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나라는 하루에도 몇십개씩 중소기업이 부도나고 몇천명씩 일자리를 잃는 극심한 경제위기를 겪고 있다. 이 위기의 본질과 책임을 밝히는 일은 우리나라가 하루빨리 경제회복의 길로 들어서기 위해서나 앞으로 이런 위기에 다시 빠지지 않기 위해서 결코 지나칠 수 없는 문제다.

그러나 우리 신문들은 외환위기의 본질보다는 누구를 희생양으로 삼는가, 그것은 어떤 정치적 역학관계 속에서 나온 결론인가, 또 어느 정파에 유리하게 작용하는가를 분석하는 데만 매달려 있다.
지난주 김영삼 전대통령의 답변서를 둘러싸고 여야는 뜨거운 한차례 공방을 치뤘다. 신문들은 이를 충실히 중계하는 동시에 정파들의 이해관계를 따져보며 속내를 점치기에 바빴다.

‘여야 모두 “밀리면 끝장” 총력전’(한겨레 5월 7일자), ‘여, 환란 책임론 적극공세’(동아 5월 8일자), ‘심상찮은 동교동-상도동 한랭전선’(경향 5월 7일자), ‘YS 행동 못참겠다, 여권 강경대응 기류’(조선 5월 8일자), ‘신구정권 정면대결로 치닫나’(세계 5월 7일자), ‘칼 빼든 YS, 칼집 만지는 DJ’(문화 5월 7일자), ‘환란공방 손익계산 어떨까’(국민 5월 8일자) 등의 제목 아래 저마다 주판알들을 열심히 퉁긴 분석결과를 쏟아 놓았다.

이러한 정치권의 공방과 언론의 파워게임 분석식의 보도가 환란의 본질을 흐린다는 지적이 5월 8일자 한국일보 사설 ‘환란 본질과 정쟁’이나 한겨레 그림판(5월 9일자) 등에서 엿보이기는 했으나 물줄기를 바꿔놓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또 ‘누가 거짓말 하나’가 환란의 책임을 가리는 데 그만큼 중요하다면 정파간의 노림수를 점치는 데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당시 상황을 철저하게 추적보도해 진실을 알려주는 것이 언론의 사명에 충실한 자세라는 것이 민실위원들의 일치된 견해였다.

언론의 잘못된 자세 중 하나는 일이 벌어질 때는 입다물고 있다가 나중에서야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고 나서는 것이다. 환란 보도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월드컵 주경기장을 놓고서도 우리나라 언론들은 이같은 태도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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