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보고서 파문을 계기로 계보기자들이 언론계의 논란거리로 등장하고 있다. 중앙일보 보고서 파문은 그 진실 여부를 떠나 언론의 편들기 보도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돌출사안으로, 이런 편들기 보도 이면에는 계보기자들의 ‘암행’이 작용하고 있다는 게 언론계의 지적이다. 계보기자의 실태와 그 문제점을 알아본다.

이번 대선도 예외는 아니다. 선거 때마다 나타나는 언론의 편들기·줄서기 보도, 그리고 이를 가능케하는 계보기자들의 암행. 이번 대선도 여느 선거와 다를 바 없이 계보기자들의 ‘가면무도회’가 재연되고 있다.

‘기사가 될만하면 확실히 밀어주고, 돈을 줄 것이면 화끈하게 줘라.’ 기자 관리에 관한 한 자타가 공인하는 ‘마당발’ 김윤환의원 진영의 기자관리 원칙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언론계에선 이런 ‘혜택’의 그늘 밑에 모여드는 기자들을 일컬어 ‘허주 계보기자들’이라고 부른다. 김윤환의원의 양아들이라고까지 불리는 모 조간지 정치부장을 필두로 7∼8명의 기자들이 허주 계보로 분류된다.

이들은 김윤환-이회창연합 구도에 발맞춰 ‘이회창사단’에 편입돼 있지만 ‘친정’은 엄연히 김윤환의원쪽이다. 그래서 두 사람의 관계가 삐그덕 거릴 때에는 ‘친정’쪽에 경도된다. 김윤환의원측의 강한 반발을 샀던 ‘이한동대표 내정파동’ 당시 일부 언론의 이회창비판도 허주 계보기자들의 작품이라는 후문이다.

허주계보와는 별도로 이회창 계보기자들에 대한 이야기도 심심치않게 흘러나온다. 과거 신한국당에 몸담았던 한 정치권 인사는 중앙종합일간지의 기자가 이회창 캠프에 보고서를 올린 바 있다고 말했다. 이 사람은 7월 경선 당시 신한국당 출입기자들의 성향과 의원들의 동향을 종합 정리한 30~40쪽의 보고서가 이회창캠프에 전달됐으며 작성자는 국내 유수의 종합일간지 기자인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 뿐만이 아니다. 또 한 기자는 이회창 캠프에 정기적으로 정보보고를 하고 활동비를 타간 것으로 밝혀졌다. 한 기자는 자신이 이회창후보의 방계조직인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정기적으로 정보를 보고하고 매달 활동비를 타간 기자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 기자가 매달 수령한 활동비는 1백만원, 소속사는 정보보고서를 올린 기자와 같은 회사라고 한다.

비록 지금은 ‘끈 떨어진 연’이 돼 버렸지만 경선 당시 이수성씨 진영에도 상당수 기자들의 ‘막후 조력’이 있었다. 한나라당을 출입하는 한 기자는 “○○대학 출신의 일부 기자들이 이씨와 밀착됐던 것으로 안다”면서 이 기자들이 술자리에서 이씨를 “교수님”또는 “총장님”이라 부르며 유대감을 과시했고 이씨도 기자들을 향해 “자네들”이라 부르며 ‘끈끈한 정’을 과시했다고 말했다.

유대감 과시야 취재상 불가피한 제스처라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문제는 몇몇 기자들이 ‘선’을 넘었다는 데 있다. 한 기자는 이씨 진영에 스스로 찾아와 이씨의 연설문을 가필해줬다고 하며, 다른 기자는 회사에 올리는 정보보고 내용을 이씨 진영에도 제공했다고 한다.

이같은 현상은 경선 당시 각 진영별로 광범위하게 이루어졌으며 지금까지도 그 연이 지속되고 있다. 야당에 출입하는 한 기자는 “여당을 출입하다가 야당으로 출입처가 바뀐 몇몇 기자의 경우 지금까지도 경선과정에서 연을 맺은 정치인과 정기적으로 회동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술자리가 마련됐으니 참석하라는 연락이 오고 기자들도 이에 흔쾌히 응하는 것을 여러번 목격했다는 것. 이 기자가 이같은 사례의 당사자로 지목한 정치인은 김윤환·이한동의원과 이수성씨 등 세명.

이같은 밀착구조는 야당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국민신당의 경우 급조된 당인데다가 출입기자들도 대부분 ‘말진’이어서 ‘밀착’과 관련한 잡음이 별로 흘러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국민회의에 출입하는 일부 기자의 경우 밀착이 한도를 넘어섰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 조간지 야당반장은 사내에서도 ‘김대중 참모’라는 구설수에 올라 있다. 이 기자가 국민회의 당직자들과 김대중총재의 홍보전략을 ‘숙의’했다는 후문도 들린다.

국민회의에 출입하는 한 기자는 당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국민회의는 92년 대선에서 김대중총재가 낙선한 데에는 언론 관리에서 실패한 탓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이번 대선에서는 언론 관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사장, 편집국장, 정치부장 등 고위 간부에 대한 관리는 말할 것도 없고 출입 기자들에 대한 관리도 이전과는 달리 적극적이고 공세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 기자는 “당직자들이 각 언론사의 내부 사정에 정통해 있다. 기자들보다 더 상세히 소속사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는 것을 보면 혀를 내두를 정도”라며 과연 이같은 정보가 어디서 흘러왔겠느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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