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수들에 대한 사면의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는 ‘사상전향제’에 대한 국내외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2월 21일 한국을 방문했던 국제 엠네스티 먼고번 아태국장은 “사상전향을 강요하는 것은 민주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며 “한 국가의 국시라는 것은 국민들의 자유로운 의사표현의 절차에 의해 수렴돼야 하는 것이지 하나의 틀을 정해 놓고 끼워맞추는 식이 되어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사상전향제도는 ‘사법적 근거’가 불분명하다. 굳이 근거를 찾아보자면, 법무부령 제111호 수형자분류규칙. 수형자 분류규칙의 제2조 1항 제5호에 따르면 “확신범으로서 그 사상을 포기하지 아니한 자”는 수형자분류처우규칙의 적용대상에서 제외, 교도소의 작업장에서 일할 수도 없을 뿐더러 면회 회수도 제한되고 가석방 대상에서 제외되는 등 갖은 불이익을 받게 된다. 수형자분류처우규칙은 수형자의 작업성적, 소내생활, 복역연수 등에 따라 4급에서 1급까지 분류, 급수에 따라 처우를 받게 하는 제도로 정치범에 대한 열악한 처우를 합법화하는 것으로 일제시대부터 이름을 달리하며 존속돼 왔었다.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문제제기도 있었다. 유엔인권위원회 제 52차 정기총회에서는 유엔의 ‘특별보고관’이 95년 한국을 방문·조사·작성한 ‘한국의 의사표현에 관한 특별보고서’가 유엔의 공식문서로 채택되었는데 이 보고서에서는 “특정한 정치적 신념을 가진 것으로 여겨지는 재소자는 교정당국에 의해 그 신념을 포기하도록 요구받는다.

재소자들이 이러한 사상전향의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가석방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고 사면대상이 되지 않으며, 서신왕래와 면회에 관한 권리가 제한된다”며 “이러한 관행은 세계인권선언 제 19조와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 19조에 규정된 사상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91년도에는 박원순 변호사등 민권 변호사들이 이 규칙의 위법성을 지적하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3년 동안 변변한 심리 한번 진행시키지 않았다. 이에 따라 박원순 변호사는 94년 의견서를 제출하며 심리를 촉구하기도 했다.

그 후 헌법재판소는 1년여가 지난 뒤 심판청구 각하 판결을 내렸다. 당시의 판결은 헌법소원을 청구한 지 4년이나 지나서 내린 판결이란 점에서 재판부의 무책임함을 보여준 사건이었을 뿐 아니라, 규칙의 위법성 여부가 아니라 ‘소원 청구 기간이 경과해 헌법소원을 냈다’는 형식 법논리를 내세워 심판청구를 기각했다는 점에서 재판부의 ‘피해가기’식 판결이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사상전향은 7·4 남북 공동성명 발표 이후 남북 간의 정치범 교환에 대비 정치범들에게 본격 적용됐다. ‘사상전향’공작은 구타 등 강제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교정당국의 사상전향공작으로 사망한 사람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전향장기수로 만기출감한 김선명씨에 따르면 남파공작원으로 체포된 최석규씨는 전향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지난 74년 4월 4일 교도당국이 일반죄수들을 시켜 폭행, 사망하게 했다는 것이다.

또한 병자가 되었어도 미전향수라는 이유로 입병 요청을 했을때 대부분 불허돼었으며 일부는 사망하기도 했다. 69년 위동맥 출혈이었던 윤석만씨와 80년 폐결핵에 걸린 유재인씨, 탈장이 일어난 신창길씨등은 수술과 치료를 거절당해 옥사한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현재도 각 교도소에서는 사상전향 공작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화실천가족협의회에 따르면 골수암 진단을 받아 사경을 헤매고 있는 신인영씨에게조차 대전교도소측이 사상전향을 강요하고 있는 등 양심수 석방을 앞두고 장기수들에 대한 사상전향 공작이 펼치고 있다.

21세기를 코앞에 둔 현재. “사상의 자유란 우리가 동의하는 사상의 자유가 아니고, 우리가 증오하는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라는 ‘사상의 자유’ 본연의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는 게 인권운동 관계자들의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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