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을 평가하고 연구해온 ‘언론학’은 그동안 어떻게 변해왔을까. 출판도 저널리즘이라고 할 수 있을까. 급변하는 매체 환경에서 지상파 방송사는 어떤 길을 가야 할까. 스타 시스템으로 인한 폐단이 예능 프로그램에도 나타나고 있을까.

올해로 창립 60주년을 맞은 한국언론학회가 지난 18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정기학술대회를 열었다. 이날 발표한 세션 가운데 일부를 소개한다.

언론학, ‘철학‘ 연구 줄고 ’PR‘연구 늘어

홍주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2000년 이후 한국언론학보 논문을 전수조사해 언론학 연구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조명했다.

이 기간 동안 가장 많은 논문이 ‘저널리즘’ 분야에서 나왔다. 전체 논문 1594건 가운데 231건이 저널리즘 분야였다. 저널리즘 관련 연구를 네트워크 분석을 통해 보면 언론의 프레임을 통한 메시지 전달을 분석하고, 객관적 현실과 미디어에 의해 조작된 현실을 비교하는 내용이 많았다.

▲ 18일 광주 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한국언론학회 학술대회. 사진=금준경 기자.
▲ 18일 광주 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한국언론학회 학술대회. 사진=금준경 기자.

시기를 2000년부터 2009년까지와 그 이후로 나눠 보면 가장 급증한 연구 분야는 PR분야와 소셜미디어·인터넷·컴퓨터 매개 커뮤니케이션(이하 소셜미디어 등)이다. PR 분야는 42건에서 88건으로, 소셜미디어 등 분야는 26건에서 58건으로 늘었다. 홍 교수에 따르면 이 같은 변화는 각각 정부와 조직 등 PR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중요성이 커진 점, 스마트폰 대중화와 관련이 있다.

홍 교수는 언론학이 새로운 미디어에 적극 관심을 보여온 점을 평가하면서도 정작 오늘날 매체 환경에서 중요하게 거론되는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 연구가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커뮤니케이션 철학, 사상 연구가 전반적으로 침체된 점도 지적했다.

홍 교수는 2000년대 이후 언론학 내에서도 개별 분야에 주목하는 전문학회가 등장해 언론학보 논문만으로 추이를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출판도 저널리즘이다

‘출판’도 저널리즘이다. 부길만 동원대 교수는 권위주의 정부 시절 언론을 통제하는 상황에서 언론인들이 침묵할 때 일부 출판인들이 정부를 비판했고, 언론이 금기시하는 진보적 사상이나 소수자 보호, 여성 인권 강화 등 민감한 의제를 다루면서 사회 변화에 기여했다고 강조했다.

▲ 1980년 5월20일 광주 금남로 차량시위. 사진=전남대 5.18연구소.
▲ 1980년 5월20일 광주 금남로 차량시위. 사진=전남대 5.18연구소.

김옥열 광주전남 민주언론시민연합 상임대표는 5·18 민주화운동을 처음 알린 황석영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주목했다. 광주 시민들을 취재해 기록한 이 책은 5·18을 다룬 최초의 기록물이면서 1980년대 대학가 필독서였다. 김동윤 제주대 교수는 언론이 4·3 사건을 금기로 여기던 때 이를 정면으로 다룬 1978년작 현기영의 소설 ‘순이 삼촌’ 역시 저널리즘적 의의가 있다고 했다. 두 책은 각각 지하출판물, 금서였지만 시민들에 의한 유포가 이어지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었다.

정윤희 출판저널 대표는 출판의 시대적 사명으로 세가지를 강조했다. 첫째, 출판이 역사적인 사건을 거짓으로 기록하거나 대필작가를 동원해 사람을 속이는 수단이 되지 않기 위해 출판 윤리가 필요하다. 둘째,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 일, 그리고 깨어 있는 시민의 힘을 모으기 위해서는 정의를 추구하는 출판을 실천해야 한다. 셋째, 출판의 위기를 맞아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함께 실현해야 한다.

유튜브 넷플릭스 시대, 지상파의 길은?

유튜브와 넷플릭스가 있는데 지상파가 필요할까? 앞으로 지상파가 존재할 수는 있을까?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 시대, 한국 방송의 중심이었던 지상파는 이 같은 도전적인 질문을 받고 있다.

▲ 지난 1월3일 지상파 3사 사장단과 SK텔레콤 박정호 사장의 양해각서 체결 모습.
▲ 지난 1월3일 지상파 3사 사장단과 SK텔레콤 박정호 사장의 양해각서 체결 모습.

어떻게 해야 할까. 정준희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는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를 적대시하는 ‘막연한 거부’나 무조건적인 콘텐츠 제휴를 맺는 등의 ‘막연한 수용’ 모두 경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막연한 거부는 방송사업자들을 도태될 수밖에 없는 상태로 내몰게 되고 반대로 막연한 수용은 자체 OTT사업 투자를 매몰비용으로 만들고 글로벌 OTT사업자와 협상력을 저하시킨다”고 했다.

정 교수는 “어쩔 수 없이 수용하되 어떤 방식으로 수용해야 하는지 전략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가치 지향적 전략적 제휴‘를 제안하며 △독자적 무료 OTT를 만들고 유지해 이용자의 데이터 등 정보를 확보해 성장 기반을 마련하고 △지상파 간 공동제작 등 긴밀한 제휴를 통해 독자성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연합 OTT를 넘어 주요권역-글로벌 대상 OTT를 위한 제휴까지 고려하고 △여전히 규모가 큰 지상파 광고 시장을 쉽게 포기해선 안 되며 대신 입증 가능한 데이터 확보를 위한 새로운 광고를 실험해야 한다고 했다.

예능 프로서도 ‘스타 집중현상’ 있을까

한국 예능 프로그램, 이대로 괜찮을까. 숙명여대(임보배, 김벼울, 강형철) 연구팀은 예능 프로그램 출연자에 주목해 스타 집중현상을 연구했다. 예능 프로그램도 헐리우드 영화처럼 일부 스타의 출연이 집중돼 여러 출연자의 기회를 박탈하고 다양성을 저해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이를 데이터를 통해 분석한 연구다.

연예인 747명을 대상으로 언론 노출 빈도를 조사한 결과 10년 동안 언론 노출 순위가 30위 안에 든 연예인은 15.7%에 그쳤다. 그 중에서도 단 한 해도 빠지지 않고 30위 안에 든 연예인은 강호동, 박명수, 유재석 이경규 등 4명에 불과했다. 이어 9년 동안 30위 안에 든 연예인은 정준하와 하하 등 2명이었으며 8년 동안 30위 안에 든 연예인은 김구라, 이수근, 정형돈 등 3명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상위권은 극소수인 반면 1회만 30위권 안에 든 연예인은 57명에 달하는 등 격차를 보였다. 연구팀은 “스타는 상위권 진입이 어렵지만 상위권에 진입할수록 안정적인 순위를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2008년부터 2017년까지 종편의 등장과 tvN 등 채널의 약진으로 연간 예능 프로그램은 20개에서 76개로 늘었으나 정작 언론에 노출된 예능 출연자 집중률을 보면 일정 기간 다양해지다 어느 순간 정체되는 경향이 있었다. 이는 채널 간 과도한 경쟁으로 처음에는 차별화된 콘텐츠가 나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비슷한 콘텐츠를 선호하는 현상과 유사하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박석철 SBS 전문위원은 현장의 관점에서 “시청률이 안 나오면 제작 기회가 점점 감소한다. 성공기회가 보장된 출연진을 섭외할 수 밖에 없다”며 “(연기의 경우) 에이스급 스타급 연기자가 할 수 있는 멘트나 액션이 다양할 수 있어 사람이 똑같다고 다양하지 않다는 주장은 비약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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