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주자 시리즈 관련 신문보도


현 시국이 ‘한보진행형’임에도 불구하고 청문회가 끝나기가 무섭게 신문마다 ‘대통령 바
람’이 불고 있다. 아직은 대선주자를 챙길 만큼 한가한 때가 아니다. 규명되지 않은 진실과
숱한 위증이 있다. ‘부실청문회’가 남긴 과제를 해결하지 않고서 역사는 진전될 수 없다.
청문회를 통해 보았듯이 정치권은 힘이 부쳤다. 검찰 수사는 예정된(?) 결론을 향해 가고
있다.

그러나 언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소위 ‘잘나간다’는 신문마다 대선후보 시리즈로
연일 요란하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경쟁적으로 대서특필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달 28일자에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에 대한 인터뷰를 발빠르게 실으며 ‘여
야대표 정국 인터뷰’라는 형식을 취했다. 2일자에는 ‘신한국 대선주자들의 강-약점’을
테마기획으로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MBC와 공동으로 대선예비주자 10명을 초청, 정치인과
시민대토론회를 열고 있다. 2일자에는 이회창 신한국당 대표와 토론회를 보도했다. 14일까지
계속된다. 동아일보도 ‘대선주자에게 들어봅시다’라는 타이틀로 국민회의 정대철부총재를
첫회 내보냈다.

조선일보의 경우 “후보단일화-내각제 일괄타결 변함없이”(김대중) “전당대회 빨리해야
대선유리”(이회창) “나홀로 여론 대통령”(박찬종) 등 벌써 대선 캠페인을 방불케 한다.
동아일보 역시 주제목에서부터 “새 인물은 나밖에 없다”(정대철)로 적나라하다. 중앙일보
의 토론회는 MBC TV를 통해 방영, 아예 대선주자에 대한 청문회를 연상시켰다.

지난해 연말 노동법 날치기 때도 언론은 이와 같은 우(愚)를 범한 적이 있다. 노동자들의 시
위는 연말과 새해 연휴를 맞아 소강상태에 빠졌다. 이 때 언론은 무슨 의도에서인지 순발력
있게 대선주자들의 인물 시리즈로 지면을 장식했다.

내용은 천편일률적이었다. 개별 정치인의 리더로서의 자질이나 정치적 신뢰도, 정책노선
도덕성, 개혁 마인드 등에 대한 비판적인 접근보다 개인의 성장사를 평면적으로 나열한 데
불과했다. 이러한 보도는 새해 연휴가 지나고 노동법에 대한 항의 시위가 거세지자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었지만 비판적 여론이 무성했다.

이번 역시 마찬가지다. 한보청문회는 끝났지만 한보 의혹은 여전히 규명되지 않았다. 한보사
건에 대해 이제까지의 보도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언론은 제역할을 못했다. 정치인들과 마찬
가지로 의혹을 부풀리기만 했을 뿐 물증을 찾아 진실을 추적하려는 흔적을 볼 수 없었다.

한보사태의 본질은 ‘검은 돈’으로 연결된 정경유착이다. 그런 와중에도 대선주자들은 막
대한 사조직을 운영하는 등 구태를 공공연하게 답습하고 있다. 특정기업 후원설도 들려온다.
이러한 때 언론의 역할은 대선후보에 대한 식상한 인물 탐방보다 수십억에 달하는 씀씀이의
실체를 밀착 취재해 파헤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그러나 어느 신문도 속시원한 추적보도
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언론의 감시 기능은 한국 언론의 경우 언제나 결정적인 순간에 사문화 되었는데 이번에도
예외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정치논리에 편승해 한보의혹이 채 규명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성급히 ‘대선 시리즈’를 남발한다면 이것은 한보사태를 희석시키는 주범이 될 수도 있다.
더 이상 ‘한보 물타기’ 혹은 ‘정국전환 의도’라는 따가운 눈총을 받아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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