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15일까지 보름간 ‘탈원전’이란 단어가 들어간 신문지면 기사는 365건이다. ‘탈원전’은 언론의 일상키워드가 됐다. 자유한국당과 보수언론은 ‘탈원전’을 현 정부 비판 소재로 주로 사용한다. 조선일보는 지난 3월25일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2018년 입학생 32명 중 6명이 자퇴했다며 ‘탈원전’을 언급했다.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학과장은 해당 기사에서 “탈원전 정책 이전에는 자퇴생이 거의 없었지만, 신입생이 6명 자퇴한 것은 탈원전 정책 영향”이라고 주장했다.

어기구 더불어민주당 원내부대표는 지난 7일 “문재인 정부 들어 원전은 줄어든 적이 없다. 탈원전한 적이 없다”며 ‘탈원전’ 보도를 가리켜 “가짜뉴스”라고 주장했다. 서울행정법원이 지난 2월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허가하며 오히려 현 정부에서 원전 수는 늘어날 예정이다. 녹색당은 지난 4월26일 체르노빌 핵발전소 참사 33년을 맞아 “(해외에) 핵발전소 수출 영업을 하며, 탈핵을 하겠다는 모순으로는 계속 길을 잃을 뿐”이라며 “문재인정부는 말뿐인 탈핵이 아닌, 제대로 된 탈핵정책을 시행하라”고 주장했다.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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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수준의 미세먼지 수치를 낮추고, ‘온실가스 감축’이란 세계적인 기후변화 대응에 발맞추려면 국내 언론이 ‘탈원전’이란 실체 없는 프로파간다를 멈추고 재생에너지 에너지전환을 정확히 보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16일 에너지전환포럼이 주최한 기자간담회에서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에너지전환은 문명이 바뀌는 문제”라고 강조한 뒤 “(에너지전환 관련) 가짜뉴스를 유통하는 언론에 상당한 문제가 있다. 언론이 사회적 책임에 맞게 뉴스를 유통하는지 스스로 체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이원영 에너지전환포럼 사무처장도 “원전·석탄(발전)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탈원전 주장은 옳지 않다”며 최근 독일의 슈피겔 기사를 ‘오독’한 일부 언론을 비판하며 정확한 보도를 당부했다. 이날 전문가들은 △2030년 이전에 태양광·풍력 발전이 석탄·원전 발전보다 경제적인 시점이 올 것이며 △태양광 패널은 재활용이 가능하고 국토를 오염시키지 않으며 △2040년 OECD 평균 재생에너지 전력비중은 50% 이상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현 정부가 지금보다 급진적인 재생에너지 전환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8 세계 원전 산업 동향 보고서 가운데 일부. ⓒ 마이클 슈나이더(에너지 및 원전 정책 관련 독립 국제 컨설턴트)
2018 세계 원전 산업 동향 보고서 가운데 일부. ⓒ 마이클 슈나이더(에너지 및 원전 정책 관련 독립 국제 컨설턴트)
현재 한국의 재생에너지 공급 비중은 2%(IEA, 2017년 기준)로, OECD 평균 10.2%에 한참 못 미치는 꼴찌다. 재생에너지 전력 비중도 3.5%(IEA, 2017년 기준)로 OECD 평균 24.9%에 턱없이 모자란 꼴찌다. 정부의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에 따르면 2040년까지 재생에너지 전력 비중 목표치는 30~35%다. 이에 재생에너지 전문가들은 목표치를 높이는 한편 산업·수송·건물에서 사용하는 최종에너지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를 위해 언론 보도의 정확성을 당부했다.

에너지전환 보도에 전문가들이 가장 답답해하는 지점은 ‘전기요금 인상’ 프레임이다. 앞서 박광수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4월 토론회에서 “석탄발전이 전체 발전원 중 80~90%의 대기오염물질과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있다”며 미세먼지 때문에 생기는 마스크·공기청정기·의료비 같은 가계부담을 언급한 뒤 “낮은 전기요금이 가계 비용부담을 완화시킨다고만 볼 수 없다”고 했다. 지난해 한국전력 평균 전력구매단가는 1kWh당 석탄 83.19원, LNG 122.62원, 신재생에너지 179.42원이다.

▲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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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OECD 국가 중 초미세먼지 농도 1위다. 결국 석탄발전소를 없애야 미세먼지를 획기적으로 줄인다. 박광수 연구위원은 “유연탄(석탄) 사용 비중을 줄이는 에너지전환이 가능하려면 적어도 유연탄 세금을 현재 46원/kg에서 100원/kg 이상으로 인상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유연탄 세제개편이 126원/kg일 경우 2020년 석탄발전 비중이 2018년 42.4%에서 23%로 감축되고 이 과정에서 전기요금은 개편 전 기준 세율 시나리오 대비 10~13% 상승하며 미세먼지는 40%가량 감소할 걸로 전망했다.

‘전기요금’은 불가피한 쟁점이다. 홍종호 에너지전환포럼 상임공동대표(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현 정부의 수송 부문 유류세 인하를 예로 든 뒤 “에너지를 전환한다면서 느닷없이 경유와 휘발유세를 낮춘 것은 (정책적으로) 반대 시그널을 준 것”이라고 우려했다. 홍 대표는 “과거 정부와 확연히 다른 에너지전환 정책 기조는 큰 의미가 있지만, 에너지전환계획의 속도도 더디고 정책 통합성도 약한 상황에서 반대쪽에선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해 논의가 혼재되고, 언론은 전기요금 인상 반대 분위기를 조장한다”고 우려했다.

지난 7일 리얼미터와 전기협회가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55.3%는 ‘폭염 기간을 제외해도 전기요금이 부담스럽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윤순진 서울대 교수는 “정부만 비판해선 안 된다. 국민 인식이 중요하다”며 “통신요금을 생각해보면 (전기요금이) 큰 금액은 아니다. 전기는 그냥 쓴다는 인식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윤 교수는 “전기사용에는 적절한 요금을 부과해야 한다. 기자들이 전기요금 인상의 불가피성을 설명해주면 정치권도 전향적으로 (인상을) 논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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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전환을 위해선 에너지 절약 논의도 필수다. 종량제 쓰레기봉투 가격을 높여 쓰레기 감소 효과를 노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홍종호 대표는 “한국의 에너지사용량은 세계 8위, CO2 배출은 세계 7위다. 에너지 가격을 정상화시켜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써야겠다는 정책기반이 전혀 없다. 대신 정부와 정치권은 전기요금 인상논의를 두려워한다”고 현실을 꼬집었다. 에너지전환 과정에서 일부 언론이 확산시키는 ‘전력공급 차질’ 우려를 극복할 방안은 ‘에너지절약’이란 지적이다.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연구위원은 “문 대통령 당선 이후 풍력·태양광업체 주가가 급등했지만 2017년 12월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발표 이후 주가가 급락했다”며 “많은 곳에서 에너지전환 속도가 빠르다, 재생에너지 가격이 비싸다지만 다른 대안은 없다”고 강조했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인데,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하는 해외기업이 늘어서다. 한병화 연구위원은 “에너지전환이 늦으면 제조업 위기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며 하루빨리 대규모 재생에너지 발전단지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세먼지같은 ‘탈원전’ 프로파간다를 걷어내고 해야할 논의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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