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게임들은 우선 흥미진진하죠.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자주 화제가 되기도 해요. 제 생각엔 우리는 요즘 코리안시리즈보다 NBA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단지 한국 선수들이 경기한다고 해서 반드시 우리가 더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요. 어차피 농구 자체도 순수하게 한국적인 것은 아니잖아요.”

방송위원회의 손승혜 객원연구원이 지난달 28일 서강대 언론문화연구소 주최로 열린 월례발표회에서 발표한 ‘직접위성방송:텔레비전, 수용자, 그리고 문화의 초국가화’란 논문에 따르면 국경을 넘나드는 직접위성방송의 폐해는 ‘문화 국적시대’의 파괴로 요약된다. 한 10대 청소년의 말은 그같은 현상의 한 사례이다.

손연구원이 서울지역의 18가구, 44명의 직접위성방송(NHK 위성방송과 STAR TV) 시청자를 대상으로 인터뷰 조사한 결과 이들의 직접위성방송 주시청시간대는 국내 지상파방송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낮시간이나 심야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업주부나 노년층의 경우 낮시간에, 10대 청소년들의 경우에는 심야시간대에 직접위성방송을 시청하고 있었다. 이는 직접위성방송이 국내 지상파방송의 틈새시장을 파고들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직접위성방송 여파로 ‘자국’과 ‘외국’ 문화요소에 대한 구분이 변화되고 있다는 것.

‘문화 국경’을 부수고 있는 직접위성방송의 주 프로그램은 뉴스, 스포츠, 뮤직 비디오 프로그램 등이다. NHK 위성방송의 경우 국제 뉴스나 정보 프로그램으로 장·노년층 사이에서 유용한 정보와 교육 매체로 인식되고 있었다.

또 STAR TV는 음악과 스포츠 채널을 중심으로 청소년을 포함한 젊은층을 파고들어,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소비집단으로 등장하고 있는 아시아의 10대들 사이에 ‘초국가적 청소년 소비문화’를 형성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시청자들은 물론 직접위성방송의 시청이 문화제국주의에 협조하는 행위가 될 수도 있으며, 전통적 사회윤리관과 상충되기도 한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직접위성방송의 교육적, 정보적 가치를 더욱 강조함으로써 자신들의 시청을 정당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 큰 문제는 청소년층의 반응. 손연구원이 서울의 중상류층 아파트에 거주하는 10대 청소년 3명과 인터뷰한 결과 이들은 ‘NBA문화공동체’의 일원으로 편입돼 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농구 자체에 대한 관심 뿐 아니라 NBA가 공인하거나 NBA 소속의 선수가 광고하는 다양한 관련 상품, 그들이 출연하는 영화, 그리고 NBA 선수카드 등 다양한 소비스타일을 공유하며 미국적 스포츠 이데올로기, 더 나아가 우월한 미국인 이데올로기에 편입돼 가고 있었다.

또 한가지. 이런 청소년이 이들 3명으로 국한되지 않는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들 청소년은 적어도 한반에 75% 이상이 직접위성방송 중 한개 이상의 채널을 시청하고 있으며, 이들 중 상당수가 NBA를 즐겨보고 있다고 답했다. 이미 직접위성방송이 문화 주역인 청소년을 ‘장악’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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