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장이의 인터뷰란 으레 그렇다. 이미 전화 통화나 사전 취재로 상당한 정보를 가진 상태에서 현장으로 가 취재원을 만나므로 카메라 앞 인터뷰로 새 정보를 얻는 경우는 많지 않다. 현장 그림을 찍고, 필요한 인터뷰를 하면 어서 회사로 돌아가 리포트를 제작, 납품해야 한다. 때문에 빨간 녹화버튼이 눌러진 상태에서 질문은 짧고 대답 역시 형식적이다. 가장 실감 나는 분위기 묘사, 사건을 맞닥뜨렸을 때의 심경 등 이미 알지만 시청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짧지만 ‘그럴싸한’ 답변을 유도해낸다. 1분30초 안팎의 짧은 리포트에서 인터뷰는 10초면 충분하므로. 세월호 5주기를 앞두고 기획한 릴레이 인터뷰가 부담스러웠던 이유다.

세월호 참사 5주기를 몇 달 앞두고 목포MBC는 몇 가지 원칙을 정했다. 특종보다 진상규명에 도움 주는 보도를 하고, 생존자와 희생자 가족들에게 트라우마를 불러일으킬 2014년 4월16일 참사 당일 영상을 되도록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또 하나는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른 5주기인 만큼 다른 해와 달라야 한다는 것. 

세월호 참사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이후 5년 동안 꾸준히 보도를 이어왔던 목포MBC는 세월호 주기마다 특집 뉴스데스크를 진행해왔다. 4월16일을 전후로 리포트 수십여 꼭지를 토해내는 대신 올해는 한 달 전부터 차분히 기억을 더듬어보기로 했다. 당사자는 물론이고 세월호를 특별하게 기억하는 누군가들, 사실은 모두의 세월호를 담고 싶었다. 5주기를 30일 앞둔 3월부터 하루에 한 명씩 이야기를 담담하게 전하면서 우리의 세월호 5주기 맞이는 조금 일찍 시작됐다.

▲ 목포 MBC가 세월호 참사 5주기를 앞두고 15일부터 4월16일까지 특집 릴레이 인터뷰를 방송한다. 기획 인터뷰에 세월호 희생자 가족, 생존자, 단원고 학생들, 진상조사에 참여했던 위원들, 일반 시민 등이 참여한다. 사진=목포MBC 제공
▲ 목포 MBC의 세월호 참사 5주기 기획 '특집 릴레이 인터뷰'. 기획 인터뷰에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 생존자, 단원고 학생들, 진상조사에 참여했던 위원들, 일반 시민 등이 참여한다. 사진=목포MBC 제공

첫 릴레이 인터뷰이는 대구지하철참사 희생자 유가족이었다. 이들이 지난 2015년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1차 청문회를 찾아왔던 모습이 기억에 강하게 남았다. 청문회 시작에 앞서 모두진술에서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진실규명과 사고의 책임자를 제대로 가려내지 않는다면 다음 대형 참사의 기초를 다지는 것이라고. 그 말을 곱씹으며 목포에서 서울까지 올라가 대구지하철참사 희생자대책위원장을 만났다.

이들은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해했다.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당시 불연재로 만들어지지 않아 오히려 불쏘시개 역할을 했던 너무나 위험했던 전동차, 쓰레기장에서 시신을 찾도록 만든 자치단체의 어처구니없는 수습에 당한 이들이었다. 가족을 잃고 16년 동안 싸워온 이들이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갖는 감정은 ‘참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했어야 했다’는 죄책감이었다. 나름의 소명감을 갖고 다양한 활동을 해왔지만 사회안전망을 갖추는데 여전히 부족했다는 것이다. 두 참사 모두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미비한 법 제도와 안일함이 키운 참사였기에 그랬다. 

5·18 유가족 역시 같았다. 당신 자식을 해쳤던 그들을 단죄하지 못해 꽃다운 아이들을 구조하지 못한 참사가 난 것이라고. 참사를 여전히 기록해야 하는 이유를 찾았다.

▲ 김진선 목포MBC 기자.
▲ 김진선 목포MBC 기자.
우리가 만난 서른 명 가운데는 이미 활동을 종료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나 선체조사위원회, 활동 중인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관계자와 시민, 자원봉사자도 포함됐지만 희생자 가족과 생존자 등 당사자가 많았다. 사실 그동안의 취재 과정에서 단원고 생존 학생들은 접근하기 어려웠다. 친구를 눈앞에서 잃은 그들의 트라우마를 자극하지 않을까 미리 겁을 먹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들이 응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안산에서 릴레이 인터뷰를 마친 한 생존 학생은 최근 다른 생존 학생을 설득하며 함께 5주기를 맞아 자신들을 찾는 언론 인터뷰에 응한다고 한다. 그녀의 어머니가 우연히 만난 자리에서 조용히 건네준 이야기다. 5년 전 기억을 더듬고 사람들 앞에서 세월호 이야기를 시작한 딸에게 힘들면 하지 않아도 된다고 다독였단다. 그 말에 “몇 년이 더 지나면 우리 이야기를 제발 들어달라고 우리가 먼저 기자들을 찾아다녀야 할지도 몰라”라고 답했다는 스물셋 딸. 

아직 아무것도 밝혀진 것이 없는데 시간이 야속하다. 이제는 그만하라는 목소리에 답하는 건 생존자와 희생자 가족뿐 아니라 우리가 돼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기록이 아직 세월호가 끝나지 않았음을 공감하게 한다면, 그래서 실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작은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결국 훗날 비슷한 모습으로 찾아올 또 다른 참사를 막는 일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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