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박권상 사장이 지난 13일 열린 국회 문화관광위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에 대한 한나라당측의 반론권 주장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답변해 관심을 모았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이날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가 아니라 여당 총재의 선거운동”이라고 비난하며 “조순 총재에게도 국민과의 대화를 가질 기회를 줘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국민회의 의원들은 “국민과의 대화는 대통령의 고유한 통치권한으로 정치공세의 수단으로 전락시킬 수 없다”고 맞받아쳤다.

이 자리에 참석한 KBS 박권상 사장은 “형평성과 공평성 차원에서 야당의 입장이 어떤 형태로 반영될 수 있는지 연구·검토하겠다”고 답변, 일견 한나라당의 주장을 수용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방송사들은 한나라당측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이다. KBS 이홍기 보도제작국장은 “박사장의 답변은 원론 차원에서 말한 것”이라며 “아직 실무차원에서 확정된 것이 없다”고 밝혔다.

MBC 엄기영 보도제작국장은 “뉴스 안에서 이미 한나라당의 주장을 반론보도로 처리했기 때문에 별도의 국민과의 대화는 계획하고 있지 않다”며 “한나라당이 기자회견을 한다면 중계할 용의는 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주장이 수용될 수 있을지, 수용된다면 어떤 형태가 될지 박사장의 답변 이후 진전된 사항은 없다. 다만 여야간 공방이 벌어지는 가운데 방송사들이 아직 이 문제에 대한 뚜렷한 방침을 밝히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국민회의는 최근 마련한 통합방송법 시안 제69조에서 ‘방송사업자는 행정 각부의 장관 또는 장관급 이상 공무원이 정부 시책이나 대국민담화 등을 방송을 통해 공표하는 경우 국회 교섭단체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정당에 그 공표내용에 대한 반론이나 입장공표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조항을 유권해석하면 대통령은 장관급 이상의 공무원 신분에 해당하고 국민과의 대화는 정부시책이나 대국민담화의 성격을 갖는다. 국민회의가 한나라당의 요구를 거부하는 것은 스스로 제정하고자 하는 법정신과도 어긋나는 것이다.

물론 한나라당이 ‘국민과의 대화’와 같은 방식, 같은 시간을 요구하는 것은 여당에 대한 정치공세로 비판을 받을 소지가 있다. 그러나 국민회의와 방송사가 한나라당의 반론권 요구 자체를 묵살하는 것은 또다른 불공정보도 시비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라도 방식에 대한 고민은 따라야겠지만 야당의 ‘국민과의 대화’에 대해서도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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