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와 취재원의 밀착은 한국 정치의 특성에서 연유하는 바 크다. 정치 대사(大事)일수록 공식 영역보다는 비공식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게 우리의 정치현실이기에 기자와 취재원의 밀착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비공식적인 정치행위를 취재하기 위해서는 ‘사선’을 뚫어야 하고, ‘사선’을 뚫기 위해서는 밀착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때문에 각 언론사는 취재시스템을 ‘맨투맨’식으로 편재해 놓고 있다. 주요 정치인을 24시간 밀착 마크하도록 하는 것이다. 언론사는 이같은 취재시스템이 자칫 부작용을 빚을까봐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 원칙을, ‘밀착은 하되 기사는 칼 같이 쓰라’는 불문율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는 구두선에 그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무엇보다 기자도 ‘사람’이라는 점이 ‘불가근 불가원’을 어렵게 만든다. 기자도 감정과 의식을 가진 사람인 이상 호·불호의 취향이 없을 수 없으며, 자신에게 친밀하게 대하는 취재원을 ‘딱딱한’ 원칙을 앞세워 마냥 내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한나라당을 출입하는 한 기자의 고백. “솔직히 담당 정치인을 비판하는 기사를 주문하면 글이 잘 나가지 않는다. 데스크도 이같은 애로사항을 눈치 채고 다른 기자를 시키곤 한다.”

취재원을 ‘염려’하는 이런 기자의 고민 뒤에는 정치인들의 치밀한 기자관리가 작용한다. 본적, 주소, 출신 대학과 학과명, 부인 생일 등 정당 출입을 시작할 때 제출한 신상명세서를 기초로 각당과 정치인은 기자 관리를 시작한다. 지연·학연을 내세워 기자를 ‘엮는가’ 하면 부인 생일에 꽃다발이나 케이크 등을 보내 환심을 사기도 한다.

이같이 치밀한 기자관리에서 자유롭기 위해서는 두둑한 뱃심에 공사를 구분하는 신념화된 기준이 있어야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게 기자들의 말이다. 가급적 비판은 피하고 단순 사실만을 전달하는 게 최선의 ‘방어’라는 이야기이다.

그래도 이런 대다수 기자의 경우는 나은 편이다. 보다 노골적으로 취재원과 밀착되는 기자들이 있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계보기자’, ‘○○장학생’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좀더 과감하고 적극적이다. 특정 후보를 편드는 언론 내적인 행태는 물론이고 언론 외적인 행태도 스스럼없이 행한다. 김징훈 전연합통신 편집부국장이 ‘언론사 주요간부 접촉보고’를 작성, 92년 당시 민자당 김영삼총재와 김덕룡비서실장에게 전달했던 사실, 91년 민자당 경선 당시 ‘○○고 언론인 사단’이 한 다방에 ‘캠프’를 차려놓고 이종찬씨의 탈당을 적극 권유했던 사실 등은 계보기자들의 ‘비언론적’ 행태의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또 91년 당시 이종찬 캠프를 출입했던 모기자가 이종찬씨를 비판하는 기사를 작성하라는 데스크의 요구에 반발해 퇴사까지 불사한 사례는 계보기자의 언론 내적인 행태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계보기자들의 이같은 행태 뒤에는 정치적 야망이 작용하는 게 통례이다. ‘선배’ 계보기자 중 상당수가 정치인이 된 것처럼 ‘후배’ 계보기자들도 뚜렷한 지향성을 갖고 정치인과의 ‘동체’ 형성을 시도하는 것이다.

자신의 정치적 지향을 위해 언론과 언론인이라는 신분을 악용하는 계보기자들의 행태가 언론의 정치보도를 병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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