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일 말지 사장에 박충렬 기획실장이 취임했다. 임기는 3년. 박 사장은 역대 말지 사장 가운데 최연소. 60년생이니 우리나이로 올해 설흔 여덟이다. 80학번으로 ‘전두환 정권’에서 활약한 소위 ‘모래시계 세대’가 최고 경영진 자리에 오른 것이다. 말지 사원들의 기대는 단순히 나이에 그치지 않는다. 최초의 비해직 언론인 사장이란 점에 더욱 무게를 두고 있다.

그동안 말지 경영진은 75년 동아·조선 자유언론실천선언, 80년 언론통폐합 와중에 강제로 언론계를 떠난 ‘노장’들의 몫이었다. 박 사장의 부임은 ‘새술은 새부대’에 담겠다는 해직 언론인들의 뜻이 담겨 있다. ‘세대 교체’를 통해 변화된 언론환경에 걸맞는 경영혁신을 이루겠다며 해직언론인들이 스스로 ‘사장’ 자리를 반납한 것이다.

“말지는 진보와 언론개혁을 희망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의 것입니다. 그간 이 뜻을 가장 정확하게 반영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해직언론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언론운동의 주체도 ‘시민’ 차원으로 확산됐습니다. 당연히 말지 경영도 해직언론인 중심에서 ‘주체’가 이동되고 있습니다. 내부에서 사장을 선임한 것은 이러한 시대의식의 결과라고 봅니다.”

박 사장은 지금까지 말지가 ‘빚도 없고 이윤도 없는 경영 부재의 상황’이었다고 진단했다. 전통은 유구하되 변화가 없다는 비판이 많았던 것이다. 그는 말지가 ‘판매수입으로 유지되는 유일한 잡지’라고 소개했다. 말지측의 설명에 따르면 말지 수입구조는 말 그대로 한국언론의 모범이다.

정기독자 40%, 서점판매 35% 등 판매수입이 전체 수입의 90%를 차지한다. 박 사장은 현재 8%선을 유지하고 있는 광고수입을 5% 수준으로 더 낮추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이는 단순히 ‘희망사항’에 머물지 않는다.

“작년 연말 대비 판매량이 10% 가량 늘었습니다. 고무적인 현상이지요. 87년 6·29선언이 있자 말지가 위축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로 나타났지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사회의 진보와 민주화는 말지의 동력으로 작용하지 결코 장애물일수 없습니다.”

말지는 그 어떤 잡지보다 질긴 생명력을 보여 왔다. 보도지침 사건으로 간부진이 구속되는 사태가 빚어졌고 극우단체들과 정보기관의 방해도 극심했다. 멀고 험한 길을 돌아 이제는 ‘종합미디어그룹’을 지향한다고 포부를 내세울 정도로 성장한 말지의 저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당연히 사람이지요. 우리사회가 말을 필요로 하는 한 말은 발간되어야한다고 믿는 사원들의 신념과 단결력이 자양분이었습니다. 숱한 어려움속에서도 말지를 지켜온 전현직 사원들에게 고마움을 표합니다. 물론 그들이 버틸수 있었던 것은 말지와 같은 잡지가 한국에 있음을 자랑으로 여기고 성원과 애정을 아끼지 않았던 독자들이 버팀목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이지요.”

박 사장은 말지의 모태인 민언협이 창립되던 85년 대학(서울대 법대)을 졸업했다. 그해 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으로 6개월간의 옥고를 치른 이래 반제동맹사건(86년), 김동식 간첩사건(96년) 등으로 수차례 투옥됐다. 말지에선 총무부장, 기획실장을 거치며 경영 실무를 익혔다.

그는 특히 김동식 간첩사건 당시 안기부에 끌려가서도 자술서 작성을 거부, 끝내 무죄 판결을 이끌어낼 정도로 근성있는 재야운동가였다. 그같은 이력을 반영하듯 그는 “돈을 믿는게 아니라 독자를 믿는 경영자가 되겠다”며 “말지의 새로운 출발을 지켜봐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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