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관계가 얽힌 사안은 중계보도가 최선이다.”
언론계의 오랜 불문율이 새삼 확인됐다. 3백70여만평에 이르는 김포매립지의 용도변경을 둘러싸고 동아건설과 농림부가 실랑이를 벌이는 데 대해 대다수 언론이 중계보도로 일관한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2월 동아건설측이 미국의 팝가수 마이클 잭슨과 세계적 거부인 사우디 아라비아의 알 왈리드 왕자를 초청해 투자협상을 벌이면서부터.

이후 인천시와 동아건설 채권은행단이 농지로 돼있는 김포매립지를 산업용지로 변경해 달라고 정부에 건의하고 나섰다. 급기야 그 ‘배후’격인 동아건설도 지난달 24일 농림부에 40억 달러에 이르는 외자유치를 내세워 용도변경을 공식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정부는 주무부서인 농림부는 물론 국무총리실, 김대중 대통령까지 나서 ‘절대불가’ 입장을 고수했다. 산업용지로 조성할 경우 무려 10조원에 이르는 시세차익이 생겨 특혜시비가 일 것이 자명하며, 쌀자립 정책이나 수도권 인구집중 억제정책에도 위배된다는 이유였다.

정부의 의지가 강력했고 그 이유도 너무나 타당한 것이었는데도 대다수 언론은 설설 기기만 했다. 농림부가 ‘절대불가’ 입장 천명(9일), 그리고 동아건설의 용도변경 공식 요청(24일) 등 사안이 불거질 때마다 양자의 입장을 기계적으로 전달하는 데 그쳤다.

물론 기획이나 해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동아 김포매립지 “정면돌파”>(국민 25일), <동아건설·농림부 “외자나 쌀이냐”>(동아 27일), <김포매립지 용도변경 불가 최후통첩>(문화 10일), <김포매립지 용도변경 공식요청>(서울 25일), <동아 ‘김포매립지 용도변경’ 공식요청>(세계 25일), <다시 불붙은 김포매립지 용도변경 논쟁>(조선 25일), <동아건설 김포매립지 어떻게 될까>(중앙 25일), <김포매립지 용도변경 움직임><동아, 김포매립지 용도변경 요청>(이상 한국 10, 25일) 등을 쏟아냈지만 중계보도의 한계를 건너뛰지 못했다. 거의 모든 기사가 동아건설과 농림부의 입장을 수평대비시키는 데 급급했던 것.

대다수 언론의 눈치보기 보도가 심한만큼 한겨레의 ‘분투’는 더욱 돋보였다. 한겨레는 지난달 3일 조흥, 상업, 서울, 외환은행 등 동아건설 채권은행단이 정부에 김포매립지 용도변경을 건의키로 입장을 정리한 후 스트레이트, 해설, 칼럼, 사설 등을 총동원해 용도변경 저지에 나섰다.

한겨레는 7일자 사설 <김포매립지 용도변경 안된다>에서 정부가 용도변경을 허가할 경우 “사회정의에 어긋나는 것은 물론 김대중 정부의 도덕성에도 지우기 어려운 흠집을 남길 것이다. 자칫 ‘제2의 수서파동’이 일어날 소지도 없지 않다”며 ‘절대불가’를 강력히 촉구했다.

한겨레는 또 22일자 이봉수경제부장의 <데스크칼럼-김포매립지와 알스메르>에서 농업 용수로 확보 난망, 외자 유치 절실과 같은 동아건설의 용도변경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한 뒤 “동아가 끝내 딴 생각을 한다면 면허조건을 위반했으므로 매립면허를 취소하는 게 옳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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