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정부가 출범했다. 김대중 정부는 ‘자율적인 언론개혁’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언론개혁에 대한 언론계 안팎의 기대감도 그 어느 정권보다도 크다. 그러나 언론개혁은 반드시 자율적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다. 정권 차원에서 토대를 제공하고 또 여건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시발점은 큰 것보다는 작은 것에서 찾자. 언론개혁의 실마리는 결국 작은 것들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풀릴수 있다. 본지는 새정부가 언론개혁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할 다섯가지 과제를 선정했다.



언론인에게도 엄정한 법집행을
언론인 뇌물 수수 명확한 진상 밝혀져야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 그러나 언론인들은 불변의 이 진리를 피해간다. 법의 잣대는 언론인 앞에서 굴절되거나 왜곡된다.

대형사건이 터지면 어김없이 언론인 거명설이 나돌지만 결론은 항상 ‘용두사미’식이다. 김영삼 정부에서 언론인들이 등장한 대형비리 사건만해도 부지기수다.

지난 92년 슬롯머신 수사 당시에는 한 방송사 간부가 정덕진씨측의 로비스트로 활동해온 사실이 밝혀졌고 카지노 대부로 통하는 전낙원씨 탈세 사건에서도 한 언론사 사주 이름이 오르내렸다.

현대중공업 비자금 사건때는 일부 경제부 기자들이 돈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한보그룹 부도 사태에는 청와대에서까지 공공연히 언론인 뇌물 수수를 언급했다. 6공 말기에 터진 수서사건은 ‘총체적인 언론인 불신’을 야기할 정도로 언론인 비리가 정면으로 부각됐다. 그러나 어떤 수사진도 언론인 문제를 정면으로 건드리지 못했다. 언론이 누리는 위세가 두려웠든지 아니면 위법 행위가 미약한 것이었든 명확한 진상을 밝히지 못했다.

물론 사법당국의 칼날이 모든 언론인을 피해가는 것은 아니다. 지방지, 그것도 규모가 작은 곳일수록 잔혹할 정도로 엄정한 법집행이 이루어진다. 김영삼 정부는 집권후 모두 1백여명에 달하는 지방언론인을 구속했다. 일간지 사주 30여명을 비롯해 지방지 주재 기자들이 그 대상이었다. 큰 사이비는 애써 눈감은 채 상대하기 편한 곳만 매번 두드리는 꼴이다.

어찌된 셈인지 사법당국의 서슬퍼런 칼날은 유력 언론사, 혹은 소속 언론인들을 항상 피해간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비상식적 법집행은 언론인의 윤리의식 저하를 가져오고 언론인 전체 집단을 불온시하는 사회적 고정관념을 고착화시킨다. 나아가 언론이 필요이상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밑그림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검찰의 항변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언론인의 사법처리와 관련 증거 확보가 어렵다는 것이다.

뇌물 사건의 경우 법적 규정도 모호할 뿐 아니라 뇌물 제공자들이 언론인에 대해서만큼은 입을 다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엄정한 법집행을 내세워 언론자유를 침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언론을 바로세우기 위해선 위법 행위를 저지른 언론인들이 법의 이름으로 정당한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것은 언론개혁의 시작이자 동시에 귀결점이기 때문이다.


출입처 중심 취재문화 개선
정치권-언론 담합관계 청산 재정립
주·월간지 기자에도 공평한 기회 제공




‘출입처=출입기자단제’ 개선은 새 정부가 실현해야 할 언론개혁 과제 중 주변적인 것일지 모른다. 정부가 개입하기엔 지극히 일상적인 문제이다. 그러나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출입처 중심 취재 문화를 개선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기자실 개방과 기자단제 폐지 문제는 일선 기자와의 직접적 충돌이 예상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비근한 예로 96년 경남 남해군청의 사례가 그렇다. 김두관 군수가 출입 기자들의 담합과 비리를 뿌리뽑기 위해 기자실을 폐쇄하고 브리핑 룸으로 대체하자 기자들이 일제히 김군수를 비난하는 기사를 연속 게재했다. 물론 결론은 김군수의 승리로 돌아갔지만 그때까지 김군수는 호된 댓가를 치뤄야 했다.

기자들의 반발은 새 정부로서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새 정부가 언론을 통제하거나 종속되지 않고, 독립적·상호보완적 관계를 유지하려 한다면 그에 걸맞게 형식도 변화해야 한다. 출입처제=출입기자단제로 상징되는 정치권과 유력 언론 간의 담합 관계를 청산하고 투명한 관계를 재정립해야 하며 이 담합에서 소외됐던 주·월간지 기자에게도 공평한 기회를 주는 것이 새 정부의 소망스러운 모습일 것이다.

불법해고 만연
일방적 감원·부당전직 엄중히 다뤄져야



각 언론사가 고용조정이라는 명분 아래 ‘해고를 위한 해고’를 자행해 노조의 반발을 사고 있다. 최근 언론사에 일고 있는 불법형태의 해고는 부당전직을 비롯한 권고사직·무급휴직·대기발령 등.
우선 언론사들은 권고사직을 종용하다가 이를 거부할 경우 전혀 업무를 주지않는 대기발령을 시키고 있다. 동아·중앙·한국경제신문 등이 간부급사원에 한해, 대전·국제 등 지방신문사들은 평사원에게까지 권고사직을 단행했다.

특히 일부 언론사들은 일방적으로 인원을 감원하겠다고 통보하고 사표를 종용, 물의를 빚고 있다. 세계일보 경영진은 “6백60명의 사원을 4백90명으로 20% 줄이겠다”며 “차장급 이상 사원 1백5명 전원을 오는 28일자로 의원면직 처리한다”고 밝혔다.

이와함께 무급휴직도 잇따르고 있다. 중앙·경향 등이 이를 시행하고 있으며, 방송사들도 이를 악용하고 있다. 무급휴직 동안은 급여를 지급하지 않고 있어 무급휴직중인 사원은 그 기간동안 생활고에 시달려야 하는 실정이다. SBS는 희망퇴직자 수를 늘리기 위해 무기한 무급휴직을 실시하겠다고 밝혀 불법해고 시비를 불렀다.

지방언론사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광고수입 감소로 경영이 어려운 이들 지방사들은 일방적으로 해고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경영난이 심각한 호남지역 언론사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감원에 나섰으며, 영남·충청 등 언론사들도 해고의 칼을 들이대고 있다. 시사저널·일요신문 등 주간지들도 해고바람에서 예외가 아니다.

이기호 노동부장관은 지난달 16일 “국회에서 관련 법령이 개정된 것을 계기로 무분별한 고용조정이 확산될 우려가 있다”면서 “불법 정리해고 등에 대해서는 철저히 조사, 엄중히 사법처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불법 임금체불 횡행
현재 10여개 언론사 임금체불 상태



언론노련이 소속 노조를 통해 자체 집계한 바에 따르면 지난 16일 현재까지 모두 10여개 언론사에서 임금이 체불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향신문이 지난해 상여금 가운데 3백50%와 2월분 급여를 지급하지 못했으며 대전일보는 지난해 상여금 5백50% 전액을 지급하지 못했다. 세계일보와 한국일보는 연말 상여금과 연월차 수당을 지불하지 못했다. 중도일보는 연말 상여금을, 매일신문은 연월차수당을 지급하지 못했다.

서울신문의 경우 설날 상여금 1백%와 연월차 수당, 그리고 호봉승급분을 지급하지 못했으며 부산일보 역시 설날 상여금(특별 성과금 50%)를 지급하지 못했다. 한국경제신문은 연월차 수당과 1월 상여금(1백%)를 지급하지 못했고 무등일보는 지난해 12월분과 2월분 상여금을 지급하지 못했다.

KH-내경은 연월차수당을 지급하지 못했으며 2월 상여금 지급 유보 방침을 노조측에 통보한 상태이다. 방송사의 경우 CBS가 지난 연말부터 상여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


세계일보 노사갈등
전·현직집행부 3인 복직판결 무시



언론사는 성역인가. 새정부가 정리해고를 합법화하면서 불법·부당노동행위는 철저히 엄단하겠다고 밝힌 상황에서도 언론사는 여전히 불법의 성역인 듯하다. 지난해 7월 노동조합이 설립된 후 8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세계일보는 노동조합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정부 산하 기구인 중앙노동위원회가 내린 노조 전·현직 집행부 3인에 대한 복직판결도 버젓이 무시하고 있으나 처벌대상이 되지 않고 있다.

누가 돌렸는지 모르는 유령의 문서에 서명을 시킨뒤 지난해 12월 2백% 상여금을 지급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 이후 수당과 상여금 체불을 일삼고 있으나 체불에 대한 법차원의 엄단은 없었다.
사측의 후안무치한 불법행위에 노조는 이상회 사장을 검찰에 부당노동행위로 고발하고 새정치국민회의가 설치한 부당노동행위 대책위원회에도 자료를 제출해 조사를 요청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정부가 언론사에 씌워진 성역의 베일을 벗길 의지가 있는 지는 의문이다. 국민회의 부당노동행위 대책위는 조사를 실시한다고 밝힌 뒤에도 어떤 적절한 대응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검찰 역시 조사에 착수하지 않고 있다.

세계일보에는 불법·부당노동행위로 지목될 수 있는 항목 중 적용되지 않는 게 없을 지경이다. 따라서 세계일보는 새 정부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자세뿐 아니라 언론사에 대한 불편부당함을 보여줄 수 있는 매우 적절한 실험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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