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진영이 다시 ‘이승만 띄우기’에 나섰다. 조선일보는 지난 22일 1면과 8면에서 임시정부를 이끈 김구와 이승만을 엮어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이승만과 김구가 1945년 해방까지 미국과 중국에서 독립운동에 헌신하며 줄곧 협력관계를 유지했다”며 “이 둘을 대립관계로 규정하는 것은 과거 역사를 현재 정치에 이용하는 ‘역사 정치’일 뿐”이라고 했다. 해당 기사는 해방 전까지를 다뤄 1949년 6월 김구 암살 배후에 이승만이 있다는 내용 등은 빠져있다.

보수기독교계에서도 이승만 띄우기가 활발하다. 자유한국당 지지세력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는 지난 4일 프레스센터에서 ‘이승만 대학 설립 발기인대회’를 열었다. 한기총 대표회장인 전광훈 목사는 이날 “나라가 위험해지고 있는데 건국이념을 세운 이승만 대통령의 학교가 없기 때문”이라며 “이승만 건국이념을 계승해 무너지는 나라를 세우자”고 말했다.

▲ 22일자 조선일보 8면기사
▲ 22일자 조선일보 8면기사

전광훈 목사는 오래전부터 이승만 미화에 열을 올린 인물이다. 코미디언으로 활동했던 서세원 목사가 지난 2014년 이승만 일대기를 다룬 영화를 제작하려 했는데 이때 전 목사가 후원회장을 맡았다. 전 목사는 “대한민국 감독 중 90%이상이 좌파라 서세원 목사에게 영화를 부탁했다”고 했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지난 20일 한기총을 방문해 전 목사를 만난 건 이승만 미화에 본격 손을 잡겠다는 행보로도 풀이된다.

이명박 때부터 본격화한 이승만 미화

이승만 미화는 보수진영이 소위 ‘잃어버린 10년’을 찾으며 열심히 진행한 일이다. 2004년 5월말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기도회에서 “수도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한다”고 한 이는 자신을 ‘서울특별시장 이명박 장로’라고 표현했다. 이명박 장로의 대통령 당선은 기독교계에서 큰 의미였다. 보수세력이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려하고 남산에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동상을 세우는 등 역사 흔들기에 앞장서는데 교계가 함께했다.

‘이승만 띄우기’가 문제인 이유는 철 지난 색깔론을 들고 나와 독재를 찬양해서다. 2014년 2월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건국 대통령 이승만 영화 시나리오 심포지움’에서 서세원 목사는 “빨갱이들로부터 나라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고, 김길자 대한민국사랑회 대표는 ‘3·15 부정선거에 이승만이 연루되지 않았다’는 식의 주장을 했다. 사회를 본 정미홍 전 KBS 아나운서는 “차기작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다루자”고 했다.

사실왜곡도 있었다. 전광훈 목사는 이번 3·1절에 “이승만이 3·1운동을 일으켰다”고 했다. 뉴스톱 22일 보도를 보면 이승만 정부에서 상공부장관을 했던 임영신,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린 서정주·김성수의 회고록이 그 근거인데 이승만이 윌슨 미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를 상하이에 전했다는 내용이다. 민족자결주의를 전했다는 근거도 확실치 않지만 민족자결주의를 전한 게 곧 3·1운동을 일으킨 근거로 보기도 어렵다. 게다가 임영신 회고록엔 일제 때 감옥에 간 적 없는 이승만의 투옥사실을 언급하는 등 오류투성이다. 알려진 대로 역사학계에선 3·1운동의 계기로 2·8독립선언, 민족대표 33인의 선언 등을 꼽는다.

▲ 1948년 7월24일 당시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던 중앙청(옛 조선총독부) 광장에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취임식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국가기록원
▲ 1948년 7월24일 당시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던 중앙청(옛 조선총독부) 광장에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취임식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국가기록원

황교안 전도사 대통령 만들기

이승만 미화엔 여러 이유가 있다. 대한민국 정체성을 기독교로 설정해 목사들이 정치에 참여할 공간이 생기고, 정치권에선 이승만-박정희로 이어지는 장기집권을 합리화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1948년 8월15일 이승만 장로님이 건국한 기독교 국가”(전광훈 1월29일, 3월1일)이니 “이명박 장로님을 찍지 않으면 생명책에서 지워버리겠다”(전광훈 2007년 4월)는 발상은 황교안 전도사를 대통령으로 만들자는 희망으로 이어진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있는 구치소에 매주 방문했다는 김장환 목사(극동방송 이사장)가 지난 19일 한국당 조찬기도회에 참석했다. 1982년 4월 중앙일보를 보면 김장환 목사는 사법연수원에 있던 황 대표가 1981년 수도침례신학교에서 목회자 수업을 병행할 당시 교장이었다. 교계 시민단체 평화나무는 “보수개신교계의 거두이자 황 대표의 스승격인 김 목사가 한국당 기도회에 참석해 향후 한국당과 보수개신교의 정치적 연대 가능성을 의심케 한다”고 비판했다.

한기총은 대놓고 ‘황교안 청와대행’을 거론했다. 전광훈 목사는 지난 20일 황교안 대표를 만나 “세상 사람들은 이명박 장로 등이 실패했다고 말한다. 대통령이 될 때까지 한국교회가 열심히 했는데 대통령이 된 이후 방관했다”며 “황 대표는 하나님이 청와대에 보내 주더라도 끝까지 교계 지도를 잘 받으면 잘될 것”이라고 했다.

▲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우측)가 지난 20일 전광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을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우측)가 지난 20일 전광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을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5·18 망언, 이승만 미화 등이 기독교인들 모인 카카오톡 단체방 뿐 아니라 한국당 전당대회에서도 힘을 얻는 건 간과할 일이 아니다. 황 대표는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두 달 연속 1위를 기록했고 한국당은 최근 4주간 지지율이 꾸준히 올랐다. 보수기독교는 이런 제1야당에 올라탔다.

19대 총선 비례대표 지지 1.2%를 얻은 기독교정당은 20대 총선 비례대표에서 2.63% 지지를 얻었고, 내년 총선에서 국회 입성을 목표로 한다. 전광훈 목사가 바로 기독자유민주당(19대)·기독자유당(20대) 창당에 참여해 목사의 정치참여를 주장한 인물이다. 지난달 전광훈 목사를 한기총 대표로 세운 중요한 이유다. 황 대표는 “목사님들께서 1000만 기독교인과 뜻을 모아달라”며 화답했다.

이승만 따라하는 한국당

한국당은 최근 이승만을 흉내 내고 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지난 14일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해방 후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로 인해 국민이 무척 분열했던 것을 모두 기억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반민특위는 일제강점기 반민족행위자를 조사·처벌하기 위해 1948~1949년에 활동한 특별위원회로 민주국가를 세우는 선행조건이었다. 반민특위를 분열의 원인으로 본 것은 이승만을 중심으로 하는 친일·독재세력의 기본 관점이다.

▲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오른쪽)가 지난 2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당대표 및 최고위원-중진의원 선거대책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가운데는 나경원 원내대표. 사진=노컷뉴스
▲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오른쪽)가 지난 2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당대표 및 최고위원-중진의원 선거대책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가운데는 나경원 원내대표. 사진=노컷뉴스

이승만은 1948년 10월 기자회견에서 “정권이양 시기이므로 현직에 있는 사람을 처단하는 것은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며 반민특위 활동을 시작부터 제한하려 했다. 1949년 5월말 이승만은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 집을 방문했다. 김 위원장의 아들 김정육씨 증언에 따르면 이승만은 김 위원장에게 “반민피의자를 대충 조사하고 내각에 참여하라”고 압박했다. 김 위원장이 이를 거부하자 6월6일 반민특위 습격사건을 자신이 “직접 지시했다”고 밝히는 등 속내를 드러냈다.

나 원내대표의 반민특위 발언은 큰 비판에 직면했다. 29개 역사단체와 독립유공자 후손 658명이 나 원내대표를 비판했고 100세를 맞은 임우철 독립지사까지 직접 국회에 방문했다. 그러자 나 원내대표는 자신이 비판한 게 ‘반민특위’가 아니라 2019년 ‘반문특위’라고 해명했다.

의도가 선명해졌다. 반민특위도 싫고 문재인 대통령도 싫은 이들을 한국당에 집결시키겠단 뜻이다. 하향추세인 여당과 대통령 지지율을 배경으로 극우까지 품은 한국당과 기독교계가 세를 불리고 있다. 그 중심에 이승만 장로를 잇는 황교안 전도사가 있다. 장로는 평신도지만 전도사는 목회자다. 누군가에겐 전도사 대통령의 탄생도 일종의 ‘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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