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당 국민소득(GNP)이 1만달러를 넘었다고 자랑한 것은 작년초였다. 우리도 세계의 선진국 대열에 끼게 됐다고 북 치고 장고 치듯 자랑했다.

그 여세를 몰아 김영삼 정부는 반대의 소리는 못들은체 선진국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덜컥 가입했다. 또 2002년 월드컵을 일본과 공동으로 유치하고 큰 벼슬을 한 것처럼 요란을 떨었다.

하지만 달러로 표시하는 1인당 국민소득이라는 숫자는 ‘환율’이 만들어내는 마술의 숫자다.
정부와 언론이 자랑해온 ‘1만달러’는 1달러가 대충 8백50원선이었을 때의 숫자다. 이때의 원화는 무역적자를 줄이려는 미국의 압력이 작용해서 실제보다 훨씬 높게 평가된 값이었다.

이제와서 보자면 1달러를 1천원선으로 잡아도, 적어도 20%쯤 높게 평가된 값이었다. 그러니까 ‘국민소득 1만달러’란 사실상 ‘8천5백달러’가 뻥튀기된 것이었다.

이 뻥튀기 때문에 한국의 무역수지는 엄청난 적자가 되고, 국내에서는 흥청망청 날이면 날마다 ‘세계 사치품올림픽’판이요, 세계 방방곡곡에 한국인 관광객의 홍수가 밀어닥치는 ‘서글픈 희극’이 벌어졌다.
아닌게 아니라 내년에는 1인당 국민소득이 94년보다도 낮은 8천2백40달러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1달러를 1천2백원으로 잡고 계산한 예측이다(LG경제연구소).

낯뜨거운 잔치가 여기에서 그쳤더라면 그래도 다행이었을 것이다. ‘외상이 소를 잡아 먹는’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될 일이 벌어졌다. 어이없는 빚잔치다.

지난 해에 1천억달러를 껑충 뛰어넘은 외채는 이제 1천2백억달러가 다 됐다(9월말 현재).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그중에 절반이 넘는 54.8%가 만기 1년미만의 단기외채라는 사실이다.

눈덩이 불어나듯 커지는 빚더미도 무서운데, 그것도 과반이 ‘사람잡는 급전(急錢)’이라는 사실이다. 치욕적인 국가적 부도, 그리고 국제통화기금(IMF)신탁통치의 직접적인 방아쇠는 이 ‘단기외채’가 당긴 것으로 알려져있다.

김영삼 정부의 경제관료집단, 그리고 이들을 호령하는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높은 사람들이 ‘단기외채 55%’가
되도록 뒷짐지고 있었단 말인가. 도무지 납득이 가지않는 사실이다.

지금 세상에서는 끝까지 “걱정없다”던 이들 높은 사람들의 책임을 따지는 분노의 소리가 크다. 책임을 따지기로 말하면 언론도 당연히 ‘공동피고’의 자리에 서야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동안 언론은 사상 유례없는 김대통령의 ‘구호정치’를 위해 사상 유례없는 권력의 입이자 확성기 노릇을 해왔다. 김대통령의 ‘국제화’‘세계화’ 구호를 복창하면서 제작기획의 압도적인 부분을 ‘경쟁력의 전도사’로 꾸몄다. 날이면 날마다 경쟁력이요, 정보·통신이요, 개혁이라는 기사와 프로그램으로 잔치판을 벌였다.
이 잔치판은 정치적 구호의 홍보잔치요, ‘업계 뉴스’판이자 ‘업계 홍보’판이었다. 만인을 돈을 위해 뛰는 장사속의 단거리선수로 만들자는 천박한 신흥종교다.

그 사이에 언론매체들은 국민경제를 감시하는 거시적 파수꾼의 사명을 깡그리 잊었다. 날마다 쏟아내는 특집들은 모두 ‘장사=비즈니스’요, ‘경제=이코노미’는 사막에서 샘물을 찾기보다 어렵고,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어렵다.

그것이 경쟁력이요, 세계화로 가는 길이라고 매체들은 나팔을 불었다. 또 ‘고금리’가 경쟁력의 발목을 잡고 있는 ‘역적’이라고 외치는 재벌들의 확성기 노릇을 했다. 금융이 재벌의 복마전이 되고, 단기성 ‘급전’의 빚더미가 대한민국의 코를 꿰고 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거꾸로 한국의 위기를 말하는 외국언론을 ‘악의적 중상’으로 몰아부치는 높은 사람들에 맞장구만 쳤다.

일찍이 손문(孫文)은 “중국은 만인의 식민지”라고 했다. 지금 이 나라는 IMF가 대표하는 ‘만국의 보호·감독’을 받는 치욕의 자리에 섰다. 자칫 ‘만국의 기업사냥터’가 아니면 ‘만국의 투기장’이 되지않을까하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이 참담한 위기로부터 탈출하자면 본질적 개혁이 절대적 전제조건이다. 재벌과 금융의 개혁도 중요하지만, 권력과 재벌의 입노릇을 해온 언론이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그것은 진실을 보도하고, 비판과 견제라는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는 것이다.

눈을 뜬 채 잠자는 것은 언론이 할 일이 아니다. 오직 괴수(怪獸)가 할 일이다. 부끄럽고 또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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