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퀴어문화축제를 주최하는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조직위, 위원장 강명진)가 최근 한 대리모 기업의 후원을 끊는 과정에서 “한국 사회에서 대리모 관련 복잡한 맥락에 논의가 본격 이뤄지지 않은 상태라 조직위가 이 사안에 어떠한 합의된 입장을 마련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리모가 여성의 몸을 도구화해 착취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왔다.

조직위는 지난달 30일 서울퀴어문화축제 후원 기업 중 대리모 사업을 하는 ‘블루드(Blued)’ 자회사인 ‘블루드 베이비’가 있다는 문제제기를 받고 지난 1일 사실관계 파악에 나섰다. 조직위는 블루드에 문의한 결과를 지난 4일 공개하며 후원을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조직위가 공개한 블루드 측 답변은 다음과 같다.

“블루드는 게이 채팅앱으로 홍콩에 설립한 법인회사다. 문제제기가 있었던 블루드 베이비(Blued Baby)는 미국 블루드 자회사다. 게이뿐만 아니라 출산에 어려움을 겪는 모든 이들을 위해 관련 법규가 마련돼있고 해당 분야 선진 의료기관이 있는 미국을 중심으로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관련 법규나 제도가 없는 한국에선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 없다.”

▲ 서울퀴어문화축제에 후원하려했던 기업 '블루드 베이비' 홈페이지 첫 화면. 대리모 사업을 하는 이 기업은 어머니의 날(5월 두째주 일요일)을 맞이해 각종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 서울퀴어문화축제에 후원하려했던 기업 '블루드 베이비' 홈페이지 첫 화면. 대리모 사업을 하는 이 기업은 어머니의 날(5월 두째주 일요일)을 맞이해 각종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이어 조직위는 “블루드 측이 전한 사실과는 별개로 현재 한국 사회에서 대리모 관련 복잡한 맥락에 논의나 담론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라며 “조직위가 이 사안에 어떠한 합의된 입장을 마련할 수 없음을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러자 조직위가 블루드 측 답변을 그대로 공개하며 대리모 사업 관련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것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에 조직위는 지난 13일 “조직위는 여성의 몸을 도구화해 착취하는 형태의 대리모 산업에 반대함을 분명히 밝힌다”며 해명을 내놨다.

조직위는 블루드 측 답변을 그대로 실은 이유를 “사실관계를 확인하겠다고 공지를 냈기에 답변받은 걸 공개했다”고 했다.

▲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 슬로건. 사진=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홈페이지
▲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 슬로건. 사진=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홈페이지

또한 4일 입장문에서 ‘합의를 이루기 어렵다’고 한 이유를 조직위는 “여성인권 의제를 사회적 합의로 결정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 아니”라며 “여성인권은 합의대상이 아니고 성소수자 인권과 여성인권을 둘로 나눌 수 없음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으며 이번 후원중단 역시 그런 활동의 연장선상에서 내린 결정”이라고 했다.

조직위는 입장문을 내기 전에 여성단체와 관련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했는데 이 과정에서 조직위가 ‘대리모는 무조건 나쁘다’는 입장을 내면 오히려 향후 대리모 관련 담론을 선악 구도로 단순하게 축소해버리는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 담긴 조언을 들었다고 전했다. 이에 자세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간결하게 입장문을 냈다고 설명했다.

조직위는 “자문을 받으며 재생산권 확장과 생명공학기술 발전과정에서 새롭게 부상하는 다양한 양상을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 여러 의견이 나뉜 상황임을 알게 됐다”며 “이를 존중하는 차원이지 기계적 중립 의지도, 인권에 대한 유보적 입장도 아니”라고 했다.

조직위 두 번째 입장문에 아쉬움을 드러내며 대리모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인천여성의전화는 지난 15일 조직위가 ‘여성의 몸을 도구화해 착취하는 형태의 대리모 산업’을 반대한다고 한 부분에 “대리모 산업이 그 자체로 여성도구화이며 착취라는 걸 부정한다”며 “대리모 관련해 복잡한 맥락이 있는 것처럼 여론을 호도한다”고 비판했다. 여성을 착취하는 대리모 산업과 그렇지 않은 대리모 산업이 있는 게 아니라 대리모 산업 자체가 여성착취라는 게 인천여성의전화 입장이다.

이 단체는 “‘부자 나라의 불임 부부에게 꿈에도 소원인 예쁜 아기를 가난한 나라의 빈곤층 여성에게 온 가족을 먹여 살릴 일확천금을’이란 슬로건 아래 대리모 사업은 ‘여성이 여성을 돕는 일’로 아름답게 선전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구글베이비’라는 영화를 소개했다. 구글 쇼핑하듯 인터넷으로 자신이 원하는 정자와 난자를 선택해 주문·결제하면 제3세계 여성에게 착상해 9개월 후 아기를 배달해주는 시스템을 보여주는 영화다.

이번에 논란이 된 ‘블루드 베이비’가 어떻게 여성을 착취하는지도 자세히 소개했다.

최근 불임부부 뿐 아니라 남성동성애 커플을 위한 대리모 시장이 커지고 있다고 한다.

인천여성의전화는 “‘블루드 베이비’는 중국 사업가가 미국에 법인을 두고 미국·캐나다·러시아에 지사를 운영하며 부유한 나라의 게이 커플을 위해 ‘주문’을 받아 인도·네팔·태국·캄보디아·우크라이나 취약계층 여성을 ‘이용’해 막대한 돈을 번다”며 “이 회사 홈페이지엔 ‘어머니의 날 특가 세일’ 행사를 홍보하는데 이날 저렴한 가격에 난자를 제공하고 대리모 찾기 위한 여행비용을 낮췄다”고 했다.

▲ 대리모 사업을 하는 기업 '블루드 베이비' 한국어 번역 홈페이지.
▲ 대리모 사업을 하는 기업 '블루드 베이비' 한국어 번역 홈페이지.

또한 “HIV와 임질, 매독 등 성병에 걸린 남성의 정자를 이용해 여성 몸에 임신시키는 의학기술을 자랑한다”며 “대리모가 되는 여성은 HIV바이러스에 감염된 남성의 ‘대를 잇기’ 위해 사용되며 바이러스가 모체에 감염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약물을 복용할 것을 권장 받는다”고 했다.

인도는 지난해부터 상업적 대리모를 금지했다. 그러자 대리모 기업들이 네팔·태국·캄보디아로 냉동한 배아와 임신한 여성을 실어날랐다고 한다. 대리모 사업은 그리스·라오스·우크라이나 등으로 이동했고 아프리카까지 확대했다고 이 단체는 전했다. 정부가 대리모를 금지했지만 인도 여성들은 돈을 벌기 위해 케냐까지 이동해 대리출산을 한다고 우려했다. 대리모 산업이 더 가난한 나라에 확산하면 ‘단가’는 더 낮아지기 마련이다.

인천여성의전화는 이런 맥락에서 조직위 두 번째 입장문에 유감을 표하며 “대리모 관련 담론은 잠정적으로 의견을 유보할 것이 아니라 활발한 의견제시로 이미 담론이 구성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며 “우리가 저개발국 취약계층 여성들과 연대하는 방법은 여성의 몸을 도구로 삼고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모든 착취자에게 반기를 들고 싸우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2000년에 시작해 올해 20회를 맞이한 서울퀴어퍼레이드는 오는 6월1일 서울광장에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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