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방송 3사가 지난 5월 10일 생중계한 <김대중 대통령 국민과의 대화>는 한 마디로 낙제점이었다.
먼저 <국민과의 대화> 개최 시기의 문제를 들 수 있다.

야당측은 이번 행사가 6.4 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사전 선거 운동’의 성격이 강하다며 선거 후로 연기해 줄 것을 강력히 요청했다. 그러나 방송 3사는 정치권의 반발을 감수하면서까지 생중계를 강행해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

‘청와대행사’에 방송3사가 일제히 나선 것도 반드시 청산돼야 할 관행이다. 일요일 밤 황금 시간대에 방송 3사는 시청자들의 채널 선택권을 완전히 빼앗아 버렸다. 권력 눈치보기에 급급한 방송사의 독단적인 결정으로 시청자들은 안방에서 눈을 뻔히 뜬 채 우롱당한 셈이 됐다.

이번 행사를 앞두고 방송사가 청와대측과 패널의 질문 등에 대해 사전 협의한 것도 방송사의 위상을 입증한다. 물론 이번 행사가 후보자간 토론이 아닌 만큼 대통령의 충실한 답변을 유도하기 위해 방송사가 자체 판단해 질문의 큰 윤곽을 청와대측에 미리 알려 줄 수도 있다.

그러나 방송사의 자발적인 판단에 앞서 김한길 의원 등이 직접 MBC를 방문해 질문의 수위 등을 협의한 것은 권력의 언론 통제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이런 형식적인 문제와는 별도로 토론 내용에 알맹이가 없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즉 이번 행사가 ‘국민과의 진솔한 대화’라기 보다는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국정을 홍보하는 수준에 머무른 것이다.

토론 중간에 단 두 차례 반론의 기회가 있었지만 그것도 대통령의 일방적인 설명으로 끝났고 나머지 질문에 대해서는 대부분 ‘자랑식’ 답변으로 일관됐다.

특히 김 대통령이 기업의 고통 분담과 관련해 “부당 노동행위로 사업주 4명을 구속했다”며 정부의 업적을 강조한 부분은 노동계의 강력한 반박을 받을 만 했다.

왜냐하면 부당 노동행위로 적발된 수가 전국적으로 5천여건에 이르지만 정작 영세 업주 4명만이 구속됐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반론 기회는 없었다.

지역 편중인사에 대한 설명도 마찬가지다. 김 대통령은 “정부 인사가 절대로 특정 지역에 편중돼 있지 않고, 혹시 있다면 한 두명 정도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분명히 이 답변의 진위 여부를 따지고 싶은 사람이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부분 역시 단 한 차례의 반론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이 밖에도 이번 행사 진행 과정에서 몇 가지 문제점이 드러났다. 생산적인 대화가 아닌 일종의 ‘청와대 행사’를 위해 7백명이 넘는 사람이 신원 조회를 받는가 하면 대통령 경호를 위해 방송사 업무가 일정 시간 동안 마비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이번 <국민과의 대화>를 종합 평가해 볼 때 앞으로 이런 겉치레 행사는 더 이상 필요없다는 회의론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만약 추후에 이런 토론이 필요하다면 방송 3사 공동 중계 문제에서부터 장소, 형식 문제까지 전면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이런 비판적 시각과는 정반대로 행사 직후 주요 뉴스의 평가는 너무 관대했다.
당일 는 “유머와 위트가 있었고 자신감이 넘치는 분위기 속에서 대통령과 국민이 희망찬 내일을 기약했다”고 보도했다.

는 “국민들의 신문고가 됐다는 점에서 참여 민주주의의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과연 오늘의 방송이 ‘신문고’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지 진지하게 자문하게 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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