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역시 재벌 삼성에 약했다. 지난 23일부터 삼성중공업 창원 공장에서는 1천여명의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했지만 대다수 언론은 침묵하고 있다.

지방지로서는 부산일보와 국제신문이, 중앙일간지로는 문화일보가 유일하게 보도했을 뿐이다.

기사를 출고하지 않았다는 한 중앙지의 창원 주재기자는 “일인당 3~4억원의 보상금을 원하고 있어 무리한 요구사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대위측도 이 문제가 부각될까봐 언론에 적극적이지 않았다”고 ‘묵살’의 이유를 밝혔다. 노동자들에게 불리하게 될까봐 보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위로금을 요구하는 것은 우리들의 당연한 요구이지만 이 부분이 언론에 잘못 부각될지 모른다는 염려를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는 비상대책위 관계자의 말도 이같은 기자의 입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한 지방지 기자는 “비대위측이 제시하는 보상금이 무리한 측면이 없지 않지만 삼성중공업의 파업 사실 그 자체는 빅 뉴스가 아니냐”며 “보도하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없는 판단”이라고 지적했다. 비대위측의 입장과 무관하게 보도해야할 기사였다는 것이다.

무노조 사업장이나 다름없는, 그래서 파업이 일어나기가 사실상 힘든 삼성그룹 계열사 사업장에서 1천여명의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이고 있는 점, 기업을 인수·합병·양도할 경우 정리해고를 허용한 개정노동법이 통과된 이후 외국자본에 의해 인수되는 기업 노동자들의 고용불안감이 표출된 첫 사례라는 점 등을 볼 때 충분한 기사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비대위측 관계자도 “취재협조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며 “엄청난 규모의 정리해고가 불보듯 뻔한 상황에서 위로금을 요구하는 것은 생존의 요구이기에 직접 방문해서 우리들의 얘기를 들어달라고 했지만 어느 언론사도 직접 방문해 취재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언론플레이에 적극 나서지는 않았지만 언론이 적극 취재에 나선다면 언론보도를 무조건 꺼리는 것도 아니라는 입장인 것이다.

그렇다면 기사 가치도 충분하고, 비대위측의 취재 협조도 받을 수 있는데 왜 언론들은 보도하지 않았는가. 그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또다른 지방지 한 기자의 말에서 추측해 볼 수 있다. “삼성측이 삼성 중공업의 파업이 알려지면 국가이익의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며 보도하지 말 것을 부탁했다”는 것. 삼성측의 협조요청이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삼성측도 이를 간접 시인했다. 삼성경남지역본부의 한 관계자는 “25일 경 기자들에게 확인 전화가 와 IMF상황에서 삼성중공업건은 국가정책상 외국자본 도입의 모범 사례라는 회사의 입장을 전달했다. 이것이 굳이 요청이라면 요청이라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기사가 나가지 않은 것을 보고 기자들이 이 사안을 국가 정책적 사안으로 바라보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결국 이번 삼성중공업 파업 보도 누락은 삼성의 언론 관리력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로 남게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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