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유력신문 ‘엘파이스’의 호세 마리아 이루호 탐사보도팀장이 시사인에 지난 2월22일(현지시각) 2차 북미정상회담을 5일 앞두고 일어난 스페인 북한대사관 피습사건의 배후가 미국 CIA라고 보도했다. 이루호 팀장은 이 사건을 “김혁철 북한 대미특별대표를 겨냥한 CIA가 피습 배후”라고 보도했다. 대다수 한국 언론은 지금껏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언론을 인용해 사건 배후에 반북단체 ‘자유조선’(옛 ‘천리마민방위’)이 있다고 밝혀왔다.

이루호 팀장은 시사인 최근호(603호)에서 “피습 사건 닷새 뒤 정상회담에서 북한 대표단을 이끈 인물이 2014~2017년 스페인 북한 대사였던 김혁철이었다”고 전한 뒤 “스페인 정보국에 따르면 대사관 외부 보안 카메라에 찍힌 용의자 한국계 두 명이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에 촉수를 펼치고 있는 CIA의 협력자들”이라고 밝혔다.

이루호 팀장은 “대사관을 습격한 괴한들은 USB 2개, 컴퓨터 2대, 보안 사진이 담긴 하드디스크 2개, 휴대전화 1대를 훔쳤다”고 전한 뒤 “수사당국은 습격 배후를 밝히는 데 조심스러워 하며, 이번 습격의 목적은 김정은 위원장의 측근인 김혁철 전 대사를 가장 잘 아는 서윤석을 데려가는 것이었다고 전했다”며 모든 단서가 습격 배후로 CIA를 가리킨다고 강조했다.

▲ 시사주간지 시사인 최근호 커버스토리.
▲ 시사주간지 시사인 최근호 커버스토리.
이루호 팀장은 “무장 집단의 리더가 미국으로 도피한 것과 자신이 얻은 정보를 FBI에 넘겼다는 사실은 스페인 조사당국의 의심에 타당성을 부여하고 있다”며 워싱턴포스트를 비롯한 미국 언론의 ‘자유조선 배후설’ 보도는 근거가 희박하다고 지적했다. 결국 미국 CIA가 북미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고자 김혁철이 남긴 무언가를 찾기 위해 회담 직전 습격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와 관련 태영호 전 영국 북한공사는 지난 24일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스페인 북한 대사관에서 암호화된 전문 해독에 쓰이는 컴퓨터가 도난당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러나 한국에선 ‘반북단체 배후설’이 유력하게 퍼져있는 상황이다. 미국 외신을 받아쓰고 있어서다. 앞서 워싱턴포스트는 스페인 북한 대사관 습격을 두고 “이번 습격은 북한 정권을 약화시키고 대량 탈북을 격려하려는 무명 조직의 야심찬 작전”이라고 보도했으며, 조선일보는 지난 18일 워싱턴포스트를 인용해 보도한 뒤 한 대북소식통의 익명발언을 인용해 “김정은의 정통성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 조선일보 3월28일자 1면.
▲ 조선일보 3월28일자 1면.
이후 로버트 팔라디노 미 국무부 부대변인은 26일(현지시간) “미국 정부는 이 사건과 무관하다”고 말했고, 같은 날 ‘자유조선’은 스페인 북한 대사관 피습 사건이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대사관 습격처럼 북한 정권을 직접 타격하는 반북 단체의 등장은 처음”이라며 사건에 의미를 부여한 뒤 암살된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이 자유조선의 핵심 리더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루호 엘파이스 탐사보도팀장은 “자유조선은 대사관 피습과 직원 납치만큼 계획적이고 전문적 임무를 수행할 정도로 스페인 내에서 조직력을 갖추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앞서 엘파이스는 지난 13일(현지시간) “대사관 침입자 10명 중 최소 2명의 신원이 확인됐고 이들이 CIA와 관련 있다”고 보도했다. 이 사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시사인 최근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루호 팀장은 2017년 시사인 저널리즘 콘퍼런스에 참석하며 시사인과 인연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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