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전인 87년 7월 광주MBC의 심야 가요 프로에 주파수를 맞췄던 사람은 한 진행자의 격정적인 진행을 잊지 못한다.

‘밤의 플랫폼’이란 이 프로에선 ‘님을 위한 행진곡’이 깔리고 당시 열화와 같이 번지던 노동자 대투쟁을 ‘고무’ ‘찬양’하는 DJ의 전투적 목소리가 밤하늘을 갈랐다. 한 밤, ‘광주의 생존자’들이 식은 가슴을 달구고 아린 상처를 위안받던 프로였다.

그 DJ가 ‘5월 광주’를 98년에 다시 재현했다. 최근 광주시의 의뢰로 ‘다큐멘터리 5·18’을 제작한 광주MBC 오창규PD가 그 주인공이다.

오 PD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5·18’은 소위 5월 광주의 정사(正史)를 다룬 ‘5·18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주장과 호소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담으려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말하자면 ‘초보자용’인 셈이지요. 5·18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다큐멘터리를 보고 ‘5월 광주’를 이해할 수 있도록 감정적 흥분을 자제한 대신 정통 다큐멘타리본령에 충실하려 노력했습니다.”
이 탓일까.

‘다큐멘터리 5·18’에는 단 한번도 피해자의 증언이 나오지 않는다. 관련자 인터뷰도 최대한 자제했다. 대신 부산대 교수·거창고 교장·경남대 전 총학생회장 등 ‘외지인’들이 광주 문제를 평가하고 진단한다.

오 PD가 다큐멘터리의 기초적인 자료로 사용한 것은 12·12, 5·18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법 재판 과정에서 밝혀진 법정 자료였다. 특별법에 의해 밝혀진 사실만 주요 내용으로 담았다.

“광주의 피해상만을 부각시키기 보단 당시 광주가 신군부의 집권 전략 과정에서 어떻게 이용됐는지, 한국 정치사에서 광주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다큐멘터리 5·18’은 부마 항쟁을 시작으로 10·26, 12·12, 신군부의 태동, 광주 지역에 대한 군부대 증파 과정, 학살현장을 보여주고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법처리되는 장면으로 끝을 맺고 있다.

오 PD는 “전두환, 노태우씨에게도 이 비디오 테이프를 보낼 작정이다”며 “신군부 인사가 봐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도록 만든다는 것이 일관된 제작기준이었다”고 설명했다.

오PD는 광주MBC 노조위원장 출신으로 각종 5·18 관련 행사를 통해 이미 ‘스타’로 자리를 굳힌 이 지역 명사.

전남대 재학시절에는 교내 학생운동권을 이끌었고, 89년 ‘님을 위한 행진곡’, 96년 ‘시민군 윤상원’, 97년 ‘밀항 탈출’ 등 5·18 관련 작품 제작에 주력해 왔다. 지금은 민요 교육 프로그램인 ‘얼씨구 학당’을 연출·제작중인 ‘토속적·민속적’ 한국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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