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장자연 사건’ 증언에 나선 윤지오씨는 “장자연 사건이라고 부르는 것은 가해자 이름을 지목하는 것으로 변경돼야 맞다고 본다. 언니 이름을 방패 삼아 고인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가수 정준영의 불법촬영 사건이 피해자를 특정하거나 추정하는 보도로 이어지자 일부 연예인과 누리꾼들은 ‘우리는 피해자가 궁금하지 않습니다’라는 문구 이미지와 해시태그를 공유했다. 

조재범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코치의 폭력·성폭력 사건을 고발한 심석희 선수 법률 대리인은 언론에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바탕으로 허위 과장 보도하거나 선정적인 문구를 사용해 보도하는 일을 삼가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

언론이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제2의 가해자’가 되고 있다는 비판이 높아지는 가운데, 국회 입법조사처가 성범죄 보도와 관련한 규제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입법조사처는 1일 ‘성범죄 보도 관련 규제 현황 및 개선방안’이란 주제의 보고서에서 현재 성범죄 보도 관련 규제 현황과 개선 방안을 밝혔다.

현재 성범죄 보도에 가할 법률 규제는 방송심의 규제와 신문·방송을 비롯한 보도 관련 피해구제로 나뉜다. 입법조사처는 “언론의 보도 자체를 법률로 금지하거나 어떤 방식으로 보도하도록 제한할 수는 없기에 심의 또는 피해구제로 사후 규제한다”고 밝혔다.

▲ 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는 3월13일 페이스북 계정에 피해자를 추측하는 모든 글, 사진, 동영상을 유포하는 행위는 피해자에 대한 또 다른 폭력이라며 "우리는 피해자가 궁금하지 않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이미지를 만들어 게시했다. 사진=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 제공
▲ 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는 3월13일 페이스북 계정에 피해자를 추측하는 모든 글, 사진, 동영상을 유포하는 행위는 피해자에 대한 또 다른 폭력이라며 "우리는 피해자가 궁금하지 않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이미지를 만들어 게시했다. 사진=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 제공

최근 5년 간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의 범죄사건 보도 조항(22조, 23조)을 위반한 17건 중 성범죄 관련 보도는 1건 뿐이다. 입법조사처는 “방송사들이 규정을 잘 준수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규정 자체가 단순히 피해자 인적사항 공개금지와 피고인·피의자 인격 침해 금지에 맞춰져 충분하지 않고, 이에 따라 실질적인 피의자 또는 피해자 보호가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범죄보도 조항이 아닌 다른 조항을 적용한 심의 사례들이 상당수 있다. 지난 5년간 방송심의 규정의 사생활 보호(19조)·명예훼손 금지(20조)·인권보호(21조)·품위 유지(27조) 등 조항을 적용한 심의결과는 △지상파 9건 △종합편성채널 22건 △전문편성채널 2건이었다. 이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2월24일 제출한 자료를 기준으로 했다.

입법조사처는 “사생활 보호, 명예훼손 금지, 인권보호 등 다른 조항을 적용할 수도 있지만 성범죄 보도 자체에 대한 규정을 별도조항으로 신설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성범죄 보도는 다른 범죄에 비해 특히 관련 보호가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방송심의 뿐 아니라 성범죄 보도로 인한 피해구제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미투’ 운동에 힘입은 피해자들의 성폭력 고발 사례가 늘어나면서 문제적 보도 역시 급증했다. 2018년 언론중재위원회 시정권고 현황을 보면 가해자 범행수법 등 묘사가 285건, 피해자 신원공개가 54건에 달했다. 각각 최근 10년간 시정권고의 91.3%, 61.3%에 해당하는 수치다.

입법조사처는 “시정권고는 강제성이 없어 언론사들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유사한 침해를 반복한다면 의미가 없다”며 “언론중재위는 시정권고가 효력을 가질 수 있도록 시정권고 대상인 언론사, 특히 계속해서 권고 대상이 되는 언론사를 공표한다거나 권고기준 및 사례 등에 대한 정기적인 교육 등을 통해 꾸준히 인식을 개선해 나가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 gettyimagesb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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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 스스로도 성범죄 보도 관련 자율규제 방안을 체계화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입법조사처는 “사전에 반드시 피해자의 허락을 얻는 것은 물론 충분히 정당한 사유가 있어야 하고, 각 언론사의 편집 담당자 등 책임자의 공식적인 승인을 받는 절차를 갖춰야 한다”며 영국 BBC 사례를 들었다. 

BBC ‘편집가이드라인’ 제8장은 시청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범죄 및 반사회적 행위에 대한 취재 및 보도의 경우 반드시 ‘편집 정책 및 기준 책임자’ 승인을 얻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입법조사처는 “현재 언론사 대상의 성범죄 보도 관련 규정 또는 준칙은 충분히 잘 정비돼 있다. 문제는 이러한 준칙을 제대로 준수하는지, 준칙 준수에 대해 내부적으로 충분히 교육하고 평가하는지 여부”라며 “성범죄보도 준칙을 준수하지 않는 것은 언론사 및 언론인으로서의 전문성과 품위가 손상되는 중대한 행위임을 인지함으로써 언론의 자정적인 규제가 제대로 작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기자협회는 2018년 여성가족부와 ‘성폭력·성희롱 사건보도 공감기준 및 실천요강’을, 2012년에는 국가인권위원회와 ‘성폭력 범죄보도 세부 권고기준’을 제정했다. 신문의 경우 한국신문협회·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한국기자협회가 1957년 만들어 2016년 개정한 ‘신문윤리실천요강’에 성범죄 보도 유의사항이 담겼다. ‘인터넷신문 윤리강령’에도 미성년자와 가족 신원 미공개 및 피해자 신원 보호 원칙 등이 있다.

입법조사처는 “언론사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관련자 동의하에 성범죄 보도 관련 피의자 또는 피해자 신원을 공개하고 범죄에 대해 상세하게 보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취재와 보도를 결정하는 과정과 절차는 엄밀하고 정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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