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이 바뀌었지만 ‘야당 잡는 언론’은 그대로 였다.

JP총리 인준을 둘러싼 여야 대치정국 속에서 한나라당은 야당이 언론으로부터 얼마나 불리한 위치에 있는가 새삼 실감했을 것이다. 지난 2월 25일 김대중정부의 출범으로 ‘공식적’야당이 된 한나라당은 국회불참을 통해 총리인준을 무산시켰다. 이에 언론은 야당에 국정공백의 책임을 물으며 일제히 비난하고 나섰다. 이번 사태의 책임은 대부분의 신문에서 언급했듯이 여야 모두에 있었지만 비판의 잣대가 너무도 달랐다는 것이 민실위의 판단이다.

총리인준에 대한 신문의 야당 압박은 지난 1월 경향신문(11일)과 세계일보(16일)가 한나라당에 불안한 시선을 보내면서 시작되었다. 이어서 2월 25일 국회표결을 하루 앞두고 세계일보가 ‘JP총리인준 돼야 한다’고 못박고 나섰고, 중앙 ‘인준이 바람직’(20일)과 경향 ‘지명철회 요구는 아무래도 무리’(26일)도 노골적인 여당 편들기에 나섰다.

신문들은 여야 모두에게 합리적 해결을 촉구하면서도 그 방식은 판이하게 달랐다. 여당에게는 야당을 자극하지 말고 달래 줄 것을 주문했고 야당에게는 ‘부결될 경우 일어날 혼란과 불안’(중앙 2.20), ‘정국혼란의 모든 책임은 한나라당이’(한국 2.22, 서울 2.26)라며 눈초리를 치켜들었다. 나아가 ‘정계개편이 본격 대두될 것’(서울 2.23, 세계 2.24)이라며 야당을 겁주기도 했다.

국정의 책임을 따지자면 여당에 먼저 묻는 것이 상식이다. 더욱이 야당이 빌미를 제공했으니 의원빼가기식의 정계개편을 당할 수도 있다는 식의 주장은 위험하기조차하다.

신문들은 여당의 논리를 확대재생산하는 일에도 게으르지 않았다. JP는 자격에 하자가 없으며(경향 2.28, 중앙 2.20) 총리인준에 대해 국민들은 지난 대선을 통해 사전동의 했으며(경향 1.11 2.28, 세계 1.16, 중앙 2.20, 한국 2.22, 서울 2.23) 국민여론도 찬성(세계 2.24)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대로 야당의 논리는 당내사정에 따른 당략적 차원으로 치부해 버렸다(한국 2.22, 경향 2.23, 국민 서울 2.26).

총리인준이 무산된 25일자에는 국정공백의 책임을 야당에 돌리며 다소 원색적인 용어들이 동원되었다.
‘비열하다’(동아) ‘횡포’(한국) ‘비이성’(경향) ‘명백한 선거불복’(서울) ‘단결적 당략’(중앙)등등. 그러나 여당의 잘못을 지적하는 일간지는 거의 없었다. 한국일보만 사설 말미에 ‘집권당의 정치력 부재’라는 말을 한마디했을 뿐이었다. 한나라당에 대한 비판은 여야 총수회담 발표가 있던 날인 26일에서야 누그러들었다. ‘인사 청문회 불이행(한국문화)’‘여당논리의 빈약’(문화)‘여당의 겸손 필요’(중앙) ‘여론을 앞세운 여당’(동아) 등에 대한 질책이 있었으나 야당에 대한 비판 속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이처럼 야당에게 JP인준을 직간접적으로 강요하던 신문들이 26일 이후에는 부결시켜도 좋으니 적법한 표결에 참가하라고 촉구했으니 이것은 시기적으로 여당의 주장과 동시에 나왔기에 신선한 감이 떨어지는 판단이다.

한편 다른 신문들이 3~5회에 걸쳐 이 문제를 사설로 다룬 것과는 달리 조선과 한겨레는 단 2차례씩만 다루었다. 조선은 반DJ정서를 드러냈고 한겨레는 JP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조선은 야당에 대해 가타부타 없이 김대통령의 타개책을 요구했다(2.25). 이어 ‘한나라당의 당론은 충분히 일리가 있고 이에 대한 비난은 구체성이 없다’고 홀로 변호하고 나섰다(2.28).

그러나 당연히 지적했어야 할 야당의 국회불참에 대해서도 또 적법한 표결을 해야 한다는 주문도 없었다. 한겨레는 ‘JP에 대한 평가는 의원 각자가 정할 일이며 결격사유가 많은 인물이면 부결시키면 된다’(2.26)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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