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단위 참여자 곳곳

○…이날 민주노총 본부가 주관한 노동절 서울대회에는 노동자, 시민, 학생 등 2만여명의 인파가 운집한 가운데 식전행사로 가수 정태춘씨와 노래패 꽃다지가 등장해 축가를 불러 대회 분위기를 돋우었다. 또한 대회 참가 노동자들도 각 연맹별로 형형색깔의 모자, 풍선, 손수건 등을 가지고 나와 축제분위기를 돋우기도 했다. 특히 이날 기념대회에는 아이들의 고사리 손을 잡고 가족 나들이 형식으로 나선 노동자 시민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이와 관련해 한 민주노총 간부는 “지난해말 총파업을 승리로 이끈 민주노총의 사회적 인지도가 상당히 높아졌음을 반증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에 노조깃발 세우겠다”


○…본대회가 앞서 치뤄진 식전행사 가운데는 지난달 29일 삼성중공업 창원 1공장에서 해고된 이재용씨(전 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 의장)이 나와 삼성그룹의 노조탄압 사례를 보고했다. 특히 이씨는 자신의 해고 문제와 관련해 “사전 협의도 거치지 않고 일방적인 전출 명령을 내렸다”면서 “이는 노조 결성 시도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도”라고 삼성그룹을 강력히 비난했다. 이씨는 또 “원직 복직을 쟁취하는 것은 물론 민주노총과 함께 연대해 삼성그룹에 반드시 노조의 깃발을 세우겠다”고 말했다.

네팔노동자들 ‘철의 노동자’합창


○…식전행사에는 또 네팔 국적의 불법 체류 노동자 9명이 단상에 올라 외국인노동자 특별법 제정을 호소했다. 이들 중 모노주 쓰레스타씨는 비교적 또렷한 한국어를 구사하면서 ‘한국민들에게 드리는 글’이란 장문의 글을 발표, “좀 더 나은 생활을 위해 한국에 왔으나 노예와 다름 없는 근로조건은 우리가 인간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외국인 노동자특별법 제정을 위해 함께 노력하자”고 말했다. 이들 불법 체류 네팔노동자들은 또 노동가요인 ‘철의 노동자’를 불러 대회 참가자들의 많은 박수를 받았다.

경제구조 개혁 처방도 등장


○…식전행사 등으로 인해 1시간여 늦게 시작된 본행사에서는 지난달 29일 출범한 민주금융연맹의 심일선위원장이 ‘재벌 경제의 개혁’이란 주제발표에서 재벌을 ‘천민 자본’이라고 부르면서 “노동자들의 피땀의 결과를 정치인들에 대한 로비자금으로 물쓰듯 하면서 성장해 온 부패한 천민자본 중심의 경제구조를 개혁하기 위해선 노동자들의 정치세력화가 필수적이다”라면서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 개혁을 위한 3가지 처방을 내놓아 눈길을 끌었다.

심위원장이 내세운 처방은 △관치금융 철폐 △노조의 재벌과 정치권력 감시 활성화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통한 재벌 견제의 제도적 틀 마련 등이었다.

권영길위원장 즉석 제안 눈길

○…이날 권영길위원장은 당초 인쇄 배포된 대회사 대신 별도로 준비한 대회사를 낭독했다. 권위원장은 특히 대회사 가운데 사회개혁 문제를 언급하면서 “정부가 노동자들의 사교육비 문제와 주택문제, 의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98년도 예산안을 마련한다면 민주노총은 그에 상응하는 임금정책을 마련하겠다”고 즉석 제안해 관심을 끌었다. 권위원장의 이같은 즉석 제안과 관련해 한 노조 간부는 “지난번 총파업 때도 권위원장이 TV 토론회 등 예상치 않는 제안을 내놓아 정부를 곤혹스럽게 만들었지 않느냐”면서 “민주노총이 요구하고 있는 사회개혁의 가장 기본적인 내용을 밝힌 것”이라고 해석했다.

귀가시민-학생 무차별 연행


○…한편 민주노총은 이날 기념대회를 마친 뒤 종묘공원까지 거리행진을 할 계획이었으나 경찰이 장충단공원 진입로를 가로막아 무산됐다. 특히 이날 기념대회 이후 거리행진 봉쇄에 반발한 노동자들은 오후 7시께까지 진압경찰에게 돌을 던지며 거세게 항의했고 경찰은 최루탄과 다연발탄을 수차례 퍼부어 장충단공원 일대는 순간 격전장을 연상케했다.

경찰은 이날 저녁 장충단 공원 주변에서 대회를 마치고 귀가하던 노동자, 학생 1백30여명을 연행한 것을 비롯, 대구에서도 1백70여명을 연행했다. 이와 관련해 민주노총은 지난 2일 성명을 발표, “노동자, 학생들에 대한 무더기 연행 사태는 민주노총이 대선자금 공개 등을 촉구한 데 따른 의도된 조직적 탄압”이라며 “연행된 노동자, 시민 학생들을 즉각 석방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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