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로비에는 성역이 없다.”

편법 상속이라는 사회적 비난여론을 사고 있는 삼성그룹 이건희회장의 외아들 재용씨의 삼성그룹 계열사 전환사채 취득을 통한 재산부풀리기에 사법부가 제동을 걸었으나 때늦은 ‘지각판결’이 돼버려 사법 정의가 실종된데 이어 대다수 언론들도 이를 외면하거나 축소보도해 재벌에 약한 언론의 행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참여민주사회시민연대(공동대표 김중배·김찬국)는 지난 2일 보도자료를 통해 “수원지법 민사합의 30부(재판장 이흥복부장판사)가 지난달 30일 삼성전자 소액주주인 장하성교수(고려대·경영학)가 삼성물산과 이재용씨를 상대로 낸 사모전환사채 처분 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으나 결과적으로 ‘늑장 판결’이 돼 사법정의가 실종됐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수원지법 민사합의 30부는 장교수가 낸 가처분 결정을 받아들여 삼성전자가 지난 3월 24일 재용씨등에게 발행한 6백억원 어치의 전환사채의 주식 전환을 민사본안소송 확정 판결 때까지 금지시켰다.

그러나 재용씨가 자신이 보유한 4백50억원어치의 전환사채를 법원의 가처분 결정 하루전인 29일 주식으로 이미 전환, 법원의 결정은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재판부는 특히 당초 26일로 예정돼 있던 재판을 별다른 이유없이 29일로 연기해 결과적으로 재용씨의 전환사채 주식 전환을 용인해준 꼴이 됐으며 재판결과의 사전유출및 삼성그룹의 로비의혹까지 제기됐다.

법원의 이번 가처분 결정은 재벌의 새로운 편법 재산 상속이라는 비난을 사고 있는 재용씨의 삼성그룹 계열사 전환사채 취득및 주식전환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참여연대의 보도자료를 접한 서울지법·증권거래소·종로경찰서 출입기자들은 법원 판결이 갖는 의미와 재판부의 ‘늑장판결’의 문제들에 주목해 기사를 출고했으나 대다수 신문과 방송들은 이를 아예 보도하지 않거나 단신 기사등으로 축소 보도했다.

한겨레가 30일자 경제면 3단기사로, 한국일보가 가판에서 사회면 4단 기사로 보도했으며 한국경제신문이 사회면 준머릿기사로 비중있게 보도했을 뿐이다.

동아일보, 중앙일보등은 아예 보도하지 않았으며 조선일보는 시내판에 1단으로 보도했을 뿐이다. 당초 사회면에 ‘이재용씨 사모CB주식전환 법원 시간벌어주기 의혹’이라고 비중있게 보도한 한국일보도 시내판에서는 기사를 빼버렸으며 한국경제도 시내판에서는 기자비중을 낮춰 보도했다.

방송도 사정은 마찬가지. MBC는 5시 뉴스에서 비중있게 보도했으나 9시 뉴스데스크에서는 단신으로 처리했으며 KBS는 9시 뉴스에서 단신으로 보도했다.

서울지법의 한 기자는 “법원 기자실 기자들이 참여연대의 보도자료를 받고 재판부 반론까지 충실히 취재해 상당분량의 기사를 출고 했었으나 빠졌다”고 밝혔다.

서울지법의 또 다른 기자도 “한 신문에만 크게 들어가면 광고 불이익이 있으니 전 신문이 크게 보도할 수 있도록 하자고 기자들끼리 얘기했으나 결국 빠지거나 축소 보도된 데가 많았다”고 밝혔다.

한편 참여연대측은 법원의 늑장 판결에 대해 “재판부가 전환사채의 주식전환이 가능해지는 시점인 9월 25일까지 가처분에 대한 결정을 내리지 않았고 26일로 예정되어 있던 재판마저 연기함으로써 이재용씨 등에게 주식전환을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준 셈”이라며 법원의 ‘시간벌어주기’ 의혹을 강하게 제기했다.

재용씨의 사모전환사채 취득을 통한 편법 상속 문제는 지난해 6월 17일자 주간매경에서 사모전환사채 취득을 통한 재용씨의 에스원 주식 매입과 주가 동향 분석을 통해 처음 제기됐었다.

매일경제는 당시 삼성그룹 비서실등의 요청을 받아들여 일부 배포까지 끝난 주간매경을 폐기처분하고 두쪽에 걸친 ‘에스원 주가’ 관련 기사를 드러내는 대신 삼성광고를 게재해 재발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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