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회의 정한용의원(서울 구로갑)은 한보 사태 와중에 언론으로부터 유탄을 맞은 대표적 정치인으로 꼽힌다. 정의원은 한보로부터 한푼의 돈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4월7일자 중앙일보 1면 머릿기사에서 한보로부터 돈을 받은 정치인으로 지목됐다.

중앙일보의 보도가 나가자 경향, 국민, MBC 등의 보도가 줄을 이었다. 정의원은 주위 사람들에게 “언론보도는 사실과 다르다”며 해명도 하고 언론중재신청도 냈으나 누구도 자신을 믿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의 한결같은 답은 “언론이 설마 없는 얘기를 썼겠느냐”는 것이었다. 정의원은 한보 연루 정치인에 대한 검찰의 최종 발표가 있기 전까지 ‘부패한 정치인’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8일 오후 정의원을 만나 오보로 인해 그가 겪었을 고초와 우리 언론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언론보도로 상당한 고초를 괆었다고 들었는데.

“당시 정치인 대부분이 안받았다고 하고선 검찰에 다녀오면 받았다고 시인하는 분위기라 부인해봤자 변명만 늘어놓는 꼴이 돼버렸다. 내가 보좌진을 의심하고 보좌진이 나를 의심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됐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심문하는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심지어 가족으로부터도 진실을 말해보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한보로부터 돈을 받지 않았다고 아무리 부인해도 언론을 더 믿는 눈치였다. 답답할 따름이었다.”

-언론중재신청 결과는.

“언론중재신청이 진행되는 와중에 나에 대한 보도가 오보임이 밝혀져 해당 언론사들이 모두 해명기사를 게재하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언론사들이 특별히 나에 대해 악의를 갖고 보도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센세이셔널리즘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이상의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정정보도를 받아낼 수도 있지 않았는가.

“솔직히 언론은 무서운 존재 아니냐. 정치를 계속해야 하는 입장에서 언론과 불편한 관계를 만들 수는 없었다. 한 언론사로부터는 ‘정치 계속 안할 거냐’는 농담성 협박을 듣기도 했다. 지금 정치인 가운데 언론과 싸워서 누가 이기겠는가.”

-최근 한보사태 관련 보도를 두고 정치인 경시 현상이 극에 달했다는 지적도 들리는데.

“언론의 책임도 있지만 검찰이 더 문제다. 검찰의 수사 방향이 정치인 먹칠하기에 맞춰지다 보니 언론이 거기에 말려들어가는 것 같다. 검찰은 이번 한보 수사를 통해 국민이 정치권 전반에 대해 불신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결국 득을 보는 곳은 집권세력이다. 기성 정치를 불신케 만드는 것은 여당의 새 인물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일종의 정치적 상징조작이다. 언론이 여기에 부화뇌동하고 있다.”

-언론에 바라고 싶은 점은.

“언론은 지금 무소불위의 힘을 갖고 있다. 이 힘을 국가를 위해 썼으면 한다. 이젠 정치권력이 언론에 외압을 행사하는 것도 사라져야겠지만, 법이 언론에 대해서도 공정하게 행사돼야 한다고 본다. 자꾸 치외법권처럼 되는 데 문제가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사실은 언론이 스스로를 정화해 진정한 의미의 자부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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