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에서 (통화내역) 수사보고서를 처음부터 만들지 않은 거다. 특이한 사항이 없으니까, 기록으로 남길만한 분석 내용이 없으니까 작성하지 않은 것이다.”

2009년 ‘장자연 리스트’ 사건을 담당했던 박진현 전 수원지검 성남지청 검사는 지난해 8월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경찰이 고 장자연씨의 1년치 통화기록을 엑셀 파일로 정리하고도 이를 보고서로 만들어 검찰에 송치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사실일까.

미디어오늘이 당시 경찰의 검찰 송치 기록 목록을 확인한 결과, 경찰은 분명히 ‘통신관련기록’을 두 권이나 만들어 검찰에 보냈다. 경찰 측은 장씨가 사용한 3대의 휴대전화 1년 치 통신내역 원본도 이 두 권에 포함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수사 상황을 잘 아는 경찰 관계자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검찰 송치 목록에 통신자료가 있다면 검찰 서무에서 인계받을 때 목록을 보면서 하나하나 챙긴다. 목록에 있는 자료가 없으면 자료 어딨냐며 챙겨오라고 해서 보낸다”며 “목록에 있으면 무조건 송치한 것이고, 송치가 안 됐다면 허위문서 작성으로 경찰이 구속되는데 말도 안 된다”고 반박했다.

▲ 지난 14일 MBC PD수첩 ‘故 장자연 누가 통화기록을 감추는가’ 방송 화면 갈무리.
▲ 지난 14일 MBC PD수첩 ‘故 장자연 누가 통화기록을 감추는가’ 방송 화면 갈무리.
결과적으로 경찰이 송치했다는 장씨의 1년 치 통화내역 원본과 분석 보고서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장자연 리스트 사건을 재조사한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은 지난해 10월28일 보도자료를 통해 장씨의 통화내역 등의 원본 파일이 수사기록에 첨부돼 있지 않다고 밝혔다.

대검 조사단 발표에 따르면 당시 경찰은 △장자연 휴대폰 3대의 통화내역 △장자연 휴대폰 3대에 대한 디지털 포렌식 결과물(통화내역·문자메시지·연락처 등) △장자연이 사용하던 컴퓨터를 수사했다. 하지만 이 같은 수사 결과물과 각 원본 파일은 현재 남아있는 수사기록에 첨부돼 있지 않다.

조사단은 “당시 수사 검사(박진현)로부터 장자연의 통화내역을 제출 받았으나, 검사가 제출한 통화내역의 최종 수정 일자가 통신사가 통신내역을 제공한 날짜와 시간적인 차이가 있고, 편집한 형태로 돼 있어 당시 통신사로부터 제공받은 원본 파일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박 검사는 “경찰에서 1년 치 통화기록을 압수한 이후에 몇 달 동안 수사 지휘하고 검찰에 송치된 뒤에 조사하면서 CD에 있던 통신내역 엑셀 파일을 내 컴퓨터로 다운받아서 작업(수사)을 했다”며 “(진상조사단에) 원본 파일을 초기 압수했고 기본 자료인데 그걸 누가 빠뜨릴 수가 없다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MBC ‘PD수첩’ 취재 내용은 달랐다. 이미 검찰 송치 전 단계부터 사건 수사기록이 경찰 윗선에 전달되는 등 수상한 일들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11일 방송된 PD수첩에서 당시 장자연 수사팀이었던 경찰 관계자는 수사 당시 경찰 등 상부의 부적절한 개입 의혹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사건 검찰 송치를 앞두고 경찰이 이례적으로 수사기록 전부를 다량 복사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보통 그거(수사기록)를 복사해둘 이유가 없고, 송치해버리면 끝나는 건데 전체 16권이나 되는 수사기록을 8개인가 9개인가 복사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그 기록이 윗분들에게 하나씩 넘어갔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뿐만 아니라 경찰은 장씨의 휴대전화 3대에서 삭제된 문자나 사진, 통화내역 등을 복원해 분석하는 포렌식 작업을 했는데, 3대 중 1대의 휴대전화는 아예 통화내역을 분석조차 하지 않은 사실이 지난 14일 PD수첩 방송을 통해 드러났다.

승재현 형사정책연구원 박사는 “통신기록 자체의 원본도 없고 그 휴대폰을 포렌식한 원본도 없고 그 외에 나머지 압수수색한 기록에 원본이 없다는 것”이라며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의 진실에 접근해야 하는 모든 기록에 원본이 없다. 실수라고 이야기를 한다면 이 실수의 연속성은 정말 기적적인 연속성일 것”이라고 꼬집었다.

▲ 지난해 12월11일 MBC ‘PD수첩’ 방송화면 갈무리.
▲ 지난해 12월11일 MBC ‘PD수첩’ 방송화면 갈무리.
장씨의 1년치 통화기록 원본과 분석 보고서가 사라졌다는 것은 장씨가 성 접대와 술 접대를 강요받았다고 문건에 남긴 인물들과 관계를 수사할 증거 자체가 인멸된 심각한 문제다. 경찰 관계자는 “만약 경찰이 증거를 받아놓고 없애버렸다면 검찰이 증거인멸죄로 바로 조사할 것”이라며 “실제 증거인멸죄로 경찰관이 구속된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특히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아들인 방정오 전 TV조선 대표이사가 장씨와 여러 차례 연락하거나 만난 것으로 안다는 여러 측근의 증언이 나왔지만, 과거 검·경이 조사한 방 전 대표의 통화내역은 단 이틀이 전부다. 방 전 대표 측은 이 이틀간 장씨와 통화내역이 없다는 이유로 2008년 10월28일(장씨 모친 기일) 장씨와 유흥주점에서 딱 한 번 만난 것 말고는 장씨와 따로 만나거나 연락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전직 조선일보 관계자는 “(경찰 수사 당시) 조선일보 후배가 나보고 ‘방정오가 (장자연에게) 매일 전화해서 통화기록이 나와서 빼려고 하고 있다’고 했다”며 “(통화기록이) 많이 나와서 그거 뺀다고 고생하고 있다고 했다. 방정오는 장자연한테 ‘야, 너 얼마나 비싸냐, 얼마면 되냐’고 문자까지 보냈다는데 왜 통화한 기록이 없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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