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우리 아들 이름이나 좀 제대로 써 줘.” 

기자회견이 끝난 뒤 기자들이 내민 마이크에 둘러싸인 장훈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고 장준형 군 아버지)이 말했다. 많은 언론이 지난 13일 세월호 참사 5주기 추모 현장을 다루며 준형 군 이름을 ‘준영’이라고 보도했다.

사단법인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4·16가족협의회)와 4·16연대는 15일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수사와 처벌 받아야 할 사람을 1차로 발표했다. 서울 광화문 ‘세월호 기억공간’ 앞에서 열린 이날 기자회견은 주최측이 취재진에 “제대로 보도해 달라”고 거듭 호소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사회를 맡은 배서영 사무처장은 명단 발표에 앞서 지난 13일 언론보도를 비판했다. 배서영 처장은 기자들에게 “세월호 참사 5주기 행사를 보도하는데 ‘대한애국당과 충돌 우려’, 이렇게 제목을 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물었다. 그는 “추모하겠다는 유족을 향해 짐승보다 못한 짓을 하는 데 대해 진실을 보도해 달라”고 당부했다.

▲ 장훈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고 장준형 군 아버지)가 15일 서울 광화문 세월호광장 기억공간 앞에서 열린 ‘세월호참사 책임자처벌 대상 1차명단 발표 기자회견’에서 기자들 물음에 답하고 있다.
▲ 장훈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고 장준형 군 아버지)가 15일 서울 광화문 세월호광장 기억공간 앞에서 열린 ‘세월호참사 책임자처벌 대상 1차명단 발표 기자회견’에서 기자들 물음에 답하고 있다.

이들은 이날 가장 시급하게 수사해야 할 이들의 명단을 발표했다. 모두 18명(국가 책임기관 5곳 포함)으로 당시 해양경찰과 청와대, 정부와 군 기무사, 국정원 관계자들이다. 주최측은 △죄의 중함 △증거 확보 여부 △공소시효 임박 여부 등을 고려해 명단을 정했다고 했다.

김석균 당시 해양경찰청장과 이춘재 해경 경비안전국장이 명단 첫줄에 올랐다. 배가 침몰하는 당시 ‘승객이 동요 않도록 안정시키라’며 퇴선과 정반대 명령을 하고, 관련해 위증 혹은 증거은닉한 혐의다. 현장 지휘책임자로 출동하지 않고 배가 뒤집히는 순간까지 퇴선 지시하지 않은 △김문홍 목포해양경찰서장 △목포해경 상황실 △해경 상황실(성명 불상) △김수현 서해 해경청장도 이름을 올렸다.

당시 대통령으로 참사 보고에도 조치를 하지 않은 박근혜씨, 청와대가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며 책임을 피하고 골든타임 관련 공문서를 조작한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위기관리상황실(성명불상)도 포함됐다. 우병우 당시 민정수석도 광주지검 수사팀의 압수수색을 막는 등 직권으로 압력을 행사한 혐의를 받는다.

▲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유가족과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및 4·16연대 활동가들이 15일 서울 광화문 세월호광장 기억공간에서 기자회견을 시작하기 전 희생자를 기리며 묵념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유가족과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및 4·16연대 활동가들이 15일 서울 광화문 세월호광장 기억공간에서 기자회견을 시작하기 전 희생자를 기리며 묵념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당시 법무부장관, 이후 국무총리)도 명단에 올랐다. 박 전 대통령의 ‘7시간’을 둘러싼 증거은닉을 주도하고, 은폐에 불응한 광주지검 수사팀에 보복인사한 혐의다. 이주영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과 해수부 직원도 재난 대응에 실패하고 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을 방해해 수사 대상이다.

△김병철 기무사 준장 △소강원 기무사 소장 △남재준 국정원장 △국정원 직원(성명불상)도 호명됐다. 기무사는 ‘세월호 TF’를 꾸려 유가족을 사찰하고 청해진해운을 관리해온 정황이 드러났다. 국정원장은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으로 재난 대응에 실패했으며 세월호 실소유주 논란은 진행형이다.

배 처장은 “아직도 수사가 되지 않아 이렇게 우리가 직접 나서 얘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고 명단 발표 배경을 밝혔다. 세월호 참사 이후 현재까지 관련해 처벌받은 책임자는 목포해경 김경일 123정장뿐이다.

장훈 운영위원장은 “가장 중요한 것은 공소시효”라고 했다. “직권남용은 공소시효가 5년이라 이미 임박했다. 업무상 과실치사는 7년이라 2년을 남기고 있다. 공소시효가 다가오는 혐의부터 적극 수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장훈 위원장은 “세월호 참사가 단일 사건인데 재판은 중앙지법, 동부지법, 군 재판소 등으로 나뉜다. 그러다 보니 기소 내용부터 재판부 의견까지 제각각이다. 거기다 군이 연루된 사건이기에 우리도 수사의뢰를 어디에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 세월호 참사 희생자의 유가족 홍영미(이재욱 군의 어머니)씨가 15일 세월호 참사 책임자에 대한 수사와 처벌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세월호 참사 희생자의 유가족 홍영미(이재욱 군의 어머니)씨가 15일 세월호 참사 책임자에 대한 수사와 처벌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배 처장은 “많은 사람들이 ‘기구가 있으니 조사하면 되지 않냐’고 말하지만, 기소권은 검찰이 독점하고 있다. 범죄 사실이 있는데 5년, 10년이 지나도 계속 조사만 하라는 법은 있을 수 없다”며 수사를 촉구했다.

장훈 위원장은 기자회견이 끝나고 추가질문 시간에 ‘증인인 기자들이 우리 요구를 잘 전달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솔직히 굳이 말씀 드리자면, 여기 기자님들이 증인”이라며 “가족들이 말하는 진상규명은 어렵고 큰 게 아니다. 기자들도 국민들도 이를 실시간으로 지켜봤는데, 304명이 죽도록 한 그 무능과 무지, 무책임함을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탈출 지시하지 않은 범죄자들, 살인자들을 처벌해달라는 거다. 현행법으로도 근거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곧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에 수사의뢰를 요청하고, 정부에는 수사전담기구를 상의하자고 요청할 예정이다. 배 처장은 “특별수사단을 설치하라는 청와대 온라인 국민청원에 오늘 오전 12만명이 함께 했다. 남은 2주 간 많은 국민이 함께 하리라 믿는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