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 현대자동차는 우리 언론의 잦은 입방아에 올랐다. 많은 임금을 받는데도 잦은 파업으로 나라 경제를 망치는 주범이라는 논리가 대다수였다.

조선일보는 2003년 8월21일자 4면에 도요타코리아 오기소 사장을 인터뷰한 기사를 실었다. 기사 첫 문장은 “파업이오? 도요타 직원들은 파업을 어떻게 하는지조차 잊어버렸습니다”라는 오기소 이치로 사장의 직접화법으로 시작한다. 조선일보는 일본 도요타가 53년 동안 무분규를 유지해왔고 2년째 임금을 동결했다고도 썼다.

▲ 도요타 홈페이지
▲ 도요타 홈페이지
그해 8월21일부터 1주일가량 도요타 자동차를 칭찬하면서 현대차노조를 비난하는 보도가 급증했다.

파이낸셜뉴스는 그해 8월24일 ‘도요타, 한국자동차업체 파업에 우려감 표시’라는 제목의 기사를, 매일경제는 8월25일자에 ‘하청업체는 우리 계약사, 압박 착취 아예 없어’라는 기사를 썼다. 한국일보는 8월25일자부터 ‘日 도요타車, 왜 강한가’라는 기획시리즈 기사를 시작하면서 ‘임금 자제+종신고용 50년 무분규’라는 제목으로 첫 회분을 실었다. 경향신문도 8월25일자에 ‘회사 성장이 곧 종업원 이익’이라는 도요타 자동차 전무의 말을 직접인용해 제목을 달았다.

갑자기 늘어난 도요타 자동차 띄우기의 비밀은 서울신문(당시 대한매일신문) 8월27일자 20면에 실린 ‘자동차 신화 급브레이크’라는 기사에서 드러났다. 서울신문은 이 기사에서 “(도요타자동차는) 지난 21일부터 25일까지 한국의 자동차 담당 기자들을 일본 본사로 초청했다. 렉서스 고객 초청 자선골프대회, 드라이빙 스쿨 운영 등 다양한 서비스도 내놓고 있다”고 썼다.

도요타가 한국의 경제부 기자들은 대거 일본 본사로 초청해 이런저런 행사를 열어줬다는 고백이었다. 당시 도요타는 9월2일 렉서스의 최고급 모델이었던 New LS430을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선보이는 신차발표회를 앞두고 있었다. 당시 서울신문에서 이 기사를 썼던 기자는 엊그제 1호로 삭발 투혼을 발휘했던 박대출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이다.

▲ 한국도요타가 2003년 9월2일 서울 힐튼호텔에서 렉서스 신모델인 ‘뉴LS430’과 ‘뉴ES330’의 발표회를 가졌다.
▲ 한국도요타가 2003년 9월2일 서울 힐튼호텔에서 렉서스 신모델인 ‘뉴LS430’과 ‘뉴ES330’의 발표회를 가졌다.
일본 기업 초청행사에 갔던 대부분의 한국 기자는 일본 도요타 자동차 홍보기사를 쓰는 것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현대차 노조 비판에 할애했다.

53년 무분규, 2년째 임금 동결, 하청업체 착취 않는 도요타, 회사 성장이 곧 종업원 이익 같은 논리는 90년대 이전 종신고용의 신화를 이룬 일본 노동시장을 설명할 순 있지만 2000년대 초반 일본 노동시장 분위기는 사실 이 기사들과 사뭇 달랐다.

한국은 아직도 제조업 파견을 불법으로 규제하지만, 일본은 이즈음 제조업 파견을 허용해 내부와 외부로 노동시장 이중화를 가속화 시켰다. 당시 일본은 그들 표현대로 ‘잃어버린 20년’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도요타는 거품경제가 붕괴한 뒤 오랜 불황의 긴 터널 속에서 내부 노동시장에 속한 극소수의 노동자만 그럭저럭 먹고 살고 나머지는 벼랑 끝에 내몰린 일본 노동시장을 대변할 위치가 결코 아니었다.

2003년 8월28일자 조선일보 ‘민노총에 신사고 지도자 나와야’라는 제목의 사설은 도요타든 뭐든 한국의 노동조합만 패면 상책이라는 생각을 그대로 드러냈다. 사설은 “14조원의 순이익을 올린 일본 도요타의 노조는 기본급 동결에 동의했다. 반면 한국의 화물연대와 그 상급단체인 민노총은 국민과 경제를 볼모로 삼아 보따리째 다 내놓으라고 정부와 기업을 몰아붙여 왔다”고 했다. 일본 안에서도 최상위 노동시장을 꿰찬 도요타노조와 간접고용 비정규직으로 하루 벌어 먹고사는 화물연대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우습지만 그때 우리 언론은 대부분 이렇게 보도했다. 지금은 좀 나아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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