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인권위원회가 지난 2일 공개한 ‘베트남 국경지대 지뢰밭으로 내몰린 조선(북한)난민’ 사건은 같은 언론사 내부에서조차 보도 여부를 두고 입장이 엇갈리는 등 논란을 빚었다.

논란의 핵심은 조선(북한)난민의 무사귀환을 위해서 언론이 보도를 자제하는 것이 관행이지만 당국의 무책임한 태도로 난민들이 곤경에 처했을 경우 언론이 어떠한 판단을 내려야 하느냐는 것이다.

천주교 인권위원회는 지난 2일 기자회견을 갖고 조선(북한)난민 7가족 13명이 중국에서 안기부의 지시를 받
고 천신만고끝에 베트남으로 탈출, 한국대사관에 들어가는데 성공했으나 대사관측이 베트남 정부에 이들을 넘겼고 그후 베트남 정부에 의해 추방돼 이 가운데 7명이 국경지대 지뢰밭에서 실종됐다는 내용을 공개했다.
천주교 인권위원회 발표가 있자 언론들은 3일자로 기사와 사설을 통해 이를 일제히 보도했다. 그런데 정작 가장 먼저 취재했다는 한겨레와 국민일보는 하루 늦게 보도한 것.

이 두 신문은 각각 3, 4일자 기사에서 천주교 인권위원회의 발표내용을 보도하면서 ‘낙종’의 ‘이유’를 설명했다. 국민일보는 “탈북 13명의 안전이 정부 당국의 소극적인 태도와 언론의 신중하지 못한 보도 때문에 위협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한겨레도 4일자 <왜 우리는 ‘낙종’을 선택했나>란 해명기사를 통해 “언론들이 3일치 기사로 보도한 ‘탈북 7가족 13명’에 관한 기사를 싫지 않았다. 진실의 보도도 중요하지만 그 보도가 사람의 생명보다 앞설 수 없다는 믿음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한겨레의 오귀환 민권사회부장은 “5명에 대한 송환 여부도, 7명의 생사여부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보도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조선(북한) 난민 13명의 안전을 위해 보도를 자제해야 할 때며 천주교 인권위원회측의 기자회견도 성급했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천주교 인권위측은 “당국이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는 상황에서 이들을 살려내기 위해서는 여론에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본지보다 하루 앞서 이를 보도했던 ‘한겨레21’의 한 기자도 “현지에 가보지 않았기에 보도에 신중함이 필요하다. 그러나 확인과정에서 외무부는 거짓말을 하는 등 이들을 구하는데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13명을 구하는 방법은 여론에 호소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는 입장이다.

결국 13명의 ‘생명 살리기’라는 뜻은 같았으나 보도여부에 대한 판단은 달랐던 셈이다. 한편 이번 사건은 외무부가 베트남과의 외교관계를 내세워 보도자제를 요청한 사안임에도 언론사들이 이를 깨고 일제히 보도해 정부당국의 보도자제 요청 수용여부에 대한 언론사 판단의 시금석이 되고 있다.

외무부 외교정책실의 권영민 실장은 “베트남은 북한과의 외교관계가 있는 사회주의 국가인데다 보도과정에서 종교모임이 탈북가족들의 행동에 조직적으로 개입한 사실 등이 언론에 공개됐을 때 외교적 마찰은 물론 이들의 송환이 더욱 힘들어질 것을 우려해 보도자제를 요청했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한겨레21’의 한 기자는 “외무부의 논리가 일부 타당성이 없지 않으나 외무부의 엠바고는 대사관의 실책이나 안기부의 개입 등을 감추기 위한 조처였다고 판단했다”며 “정부의 어떠한 엠바고든 알권리의 원칙에서 접근해야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어쨌던 이같은 논란 여부를 떠나 언론계에서는 이번 조선(북한)난민 보도의 관건은 언론이 독자적인 판단으로 보도를 한 이상 이들 13명의 난민들에 대해 끝까지 책임지는 태도를 보여주는데 달려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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