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법이 박홍 전 서강대 총장의 ‘한국통신 노조 북한(조선) 사주’ 발언에 대해 7천만원 배상 판결을 내린 것은 무책임한 사회적 발언에 대해 엄중히 책임을 물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와 함께 이른바 ‘주사파’ 발언 소동에 대한 사법적 판결의 의미를 갖는 것이기도 하다.

박 전총장은 한국통신 노조 뿐 아니라 진보 운동진영과 관련해 주요한 사회적 쟁점이 제기될 때마다 ‘주사파’ 발언을 터뜨려 당사자에게 의식적, 물리적 피해를 안겨줬을 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 공안 분위기를 확산시키는 데 일조해 왔다.

박 전총장이 이같은 잇단 발언 파문은 무엇보다 그가 종교인인 동시에 대학 총장이라는 사회 지도층의 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사회적 통념상 아직 종교인이나 학자에 대한 일반인들의 신뢰도는 상당히 높은 게 사실이다.

그런 그가 이데올로기 문제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우리 사회의 특수성을 외면한 채 일방적으로 ‘주사파’니 ‘북한(조선)의 배후 조종’이니 하는 충격적 발언을 터뜨릴 때 몰고온 사회적 파장은 엄청날 수밖에 없다. 실제 지난 95년 한국통신 노조의 농성에 대해 ‘조선(북한) 사주’ 운운한 것은 언론에 크게 보도됨으로써 당시 한국통신 노조의 농성에 대한 사회 여론이 급속히 냉각되기에 이르렀다.

이런 저간의 사정을 돌아볼 때 재판부의 판결은 박 전총장의 돌출적 발언 행태에 쐐기를 박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단지 그의 발언이 한국통신 노조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 법적으로 확인됐다는 차원을 넘어 박 전총장의 발언의 신뢰도에 심대한 타격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뿐 아니라 박 전총장에 대한 법원의 판결은 ‘사회의 지도층 인사일수록 말을 아껴야 한다’는 상식적 판단의 타당성을 입증해 준 동시에 ‘양치기 소년 우화’의 교훈을 재삼 떠오르게 하고 있다.

그러나 법원이 중앙일보를 상대로 한 한국 통신 노조의 명예훼손 청구소송을 기각한 것은 논란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당초 중앙일보측에 대한 반론권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한국통신 노조가 제기한 이번 명예훼손 소송의 경우 사회적 영향력이 높은 인사의 발언을 언론이 그대로 인용 보도할 경우 발생할 지 모를 명예훼손 등에 대한 언론의 책임을 물은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중앙일보가 박 전총장의 발언 내용을 변경하거나 의견을 개입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소송을 기각했다.

이에 대해 언론계 일각에선 당초 한국통신 노조가 중앙일보를 포함해 5개 언론사를 상대로 언론중재위에 중재신청을 제기해 중앙일보만이 한국통신 노조의 반론권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점을 지적하고 있다. 논란이 예상되는 민간한 사안일수록 언론이 상대방의 반론권을 보장해 균형 있는 보도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앙일보측은 그러나 “발언을 아무런 논평 없이 사실 그대로 게재한 것으로 불법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한국통신 노조측은 “박 전총장의 무책임한 발언을 그대로 보도한 언론은 사실확인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책임이 있다”며 항소할 의사를 밝혔다. 2심 재판부가 어떤 판결을 내릴 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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