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촌 취재를 할 때 자기 방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너무도 깔끔했다. 손바닥만 한 창문이지만 천 쪼가리를 커튼 삼아 달아두기도 했다. 쪽방촌 거주민들을 그저 ‘불쌍한 사람’이라 여기며 보도하고 싶지 않았다.”

‘지옥고 아래 쪽방’을 연속보도한 이혜미 한국일보 기회취재팀 기자가 말했다.

 

▲ 한국일보 5월7일자 2면
▲ 한국일보 5월7일자 2면

 

이혜미 한국일보 기자는 지난 7일부터 “쪽방촌 뒤엔…큰손 건물주의 ‘빈곤 비즈니스’”라는 기사를 시작으로 도심 속 화려한 불빛 속에 숨어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던 약탈적인 쪽방촌 생태계를 파헤치는 기사를 썼다.

지난해 11월 사회부 사건팀이었던 이혜미 기자는 종로 ‘국일고시원’ 화재 사고를 보도했다. 이 기자는 “사고가 난 다음 날이면 사회부 기자들은 항상 ‘다른 주거 빈민은 안전한가?’라는 주제로 기사를 쓰곤 한다. 늘 그래왔듯 쪽방촌을 찾았다. ‘소화기 있으세요?’ ‘개별난방 되나요?’라고 물었다. 슈퍼아주머니에게 주민을 소개해달라고 해 21년째 쪽방에 거주한 박선기씨를 만나 화재에 취약한 쪽방촌 관련 인터뷰를 했다”고 말했다.

3주 뒤 이혜미 기자는 다시 쪽방촌을 찾았다. 영하 11도의 날씨가 되자 한파에 노출된 쪽방촌 르포 기사를 쓰려고. 그는 박선기씨를 다시 찾았다. 이혜미 기자는 이날도 ‘쪽방에 살아서 너무 추워요’ ‘전기매트 하나로 버텨요’라는 쪽방 주민들 말로 기사를 마감했다.

 

 

불현듯 기사를 위해 자신이 취재원을 이용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선기씨 얘기를 끝까지 들어보자고 결심했다. 박씨는 이 기자에게 “1.25평에 살면서 25만원을 내는데 보일러 안 되고, 개별 화장실과 샤워실도 없다”며 “이 골목에 있는 쪽방 모두가 한 사람 소유다. 쪽방촌 인근에 건물도 세웠다”고 했다. 주거복지 전문가도 “쪽방 집주인들이 어마어마한 부자다. 집주인들은 쪽방에 살지 않고 재개발을 기다린다”고 설명했다.

이 기자는 ‘서울시 쪽방 현황’ 내부자료를 입수해 쪽방 소유자들을 엑셀 파일로 정리했다. 270명이 소유주였다. 관련 등기부 등본 60만원어치를 몽땅 뗐다. 이 작업만 지난 1~3월까지 꼬박 석달이 걸렸다. 근저당권란을 보고 채무 관계를 살폈다. 쪽방 주민, 쪽방 관리인, 쪽방촌 통장, 동자동 사랑방 자치모임 관계자, 서울시 자활지원과, 서울시 주택본부, 국토교통부, 보건복지부 등을 취재했다.

 

▲ 한국일보는 서울시의 쪽방 현황 내부자료(2018년 9월 기준)를 입수해 명단에 있는 318채 쪽방 건물의 등기부 등본을 전수조사했다. 사진=한국일보 제공
▲ 한국일보는 서울시의 쪽방 현황 내부자료(2018년 9월 기준)를 입수해 명단에 있는 318채 쪽방 건물의 등기부 등본을 전수조사했다. 사진=한국일보 제공

 

처음 쪽방촌 갔을 땐 이질감에 조금 두려웠다. 그는 “겨울에 처음 쪽방촌을 갔는데 신문 마감시간이 다 돼 어둑어둑해 정말 무서웠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진짜 두려운 건 따로 있었다. 이혜미 기자는 “오늘날 빈곤의 특징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실제로 쪽방촌은 서울역 서울스퀘어 뒤, 종로 귀금속 상가 거리 뒤, 영등포역 옆 등 화려하고 거대한 빌딩 뒤에 모여 있다. 겉모습은 멀쩡한 다세대 주택처럼 돼 있지만, 건물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촘촘히 자리한 쪽방이 있다.

문제의식은 △빈곤의 현장을 상품으로 취급하는 건물주 △방관하는 정부와 공공기관 △가난한 사람은 쪽방에 살아도 된다는 무감각해진 한국사회 등으로 압축됐다. 이 기자는 “무서움은 1차원적 감정이었다. 여러 번 들락날락하게 되자 화가 났다. 대체 우리 사회가 빈곤을 어떻게 다뤄왔길래 이런 광경이 펼쳐진 건가”라고 토로했다.

쪽방촌 소유주들이 구청에 신고도 않고 불법 임대업을 하며 탈세 등 부조리한 방식으로 돈을 벌었다. 쪽방촌 임대업자들은 주민들에게 1평 남짓한 방을 25만 원에 세를 놓으면서 창문, 보일러, 샤워실 등을 제공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처벌은 불가능하다. 이들을 처벌하면 쪽방 주민은 당장 노숙인가 된다. 이혜미 기자는 “쪽방이란 주거 형태가 정의조차 없다. 만일 강제 폐쇄하는 행정조치를 하면 주민은 전부 쫓겨난다. 대안 없는 구청은 차라리 쪽방촌에 직접 소화기를 설치해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 한국일보 5월7일자 1면
▲ 한국일보 5월7일자 1면

이혜미 기자는 지금이라도 정부와 공공기관이 나서야 한다고 했다. 그는 “공공기관을 취재하면서 화가 났다. 담당 부처, 컨트롤타워 등이 없었다. 서울시 자활지원과에 연락해도 ‘담당이 아니다’ 국토교통부에 물어도 ‘모른다’고 했다. 도대체 누가 이들을 보호하냐”며 “이젠 공공이 나서야 한다”고 했다.

 

 

현재 보건복지부는 홈리스를 총괄하지만, 주택을 제공하거나 건설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 주택 제공과 건설 권한은 국토교통부에 있다. 이혜미 기자는 “DJ정부나 참여정부 이후로는 영구임대주택 등을 활발하게 짓는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참여정부 때는 빈부격차차별위원회도 있었다. 부서 간 벽이 견고하다. 방치한 결과가 이러한 상황을 낳았다”고 지적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5년 인구 총조사에서 ‘집 아닌 집’에서 사는 사람은 5만명이다. 2015년엔 35만명으로 7배 이상 늘었다. 주거문제는 비단 쪽방촌 거주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학가 역시 주거 환경이 제대로 갖춰지 않은 곳이 많다.

 

미디어와 정치인은 ‘쪽방’을 이벤트로 활용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볼 시점이다. 끝으로 이혜미 기자는 “우리 사회가 쪽방촌 사람들이 더 좋은 환경으로 옮기도록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이 기자는 “쪽방 주민에게 쌀 주고, 김치 주는 게 1차원적 욕구를 해소해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쌀 있어도 밥해 먹을 부엌이 없다. 쌀을 받아 소주로 바꿔 먹는다. 이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게 뭔지, 정부와 공공기관 나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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