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의 ‘대선헌금 9백억 수수’ 보도에 대해 언론계에선 “이번 보도가 김영삼 대통령의 대선자금을 직접 언급하고 있는 만큼 그 사실여부에 따라 정치권이든 언론계든 엄청난 파문이 예상된다”며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그동안의 보도가 주로 대선자금의 외곽을 건드렸던 데 반해 이번 조선일보의 보도는 구체적 전달자와 전달장소, 시기와 액수를 명시했다는 점에서 그 파급력은 엄청나다는 것이다. 파급력이 엄청난 만큼 그 사실여부에 따라 조선일보든, 청와대든 떠안게 될 부담 또한 상당하다는 분석이다. 한 법조출입기자는 “조선일보의 보도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김대통령에겐 치명타가 될 것이며 반대로 오보로 드러날 경우 조선일보에도 큰 타격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조선일보 보도의 진위에 대해 법조기자들의 시각은 대체로 유보적이다. 한 방송사 기자는 “9백억 수수 사실을 확인해줄 수 있는 검찰 관계자는 손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제한돼 있는데 이들이 모두 부인하고 있다”며 “도대체 어디서 더 확인을 받을 수 있는지 모를 일”이라고 말했다.

다른 기자는 “조선일보의 보도가 무지막지하다는 인상마저 풍긴다”며 “그러나 과거 조선일보의 한보 정치인 리스트 보도가 최근 사실로 드러난 전례가 있는 만큼 섣불리 예단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조선일보의 입장은 분명하다. 법조출입 기자가 확인과정을 거쳐 기사화했다는 것이다. 보도내용이 갖는 엄청난 파괴력과 그 반작용을 고려할 때 조선일보가 확실한 증거없이 기사를 내보냈다고 보기엔 어렵다. 그러나 검찰과 청와대가 공식 부인을 하고, 서석재의원이 언론중재 신청 및 명예훼손
소송을 준비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치열한 공방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서의원은 9일 “누가 터무니없는 짓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뭔가 의도가 있다”며 음모설을 제기했다. 음모론의 요체는 민주계를 고사시키려는 세력이 조선일보를 통해 선택적으로 정보를 흘리고 있다는 것이다. 범민주계의 관리자로 부상한 서의원을 대선헌금의 전달자로 지목한 이번 보도가 범민주계 모임인 정치발전협의회의 결성과 때를 맞춰 이뤄졌다는 점이 이같은 의혹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조선일보는 음모설에 대해 역시 “말이 안된다”며 거론 자체에 대해 강한 불쾌감을 표시하고 있다. 서의원이 지난 95년 8월에도 ‘전직 대통령 4천억원대 가차명 계좌 보유 발언’ 보도를 전면 부인했으나 이후 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 비자금 사건으로 결국 사실로 드러났지 않느냐는 것이다.

한보정치인리스트 보도 때도 최형우, 김덕룡의원, 문정수 부산시장 등이 자신의 이름이 거명된 것과 관련, 음모설을 제기했으나 검찰의 수사 결과 대부분이 사실로 확인됐지 않았느냐는 반론이기도 하다.

조선일보가 추가 물증을 제시하는 것이 보도내용의 진실성을 뒷받침해주는 유일한 길이다시피하다. 검찰이 조선일보의 보도내용을 공식 부인한 이상 지금으로선 다른 언론들은 관망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만큼 조선일보가 후속보도를 통해 진실을 입증해내지 않는 한 검찰의 부인 속에서 진실 규명 자체는 미궁에 빠질 공산이 크다.

야당이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으나 좀더 분명한 확증이 발견되지 않는 한 ‘대선헌금 9백억 수수’는 현 정권하에선 일단 미결로 넘어갈 가능성도 적지 않다.

한편 서의원측은 이번 보도를 접하고 지난 95년 8월에도 ‘4천억 발언’ 보도로 총무처 장관직에서 물러나는 등 조선일보에 한 차례 홍역을 치른 기억을 떠올리며 “조선일보와 왜 자꾸 이런 악연이 일어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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