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세공장까지 흔드는 민노총에 눈물 흘리는 갖바치’ (이데일리)
‘성수동 수제화 거리, 민노총 개입 1년만에 170여곳 문닫았다’ (조선일보)
‘잘나가던 서울 성수동 수제화거리, 민노총 개입에 순식간에 침체’ (조선일보 ‘팔면봉’)

올초부터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있는 수제화거리를 다룬 보도가 잇따른다. 최근 두 달새에만 언론사 5곳이 보도했다.

핵심내용은 유사하다. 민주노총이 제화공들의 공임에 “개입”한 결과 수제화거리가 “붕괴”한다는 주장이다. 이데일리와 조선일보는 현장취재와 통계를 버무려 1년 새 성수동 수제화업체 170여곳이 문을 닫았다고 썼다. 이데일리 보도는 지난 10일 다음 포털 메인에 올라 ‘가장 많이 읽은 뉴스’에 꼽혔다. 조선일보는 지난달 17일 3면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 지난 10일 이데일리 웹사이트 메인화면
▲ 지난 10일 이데일리 웹사이트 메인화면
▲ 지난달 17일 조선일보 3면 및 1면 ‘팔면봉’(오른쪽 아래)
▲ 지난달 17일 조선일보 3면 및 1면 ‘팔면봉’(오른쪽 아래)

1년 동안 380(이데일리)~500(조선일보)여곳 업체 가운데 170여곳이 폐업했다니, 눈에 띄는 수치다. 기사는 “파악되고 있다”(이데일리), “성동구 집계”(조선일보)를 근거로 삼았다. 민주노총 개입 탓이란 주장은 어떨까. 이데일리는 “붕괴는 민주노총이 제화공 공임에 개입하며 시작됐다”고 썼다. 조선일보는 “민주노총 개입으로 제화공들 임금 투쟁이 잇따르며 업체들이 인건비 상승압박을 못 이기고 줄폐업”한다고 했다. ‘성수동 상인들’ 말로 이를 뒷받침했다. 

사실일까? 성수동 수제화거리를 찾아 당사자와 제화공들을 만났다.

조합원 일하던 업체 3곳뿐, 공임 2배 부풀려

“한 번이라도 우리한테 사실을 확인했다면 이런 식으로 기사를 쓰진 않았겠죠.” 15일 성동근로자복지센터에서 만난 박완규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 부지부장이 말했다. 그는 제화브랜드 탠디의 하청업체에서 일했다. 8년째 그대로인 공임을 올려달라며 지난해 4월 농성 끝에 원청과 합의를 끌어냈다. 오른 물가를 고려하면 동결이지만, 최저시급을 밑도는 제화공들 공임이 처음 올랐다. 매체들은 이를 ‘민주노총 개입’ 기점으로 봤다.

제화지부 조합원이 일하는 업체 가운데 몇 군데가 폐업했는지 물었다. 이는 민주노총과 ‘줄폐업’을 잇는 핵심 사실이다. 3곳이란 답이 돌아왔다. 조선일보와 이데일리는 이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탠디 제화 공임과 인상폭을 틀렸다. “실제론 켤레당 6500원에서 7800원으로 20% 올랐는데, 조선은 9000원으로 38% 올렸다고 적었어요.” 부제엔 30~50% 인상으로 보도했다.

제화공들은 황당한 나머지 언론사에 항의도 해봤다고 했다. “전화한 이튿날 지부장과 함께 조선일보 기자 둘을 만났어요. ‘팩트가 너무 없는 거 아니냐’고 물었어요. ‘기자는 글이 무기인데 사실 확인도 안 하고, 당사자 확인도 안 하고 써 올리는 게 말이 되느냐’고. 그랬더니 ‘오해 소지는 있지만 허위가 아니니 수정할 수 없다’데요.” 조선일보는 사흘 뒤 공임 액수와 비율만 해명 없이 고쳤다. ‘30~50%’라고 쓴 부제는 그대로다.

 

▲ 지난 15일 서울 성수동 성동근로자복지센터에서 만난 박완규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 부지부장. 사진=김예리 기자
▲ 지난 15일 서울 성수동 성동근로자복지센터에서 만난 박완규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 부지부장. 사진=김예리 기자

전화 안 받은 업체도 폐업에 포함

그렇다면 1년 새 성수동 수제화 생산‧판매업체 170여곳이 폐업했다는 건 사실일까? 이데일리는 “1년여 새 무려 170여개 줄어 지금은 200개에 불과”하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지도에 폐업 위치를 점으로 표시한 인포그래픽까지 냈다. 해당 기자에게 출처를 묻자 이데일리 기자는 “현장 업자들에게 물어봤더니 그 정도라더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기자는 “출처 자료가 있다. 그러나 내부 결정으로 (어떤 자료인지) 밝힐 수 없다”고 했다.

해당 자료는 서울시 수제화진흥원이 조사한 내부 문건이다. 미디어오늘이 같은 자료를 입수해 기사와 비교했더니 내용이 크게 달랐다. 요점부터 말하면 2년 사이 폐업이 확인된 ‘수제화 생산‧판매업체’는 170곳이 아니라 39곳이다. 조선일보는 폐업 확인이 안 됐거나 신발 생산‧판매업체가 아닌 곳도 포함했다.

조선일보는 조사에 불응한 업체를 ‘폐업했다’고 쳤다. 수제화진흥원은 지난 2월, 2017년 성수동에 있던 제화 관련 업체 517곳에 전화한 뒤 △영업중 △받지 않음 △결번 △폐업 확인 등으로 나눠 표시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업체 49곳이 폐업했다. 78곳은 결번이거나 전화를 안 받았고, 324곳은 영업 중이었다. 조선일보는 영업이 확인된 경우만 빼고 모두 폐업 숫자에 넣었다.

수제화진흥원 관계자에게 결번과 미응답을 폐업이라 보는지 묻자 “그럴 수 없다”고 답했다. “업체가 이전하거나 휴업하면 그 수치에 들어가요. 특히 잠시 자리를 비워 전화를 안 받을 수도 있잖아요. 더 조사해야 폐업했는지 아는데 그렇게는 안 했죠. 그래서 잠정 자료이고, 내부 자료예요.”

 

▲ 지난달 17일 조선일보 3면 인포그래픽 갈무리. 조선일보는 이전·휴업·미응답 업체와 원·부자재 유통과 수선업체를 ‘폐업한 수제화 생산‧판매업체’로 쳤다.
▲ 지난달 17일 조선일보 3면 인포그래픽 갈무리. 조선일보는 이전·휴업·미응답 업체와 원·부자재 유통과 수선업체를 ‘폐업한 수제화 생산‧판매업체’로 쳤다.

조선일보는 기사에 170곳이 “수제화 생산‧판매업체”라 콕 집었지만, 이외 업체도 합산했다. △수선 △원자재 유통 △부자재(공구‧기계 등 제조에 쓰이나 완제품 일부가 되지 않음) 유통 △사업종목을 밝히지 않은 경우 등 제화 ‘관련’ 업체 일체다. 자료를 건넨 관계자는 “2017년 이후 생긴 업체는 조사하지 않아 불완전한 조사”라고도 강조했다. 조선일보 보도처럼 “성수동 수제화 업체는 2월 현재 325곳”으로 볼 수도 없단 얘기다.

2017~2019년 사이 폐업이 확인된 수제화 생산‧판매업체는 사업종목을 밝히지 않은 6곳을 합쳐도 39곳이다. 조선은 여기에 자릴 옮겼거나 쉬는 업체, 전화 받지 않은 업체를 더했다. 원·부자재 유통과 수선 부문도 가져왔다. 조사 기준점인 2017년을 민주노총이 ‘개입’했다고 여기는 “지난해 초”로 ‘퉁 쳤다’. 그 결과 “민노총 개입 1년 만에 제화업체 170곳이 문을 닫았다”는 헤드라인이 완성됐다.

줄어드는 일감, 치솟는 임대료… 왜곡보도가 상생 논의 흐려

그렇다면 제화 업체들 폐업이 ‘민주노총 개입’ 때문이라는 주장은 어떻게 봐야 할까? 한국제화협회 이용희 사무국장은 “오비이락”이란 표현을 썼다. “제화산업 자체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자 모든 사람이 민주노총을 탓하는 것 같아요.” 성수동 수제화 거리가 고전하는 건 맞지만, 근본 이유는 따로 있단 얘기다.

 

▲ 서울 성수동 곳곳엔 수제화거리 특화사업 일환으로 수제화 가게와 조형물이 늘어섰다. 사진=김예리 기자
▲ 서울 성수동 곳곳엔 수제화거리 특화사업 일환으로 수제화 가게와 조형물이 늘어섰다. 사진=김예리 기자

성수동 제화 업체들은 터전을 지키기 어려워진 지 오래다. 1990년대 후반부터 중국산 저가 구두가 들어오면서 국내산 신발을 찾는 이가 크게 줄었다. 신발산업진흥센터가 지난해 발표한 신발 수출입 현황을 보면 2013~2017년 사이 신발 수입 규모(달러)가 38% 늘었다. 수출액은 7% 줄었다. 불황까지 겹쳤다. 이용희 사무국장은 “불경기엔 의료와 신발 같은 잡화가 타격 받는다”고 말했다.

일감이 줄어드는데 임대료는 치솟고 있다. 공업단지였던 성수 지역은 2000년대 뚝섬과 서울숲 개발이 본격화하자 땅거래가 늘었다. 2010년대엔 제화 등 공장 건물에 카페와 문화시설이 들어서며 이전 압박이 커졌다. 성수동 카페거리는 2017년 서울 상권 가운데 상가임대료 상승폭 1위를 기록했다.

성동근로자복지센터가 2년 전(2017년 9월) 발표한 ‘성동지역 젠트리피케이션 산업현황 연구’는 “특히 수제화 등 성수동 산업체들이 대부분 영업부진과 인력 고령화로 어려움을 겪는 현실에서, 임대료 상승은 업체 이전뿐 아니라 폐업이나 영업중단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고 진단했다.

 

▲ 서울 성수동 제화공장이던 건물이 편집숍 등 상업·문화시설로 변모했다(위). 성수동엔 유명 카페 및 문화시설과 제화 원부자재 가게가 섞여 존재한다. 사진=김예리 기자
▲ 서울 성수동 제화공장이던 건물이 편집숍 등 상업·문화시설로 변모했다(위). 성수동엔 유명 카페 및 문화시설과 제화 원부자재 가게가 섞여 존재한다. 사진=김예리 기자

조선일보와 이데일리는 이런 근본 요인도 언급하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사의 기조는 ‘기승전 민주노총탓’이었다. 조선일보는 ‘일감이 없으니 돌아오는 돈은 더 줄었다’는 제화공 말을 “인건비 상승이 노동자와 경영자 모두에게 독이 되고 있다”고 풀이했다. 이데일리는 고유브랜드로 수제화를 만드는 ‘명장’이 “최근 일감이 줄어 함께 일하던 공장장과 처남이 그만뒀다”는 공임과 무관한 말을 “현실도 모르고 공임 올려달라 퇴직금 달라 하면 업체들 다 문 닫으란 얘기”란 말과 연결했다.

문제는 업계 각 주체가 수제화거리 재생과 노사 상생을 위해 소통을 시작한 시점에 왜곡 보도가 나와 해결방향을 흐린다는 점이다. 

조용현 민주노총 서울본부 조직부장은 “지난달 원하청과 제화지부, 공정거래위원회, 중소벤처기업부가 간담회를 했다. 백화점‧홈쇼핑의 과도한 유통수수료율을 낮추고 원산지 표기제를 강화하자는 상생안이 나왔다. 대화의 장이 열린 직후부터 이같은 보도가 나오고 있다”고 우려했다. 수제화진흥원 관계자도 “특화사업에 힘써야 할 와중에 부정확한 숫자를 들어 성수동 미래가 어둡다는 기사들이 나와 곤란하다”고 밝혔다.

해당 기사를 쓴 조선일보 기자는 미디어오늘에 “기사를 다시 읽어보라. ‘민주노총 조합원이 있는 업장이 170개 사라졌다’고 쓰지 않았다. 제목은 내가 짓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데일리 기자는 “복합 요인이 작용했다고 쓰고자 했는데 편집에서 민주노총이 강조됐다”면서도 “민주노총 영향이 조합원을 둔 업장에 그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제화지부는 조선일보와 이데일리를 상대로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보도와 손해배상을 청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