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들이 20대 사기범에게 집단적으로 농락당했다. 제보를 미끼로 언론사에 접근해 현금과 숙박비 등을 뜯어냈다가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경찰서에 구속된 임병연씨(21·무직)는 언론사의 극심한 경쟁 풍토를 이용해 유력 언론사를 상대로 사기 행각을 벌여 왔다.

임씨가 기자들을 현혹한 신분은 장기밀매 조직원. 임씨는 기자들과 방송사 시사프로 제작진들에게 “제주에 본부를 두고 있는 전국적인 장기 밀매조직의 서울지역 총무”라며 접근했다. 그는 “청소년 및 재중 동포 장기밀매 실태, 밀매와 관련된 전국 30여개 병원의 의사,간호사 명단을 갖고 있다”며 숙식비와 용돈을 요구했다.

현재 임씨가 어떤 언론사를 상대로 어느 정도의 금품을 뜯어냈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임씨가 경찰에 붙잡힌뒤 해당 언론사들이 ‘쉬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임씨는 지난 9월 중순부터 경찰기자들 사이에선 요주의 인물로 소문나 있었다.

임씨가 특히 ‘심혈’을 기울인 곳은 방송사들. KBS·MBC·SBS 등 방송 3사와 YTN 등에 접근했다. KBS ‘추적 60분’, MBC ‘시사매거진 2580’, SBS ‘뉴스추적’ 등 대표적인 시사프로 제작진들에게 ‘장기밀매 실태’를 제보하겠다며 용돈과 숙식비를 얻어 냈다. 금액은 대개가 50만원대 안팎이지만 일부 방송사는 이보다 훨씬 큰 금액을 사기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추적 60분’팀과 ‘뉴스추적’ 팀은 임씨의 제보내용에 따라 대전 인천 등 해당지역에서 취재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실제로 KBS ‘추적 60분’팀과 SBS ‘뉴스추적’팀은 ‘장기밀매’ 실태와 관련 리포트를 만들었다가 임씨의 사기행각이 밝혀지자 내용을 대폭 삭제해 내보내거나(KBS), 방영직전 프로그램이 펑크(SBS)나는 해프닝을 겪었다.

신문사도 임씨의 표적이었다. 동아일보의 경우 지난달 16일 사회1부를 찾아온 임씨를 인천 모호텔에 재워주고 먹여주며 ‘지극정성’을 다했으나 다음날 아침 이모 기자의 지갑만 도난당하는 쓰라린 아픔을 경험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문화일보에도 접근한 임씨는 한때 임씨의 행동을 수상히 여긴 기자들에 의해 경찰에 넘겨지기도 했지만 무혐의로 풀려나는 뛰어난 ‘위장술’을 발휘했다. 임씨는 조선일보 기자의 신고로 19일 마포서 강력반에서 조사를 받았으나 혐의가 없다며 귀가조치됐다.

임씨의 사기행각이 종지부를 찍은 것은 지난달 27일. 한국일보 사회부 이동준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예의 ‘장기밀매’ 내용을 제보했다가 한국일보 시경캡의 기지로 붙잡혔다. 다른 언론사 정보보고를 토대로 임씨의 범죄 내용을 알고 있던 한국일보 시경 캡은 이 기자에게 “사기꾼이니 잡아라”는 특명을 내렸고 이 기자는 다음날 임씨와 회사근처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후 종로경찰서에 연락, 임씨를 검거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검정고시로 고교 졸업학력을 취득한 임씨는 95년 3월 서울 강동구 모 병원에서 자신의 신장을 1천 5백만원에 팔았던 경험을 살려 기자들에게 수술 흉터, 조직 검사 기록, 1천 5백만원이 입금됐던 통장등을 보여주면서 기자들을 ‘유혹’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 언론사 사회부장은 “이번 사건은 언론사의 빗나간 특종 경쟁이 어느 정도의 부작용을 낳고 있는지 명확히 보여준다”며 “지금과 같은 풍토에선 얼마든지 재발할수 있는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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