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이사회가 지난 1일 KBS 부사장 동의를 유보함에 따라 박권상 사장의 개혁 드라이브는 상당 기간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박사장이 부사장에 이형모 언론노련 위원장으로 임명 제청한 것은 혁명적인 인사를 하지 않고서는 KBS 개혁이 불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5천여명에 달하는 거대한 내부조직을 개혁하기 위해서는 내부조직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있고 내부의 저항에도 흔들림없이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개혁 마인드를 소유한 인사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번 이사회의 결정이 KBS 개혁의 전망을 어둡게 할 것이라고 전망되는 이유도 바로 이같은 박사장의 개혁 구상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박사장은 그러나 이형모 카드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사장의 강한 의지는 그간의 행보속에서 잘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박권상 사장은 취임을 전후해 KBS 내부 개혁과 관련, 이형모 언론노련 위원장에게 상당한 자문을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박사장이 본부장급을 비롯, 간부 인사의 상당부분에 대해 이 위원장의 자문을 구했다는 것이 언론노련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지난 주말 본부장급 이상이 참석하는 간부회의에서 박사장은 이형모 씨의 부사장 선임을 반대하고 개혁을 반대해 사표를 내겠다는 사람이 있다는 데 말리지 않겠다며 강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KBS 이사는 또한 칠순이 넘은 노인이 평생을 살아오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저렇게까지 애절하게 부탁을 한 적이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말했다. KBS개혁을 위해서 다른 대안이 없다며 간곡히 부탁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간부진들과 이사진들의 반발도 계속될 것으로 보여 사장의 이같은 의지는 쉽게 관철될 것 같아 보이진 않는다. 일부 본부장과 국장급 인사들은 이형모씨가 부사장이 되면 사표를 내겠다고 공공연하게 얘기하고 다닌데다.

이번 이사회 개최를 전후해서도 이사들을 상대로 집요하게 로비를 전개했다. 임명제청에 반대한 것으로 알려진 일부 이사들은 특별한 사유 없이 이사회에 연속으로 불참키도 했다.

이들 반대자들은 이형모 위원장의 직급이 차장에 불과해 부사장으로 임명하는 것은 내부질서를 해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일부 이사의 경우 이형모씨가 부사장이 되면 노조가 경영권을 접수하는 것 아니냐는 언사를 서슴지 않으며 반대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KBS 노조도 위원장 탄핵건 등으로 내부갈등을 빚고 있어 사장의 의지를 적극적으로 뒷받침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 때문에 KBS부사장직은 상당기간 동안 공석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이사회를 상대로 한 박사장의 설득노력이 주효할 경우 기일이 앞당겨질 수도 있으나 지금까지의 태도로 봐선 부정적인 전망이 우세한 게 사실이다. 이럴 경우 부사장 임명건은 통합방송법 제정에 따라 새로 꾸려질 이사회로 넘겨질 지 모른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