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의 ‘내부 제보자 색출’은 벌집 쑤시는 결과를 빚을 공산이 크다. 당장 회사측이 유력한 증거로 제시한 것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난 이상 ‘오판’에 따른 부작용이 엄청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과정에서 보여준 일부 간부들의 지역 차별의식에 기초한 표적 징계는 내부 위화감 조성과 함께 극심한 반발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가뜩이나 어려운 처지에 일부 간부의 빗나간 행태가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회사측이 고모차장을 지목한 이유는 크게 두가지. 정황증거와 물적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필적 감정이 물적 증거라면 정황증거는 휴무일인 11월 22일 고 차장이 회사에 출근한 점, 당일날 고모차장이 자신의 컴퓨터가 아닌 부장 컴퓨터를 사용해 정보보고를 검색한 점, 그리고 당일 국민회의 정동영대변인과 통화를 한 점 등이다.

그러나 고모 차장은 이를 극력 부인하고 있다. 11월 22일에 출근한 것은 대학원 공부를 하기 위한 것이
었으며 그 이전에도 자주 출근했다고 밝히고 있다. 부장 컴퓨터를 이용한 것 역시 부장 컴퓨터를 켜야만 다른 컴퓨터가 프린트 아웃되기 때문에 관행적으로 김 부장 컴퓨터를 통해 정치부 ID로 정보보고를 검색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동영 대변인과의 전화 통화 역시 고교 동창이어서 사사로운 얘기까지 나누는 막역한 사이로 시도 때도 없이 전화통화를 나눈다는 것이다.

고모차장의 주장을 결정적으로 뒷받침하는 증거물은 역설적으로 문제의 내부문건에 적시돼 있다. 본지에 제보된 문건은 모두 두가지. 이 중 한 문건에는 출력일자는 물론 시분까지 그대로 명기돼 있다.

이 문건에 따르면 출력일은 7월.
이는 중앙일보측의 주장과 완전히 다른 내용이다. 중앙일보측은 고차장에 대한 조사과정에서 문제의 문건에 ‘정보보고’라는 분류용어가 기재돼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출력일이 11월 이후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11월 중순 이 문건을 정보보고란에 올려 타부서 기자들의 검색을 차단하고 ‘정보보고’란 분류용어를 기재했다는 것.

그러나 본지에 전달된 문건에는 ‘정보보고’라는 용어가 기재돼 있는데도 출력일은 7월로 돼 있다. 이같은 사실은 회사측이 중대한 ‘착오’를 일으켰거나 고의적으로 고차장에게 거짓말했음을 의미한다.
문제는 단순히 이러한 내부 제보자 진위 여부에 머물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중앙일보 간부들이 정치권의 거센 반발과 정치부 기자들의 집단 서명까지 불러오고 급기야 제보라는 ‘사건’까지 낳은 불공정 대선보도에 대한 책임 소재를 분명히 가리지 않은채 본말을 호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앙일보는 대선 기간동안 창간 이래 가장 극심한 위기를 겪었다. 국민신당은 물론 일반 독자들로부터도 외면을 받았다. 더욱이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의 집권으로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중대 기로에 서있다.

이 마당에 내부 색출자 문제로 내홍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불공정 보도의 진원지가 어디였는지, 책임을 져야할 사람은 누구이며 앞으로 중앙일보 지면은 어떻게 제작되어야 하는지 등 ‘성찰’은 제쳐둔 채 제보자 색출이라는 분풀이성 행태를 연출해 내부 위화감만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중앙일보 일부 간부들이 특정 지역 기자들을 내부 제보자로 지목하고 내사를 벌이고 있는 것은 위화감 조성과 함께 또 다른 오해를 불러 일으킬 개연성이 크다. 특히 편집국의 최고 사령탑인 전육 국장이 평소 호남출신을 경원시하는 발언을 하는가하면, 역시 호남 출신인 고모 차장을 확증도 제시하지 않은 채 서둘러 유출자로 지목한 점은 가장 공정해야 할 언론사 편집 사령탑이 지역차별의식에 젖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적잖은 반발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고모 차장의 유출자로 몬 유력 증거가 허물어진 이상 전국장의 행태는 더욱 큰 비난을 불러올 것이 자명하다. 그런데도 회사측은 요지부동이다. 중앙일보의 한 기자는 “일부 부서장과 평기자들에 대한 인사가 조만간 실시될 것으로 안다. 그러나 국장 등 고위 간부들은 교체하지 않는다는 것이 회사 방침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중앙의 ‘마인드’가 얼마나 빗나가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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