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과 중앙일보는 이번 대선의 최대 ‘이슈 공장’이다. 두 신문은 대선 정국의 고비 때마다 이슈를 생산해 대선판에 일파를 던지곤 했다. 양심수 발언 파문이 그랬고, YS의 신당지원설이 그랬다.

대선이 코 밑으로 다가왔을 때 이들 신문은 결정적인 막판 이슈를 만들어내는 데 유감없이 ‘실력’을 발휘했다. IMF재협상 발언 파문과 ‘대선 양자구도 압축’ 보도. 여기에 하나가 덧붙여진다. 제2의 북 서신 파문이 그것이다.

두 신문의 감각은 탁월하다. 포장술도 뛰어나다. 이들 신문은 다른 신문의 1단을 ‘머리’로 만들어내고, 뉴스를 이슈로 확대시킨다.

두 신문의 발군의 능력을 높이 사야 마땅하겠지만 언론계는 이들에게 비난을 퍼붓고 있다. 왜인가.
조선과 중앙일보가 생산해 낸 이슈는 특정 후보에 맞춰져 있다. ‘편들기’ 또는 ‘죽이기’ 의도를 내면에 깔고 특정후보를 부각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슈 메이킹 뒤에는 사실의 왜곡 내지는 과장기법이 동원되고 있다. 현재진행형의 최근 이슈에도 이런 속성은 어김없이 나타나고 있다.

대선 양자구도 보도

중앙일보는 16일자 사설 <사실보도를 왜 트집잡나>에서 “투표일을 불과 사흘 앞둔 시점에서 신문이 대선판도를 국민에게 알리는 것은 언론의 당연한 책임이자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중앙일보는 이런 전제 위에 “어떤 압력이나 비방·중상에도 흔들림 없이 국민의 알권리와 진실 추구란 언론 본연의 사명에 충실할 것이다”라고 천명했다.

전날인 15일자 1면 머릿기사 <대선 양자구도 압축>에 대한 국민회의·국민신당의 반발은 비방과 중상·압력이며 자사의 보도는 ‘진실 보도’라는 주장이다.

중앙일보의 이런 강변에도 불구하고 언론단체는 중앙 보도를 불공정 편파보도로 규정하는 비난성명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정치적 계산에 입각한 편들기 보도라는 것이다.

중앙일보는 15일자 1면 머릿기사 <대선 양자구도 압축>에서 월드리서치 박인주사장의 발언을 빌려 “2∼3일 전부터 김대중-이회창 양자대결 구도로 경쟁양상이 좁혀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김대중후보가 오차범위 이내에서 1위를 달리고 있으며 이회창후보가 바짝 뒤쫓고” 있는 데 반해 “이인제후보는 상승세를 회복하지 못하는 형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중앙일보는 이같은 판세분석을 뒷받침하는 데이타를 제시하지 않았다. 아니 제시할 수 없었다. 선거법에 따라 여론조사결과를 공표하지 못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결국 중앙일보는 요건도 갖추지 못한 기사를, 보도해서는 안될 기사를 무리하게 보도한 셈이었다.

물론 중앙일보는 자사의 보도가 여론조사 결과를 공표한 게 아니라 여러 여론조사에서 드러난 개괄적 흐름을 분석한 것일 뿐이기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강변했지만 이에 대한 중앙선관위의 응답은 ‘경고’ 조치였다.

중앙일보는 왜 선거법까지 어겨가며 무리한 보도를 감행했는가. 그 속사정은 같은 날짜의 3면 해설기사 <실체 드러나는 ‘양자 대결구도’>에서 드러난다. 중앙일보는 이 기사에서 앞으로 “반DJ표의 결집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회창-이인제후보의 지나온 선거전략을 검토하면서 “반DJ의 맹주가 되는 것이 급선무였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또 부속꼭지인 <“이젠 부동층 잡기 총력”>에서 “수도권과 영남권·충청권 등 세곳의 승부처에서 ‘비DJ’성향표를 흡인해 나가면 막판승리가 가능하다”는 한나라당의 전략을 충실하게 소개하기도 했다.

이같은 보도내용은 “양자 대결구도면 필승”이라는 한나라당의 주장과 맞닿아 있다. “이인제에게 표를 주면 DJ가 당선된다”는 한나라당의 ‘사표방지론’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정주영에게 표를 주면 DJ가 당선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5년 전 어느 언론의 구태를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중앙일보의 한나라당 편들기는 또 다른 대목에서도 확인된다. <실체 드러나는 ‘양자 대결구도’>는 대선 대결구도가 ‘단순화’된 원인을 분석하면서 한나라당의 의석과 조직력을 크게 부각시켰다. 한나라당의 1백65석과 국민신당의 8석을 대비하면서 “많은 의석은 한나라당이 보수 중산층에 ‘안정된 국정운영’을 호소하는 데 유리한 여건을 조성했다”고 평했다. 또 “이같은 조직은 여러 면에서 위력을 발휘했고 후보 개인이 고군분투하는 국민신당과 격차를 벌였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꼬마당’인 국민신당은 수권능력이 없다는 한나라당의 주장, 그리고 ‘안정이냐 혼란이냐’는 한나라당의 선거광고 문구의 또 다른 표현인 셈이다.

IMF 재협상 발언 보도

중앙일보 보도가 반DJ표 결집을 위한 외곽(이인제후보)때리기라면 조선일보의 IMF재협상 발언 보도는 중심 때리기라 할만하다. 필봉을 DJ를 향해 곧장 겨눈 것이다.

조선일보는 9일자 사설 <‘IMF 재협상’의 위험성>을 통해 IMF재협상 발언을 비판한 데 이어 11일 1면 머릿기사 <정치권 “IMF 재협상” 발언 외화난 악화 부채질>을 통해 DJ에게 ‘스트레이트’를 날렸다. 국제 금융계가 한국에 자금지원을 꺼리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로 DJ의 재협상 발언을 지목한 것이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에서 시중은행 국제담당 데스크들의 말을 빌어 “대선후보가 10일부터 ‘왜 IMF 재협상을 요구하는가’라는 신문광고를 실으면서 해외 금융기관들간에 ‘한국은 믿을 수 없는 나라’라는 인식이 번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이날자 사설에서도 DJ의 재협상론이 외국의 의심을 부른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못박았다.

조선일보는 13일, 좀더 구체적으로 DJ를 공격했다. 제하의 기사에서 “IMF협상에까지 이르게 된 나라 현실에 불만인 유권자와, ‘철저한 약속이행’을 요구하는 IMF를 동시에 겨냥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다”고 비판한 것.

조선일보 보도가 나가자 가장 반긴 곳은 한나라당. 이회창후보는 즉각 DJ의 재협상론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고, 조순총재도 캉드쉬 IMF총재와의 전화통화 내용을 ‘뻥튀기’까지 곁들여 공개하며 재협상론이 한국의 대외신인도를 떨어뜨렸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당사자인 국민회의는 물론이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등 사회단체들마저 나서 조선일보의 보도를 규탄했다. 조선일보의 보도는 “IMF 당국조차 당연시하고 있는 사안(재협상)을 위기의 원인으로 호도”하는 것으로 “정략적인 왜곡보도이며 노골적인 특정후보 편들기”라는 것이 이들 단체의 비판이었다.

조선일보가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는 것은 자체 지면에서도 확인된다. 조선일보는 11일자 1면 머릿기사에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지 10일자 보도내용을 인용한 바 있다. 한국정부가 2개 은행에 대해 직접 출자한 것은 IMF 프로그램의 기본 정신에 어긋나는 것으로 외환위기의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것.

이것이 외환위기의 주된 원인 가운데 하나라면 그 책임은 조선일보에게로 돌아간다. 조선일보가 2개 은행의 정부 출자를 유도한 당사자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지난 3일 1면 <은행 2~3곳 적당한 시기 정리…> 기사에서 한국정부와 IMF가 2~3개 은행의 정리에 합의했다는 사실을 최초 보도한 데 이어 다음날에도 <2개銀 ‘구조조정’ 수술대 올라> 기사를 통해 부실 은행 2개에 대해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마련키로 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가 비록 2개 은행의 이름을 밝히진 않았지만 보도내용은 금융계와 은행고객들의 대혼란을 야기했고 결국 정부의 출자라는 ‘급조안’을 낳도록 했다.

조선일보의 재협상 보도 논지에 기초한다면 우리의 외환위기를 가속화시킬 사안을 ‘특종 욕심’에 사로잡혀 무책임하게 보도함으로써 정부의 IMF 약속파기를 , 그로 인한 대외 신인도 추락을 야기한 것이다.

그런데도 조선일보는 이에 대한 해명보도조차 내보내지 않은 채 DJ를 외환위기를 가속화시킨 ‘주범’으로 내몬 것이다.

조선일보는 더욱이 ‘DJ책임론’의 주된 근거로 외신을 인용하면서 일부 사실을 왜곡, 또는 누락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11일자 1면 머릿기사에서 워싱턴 포스트지의 10일자 보도를 인용하면서 IMF 피셔부총재가 “수많은 세부 사항들에 대한 협상이 남아 있다”고 밝힌 점은 보도하지 않은 채 “(대선)당선자가 IMF 권고 이행 의지를 명확히 밝히지 않을 경우 제2차 금융쇼크가 한국을 강타할 지도 모른다”는 내용만을 전했다.

또한 DJ는 물론 상당수 경제학자들이 추가협상 대상으로 지목하고 있는 단기채권시장 개방, 수입선 다변화제도 폐지, 성장률 3% 등에 대해 “추가협상이라기보다는 사실상 재협상 수준이 아니냐”고 지적, 국민회의의 항변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제2의 북한 서신 보도

‘대선 양자구도 압축’ 보도와 IMF 재협상 보도에서 각개약진했던 두 신문은 ‘북풍’이 몰아치자 ‘공동보조’를 취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13일 재미교포 2인이 공개한 북한의 서신에 대해 ‘부풀리기’ 보도를 한 것이다.

중앙일보는 대다수 신문들이 스트레이트 기사는 생략한 채 정치면에서 상자기사로 간단히 처리한 데 비해 15일자 2면에서 스트레이트 기사를 비중있게 처리하는 한편 8면에서 한나라당과 국민회의의 공방을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기사에서는 비교적 ‘차분한’ 모습을 보였으나 의도성이 엿보이는 제목을 뽑아 편파적이라는 비난을 샀다. 중앙일보는 2면 스트레이트 기사 제목으로 <“북 71년 DJ에 20만불 줘”>를, 8면 기사 제목으로는 <북한 끼어든 DJ색깔 공방>이라고 뽑아 DJ를 궁지에 모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조선일보의 DJ색깔 공세는 좀더 적극적이다. 조선일보는 15일자 6면 <북한의 의도는 무엇인가>라는 제하의 해설기사에서 북한의 서신 공세가 “특정 후보의 당락을 위한 ‘적극적인 공작’이 아니”라고 분석했다. 조선일보는 특히 북한 전문가의 입을 빌어 “이번 특정 후보에 대한 유대감 표시가 친북세력에 보내는 메시지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남한내 친북세력에게 DJ지지 지침을 내린 것으로 봐야 한다는 분석이다.

조선일보의 이같은 분석은 다른 신문과 크게 상치되는 것이다. 문화·한겨레 등은 서신 공개자의 신원이 불투명한 점, 한나라당 정재문의원의 북한인사 접촉설 등을 들어 북한의 서신공세가 특정 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조심스런 분석을 내놓았으며, 나머지 신문들도 속단을 피한 채 두 당의 공방만을 중계보도했다.


‘입맛대로’ 쟁점 부각

조선과 중앙일보가 특정 후보에 경도돼 있다는 지적은 이들 신문이 대선 막판에 쏟아져나오는 수많은 쟁점을 골라내는 기준에서도 확인된다. 이중잣대, 또는 ‘엿가락 잣대’로 어떤 쟁점은 키우고, 어떤 쟁점은 죽이는 행보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한다면 유일잣대로 숱한 쟁점들을 재단하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 이회창후보에 유·불리한 사안을 갈라 유리한 건 키우고 불리한 건 죽이는 식이다.

중앙일보는 지난 10월 청와대 2백억원 지원설을 필두로 YS와 국민신당간의 유착관계를 드러내는 기사를 잇따라 1면 머릿기사로 올렸었다. 시중에 나도는, 확인되지 않은 설만 가지고 무리수를 거듭했고, 그 결과 국민신당과 이인제후보는 치명타를 입었다.

하지만 중앙일보는 또 하나의 청와대 지원설에 대해서는 외면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 13일 발매된 한겨레21이 청와대 고위 비서관들의 이회창 지원 ‘사실’을 증빙자료까지 곁들여 폭로했는데도 이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은 것이다.

검찰의 DJ비자금설 수사 유보 결정에 가장 강도 높은 비판을 가했던 조선과 중앙은 또 하나의 정경유착 사례이자, 금권선거의 ‘꼬리’라 할 수 있는 한나라당 사채조달 기도 사실에 대해서는 축소하는 보도태도를 보였다. IMF재협상론, 병역공방 등 이미 ‘한물 간’ 쟁점들과 같은 반열에 놓음으로써 ‘전선 분산’ 효과를 가져온 것이다.

한나라당의 ‘사표방지론’에 대한 보도태도 역시 마찬가지. 이들 신문이 그토록 비판해마지 않았던 지역감정 조장, 후보 비방의 요소들이 듬뿍 베어나는 사안이었는데도 이들 신문은 이를 ‘선거 전략’으로 자세히 소개하기만 할 뿐 꾸짖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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