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근을 잡아라’

최근 KBS의 역사드라마 ‘용의 눈물’에서 태종 이방원역을 맡은 유동근씨 영입을 둘러싸고 한나라당과 국민회의는 치열한 각축전을 벌였다. 그러나 양당의 ‘구애작전’은 유씨의 돌연한 ‘중립 선언’으로 물거품이 돼버렸다. 당초 유씨는 특정 후보를 공식 지지할 것으로 알려졌으나 주변의 우려와 만류가 높자 이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유씨의 ‘중립 선언’은 최근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연예인들의 특정 후보 지지 현상과 비교할 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최근 기자회견이나 유세 지원 활동을 통해 대선 후보 지지에 나선 연예인들은 줄잡아 1백여명.
한나라당의 경우 탤런트 이정길, 가수 김흥국 등 40여명이, 국민회의는 중견배우 최종원, 백일섭씨 등 50여명의 연예인들이 각당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 국민신당측엔 개그맨 김형곤씨, 탤런트 서인석씨등 10여명의 연예인들이 참여하고 있다.

연예인들의 집단적인 선거 참여는 우선 각 정당쪽의 득표 전략의 일환으로 이뤄지고 있다. 국민신당의 한 관계자는 “아무리 언변이 뛰어난 정치인이라해도 TV 화면을 통해 잘 알려진 연예인 만큼 사람을 끌어모으지는 못한다. 설사 후보의 정견이나 정책 등을 잘 알지 못한다해도 인지도가 높은 연예인이 지지 유세에 나설 때 그 만큼 청중들에게는 강한 이미지를 남길 수 있다”고 말했다.

미디어선거라 일컬어지는 이번 대선에서 소규모 지역 유세나 TV를 통한 정치 광고, 지원 유세 등이 주된 선거 운동 방식으로 등장해 얼굴이 널리 알려진 연예인이 그만큼 ‘효용 가치’가 높다는 것이다.

이런 연예인들의 정치 참여는 과거 몇몇 정치지향적 연예인들이 대선전에 뛰어든 것이나 은근한 압력에 못이겨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손님끌기’ 공연에 나오던 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전처럼 ‘대가’를 받고 지지 유세 활동에 나오는 사례도 보기 드문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 이회창후보를 지지하고 있는 탤런트 이정길씨는 “오히려 사비를 털어 넣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또한 연예인들의 지지 분포도 다양해졌다. 이전처럼 ‘연예계=여당 지지’라는 도식이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무엇보다 최근 대선 판세에 영향 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전국연예인 노동조합의 최훈규사무국장은 “여야 구분이 뚜렷하지 않을 뿐더러 당락 또한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인 만큼 연예인들의 ‘소신 지원’이 두드러진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에선 연예인들의 정치 참여 의식이 그 만큼 높아졌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탤런트 이정길씨는 “이제는 미국 등 선진국처럼 연예인들도 자신의 사회적 영향력을 정치 참여 등을 통해 더욱 높여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달라진 선거 풍토에서 연예인들의 정치 참여 양상도 보다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연예인들의 직접적인 후보 지원 활동에 대해 주위의 시각은 아직도 우려쪽에 기울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한국프로듀서연합회 장해랑 회장은 “연예인들도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참정권을 행사하는 것을 문제삼을 수는 없다”고 전제하고는 “하지만 이들이 방송 활동을 통해 시청자들로부터 공인의 지위를 인정받
고 있는 만큼 자신의 정치적 의사 표현과 관련해서는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 YMCA 시청자 운동본부의 이승정부장 역시 “연예인들이 과연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이나 후보의 정견과 정책에 대해 뚜렷한 신념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며 반신반의하는 반응을 보였다.

일각에선 집권한 후보쪽에서 선거 이후 상대 후보를 지원한 연예인들에게 출연 제한 등 불이익을 준 사례가 되풀이 될 것을 우려하기도 했다.

방송사들은 이들 대선 지지에 나선 연예인들에 대해선 주관적 의사표시가 가능한 대담이나 시사 정보 프로그램 등의 사회자로 출연하는 것을 금지하는 정도의 제한 규정을 적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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