황이 참으로 비상하다. 국가부도 위기로까지 몰린 어려운 경제사정이 새정부의 발목을 잡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기득권 세력의 저항과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국민들이 이룬 ‘선거혁명’은 새정부가 우리 사회에 요구되는 개혁과제를 제대로 완수해낼 때 비로소 완결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새정부가 개혁에 나서기를 주저하거나 현실조건에 적당히 타협하고 만다면 마침내 이뤄낸 ‘정권교체’에 대한 기대는 한낱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지역감정의 골을 메우고 국민통합을 이뤄내는 것이 개혁추진을 위해서도 불가피한 선택이겠지만 이 또한 어디까지나 진정한 사회개혁, 정치개혁, 경제개혁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임을 망각할 때 새정부 또한 김영삼정권의 실패를 답습하게 될 것이다.

아직 첫발도 떼지않은 새정부에 대해 철저한 개혁요구부터 내놓는 것이 너무 각박한 처사일지 모른다. 그러나 새정부가 개혁의 가시밭길을 당당하게 헤쳐가지 않는 한 “나는 성공의 길을 가겠다”는 김대중대통령 당선자의 다짐도 공허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김대중 대통령당선자와 새정부가 부디 성공의 ‘지름길’을 두고 우회해가지 말 것을 주문하면서 무엇보다 언론개혁에 관심을 가져주길 당부한다. 보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언론개혁 없이 다른 개혁과제를 수행한다는 것은 사상누각이나 다름없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언론이 언론으로서의 역할과 기능을 상실한채 보수 기득권층의 이해를 대변하기에 급급했던 것이 오늘의 난국을 초래했다는 것은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가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역대 집권자들이 그랬듯이 언론을 통제하고 장악하려는 ‘유혹’에 빠져서도 안되겠지만 언론개혁을 ‘외면’해서도 안될 것이다.

물론 언론개혁의 주체는 언론인들이어야 한다. 권력이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언론개혁의 ‘여건’을 만들어주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언론 스스로 개혁의 길을 열어나가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참으로 부끄러운 현실이다.

87년 이후 그나마 물꼬를 튼 언론민주화운동 역시 6월항쟁에 무임승차한 것이다. 이번의 정권교체 또한 마찬가지다. 언론이 정권교체에 어떤 역할을 했던가. 방송이 비교적 공정해지고 한겨레신문과 동아일보 등 일부 신문들이 그나마 분투했지만 상당수 언론은 오히려 기득권세력의 재집권을 위해 앞장섰다.

이들 언론과 언론인들에게 역사의 좌표는 수구-반동쪽에 맞춰져 있었다. 이대로는 안된다. 언론이 더이상 역사발전의 걸림돌이어서는 안된다. 국민들이 열어가는 민주화공간에 무임승차하는 것도 정도가 있다. 국민들도 더이상 언론의 굴절과 왜곡을 방치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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