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외교부 나사 빠진 의전…연이은 외교결례”(3월21일자 조선일보 기사 제목)

지난 13일 말레이시아를 국빈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인도네시아어로 인사말을 했다며 외교 결례 논란이 뒤늦게 불거졌다. 발화점은 한국외대에서 말레이 인도네시아어를 전공한 이경찬 영산대 아세안비즈니스학과 교수의 14일자 페이스북으로 보인다. 이 교수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같은 역사적 뿌리를 공유하지만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는 한때 말레이시아 연방 성립을 놓고 소규모 전쟁까지 벌였다”며 문 대통령의 인사말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언론사 가운데 첫 보도는 19일자 세계일보였는데, 이경찬 영산대 교수의 입장이 주요하게 반영됐고 고영훈 한국외대 아시아언어문화대학장의 ‘외교 결례 우려’ 코멘트가 담겼다. 이후 20일 “슬라맛 소르(안녕하십니까)!”는 입길에 오른다. 말레이시아어로 오후인사는 ‘슬라맛 쁘땅’이고 ‘슬라맛 소르’는 인도네시아 말인데 대통령이 “슬라맛 소르”라고 말했다는 것. 

▲ 3월20일자 YTN보도화면 갈무리.
▲ 3월20일자 YTN보도화면 갈무리.
이를 두고 YTN은 “외국 인사가 우리나라에 와서 ‘곤니치와’ 혹은 ‘니하오’라고 인사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보도했다. 청와대는 “혼선이 발생했다”며 사실상 사과했고, 이낙연 국무총리는 “전문성이 부족한 직원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날 KBS는 메인뉴스 팩트체크 코너를 통해 외교결례가 아니라고 반박했다. 이날 스튜디오에는 6년간 인도네시아에 거주했던 KBS기자가 출연해 “두 나라의 사전을 찾아봤더니 쁘땅과 소레(소르)가 동의어로 나온다. 정오 이후 해가 저물 때까지, 저녁 즈음을 말하는 같은 뜻의 단어”라며 “대통령이 말레이시아에서 인도네시아 말을 잘못한 게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KBS는 ”두 나라가 어원이 같다“고 덧붙이며 ”한국에서 곤니찌와라고 한 거다, 이런 비판들은 사실과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 3월20일자 KBS보도화면 갈무리.
▲ 3월20일자 KBS보도화면 갈무리.
또한 KBS는 “말레이시아 주요 매체 기사를 찾아본 결과 당시 정상회담 소식은 있는데, 말실수라든가 외교적 문제라든가 이런 지적들은 찾아보지 못했다”고 밝혔다. 보통 외교결례가 벌어지면 현지에서 비판여론이 등장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고, ‘외교결례’ 논란은 한국에서만 벌어졌다는 설명이다. KBS는 “말레이시아 한인회도 접촉해봤더니, ‘어차피 비슷한 말이고, 사투리 정도로 보면 된다, 말레이시아에선 아무 말 없는데 한국 언론이 예민하다’라고 말했다”며 논란의 대상이 아님을 강조했다.

하지만 21일 종합일간지는 대부분 외교참사 쪽에 무게를 실었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대통령이 해외 공개 석상에서 한 실수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해 ‘안녕하세요’ 대신 ‘곤니치와’라고 한 셈 아닌가”라고 주장하며 “외교 결례이자 국가 망신”이라고 비판했다. 같은 날 동아일보는 “현 정부 출범 이후 계속된 의전실수를 두고 외교가에서는 ‘청와대 의전시스템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의미’라는 말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 조선일보 21일자 기사.
▲ 조선일보 21일자 기사.
이종락 서울신문 논설위원은 21일 칼럼에서 “한 때 소규모 전쟁까지 벌일 정도로 양 국민의 감정이 좋지 않다”며 이번 사건이 “마치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 정상이 일본어 오후인사 곤니치와로 인사한 것과 같다”고 적었다. 김종훈 경향신문 논설위원은 “두 나라는 전통적인 앙숙 관계여서 모하맛 총리는 물론 말레이시아 국민들이 불쾌했을 법하다”고 지적하며 이번 논란이 “청와대 참모들이 대통령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하면서 발행한 외교참사”라고 썼다.

반면 팩트체크 전문매체 ‘뉴스톱’은 21일 인도네시아에 거주하는 김정호 팩트체커의 글을 통해 “인도네시아에서는 ‘슬라맛 소레’를 쓰고 말레이시아에서는 ‘슬라맛 쁘땅’을 많이 쓰는 것 뿐이지 말레이시아에서 ‘슬라맛 소레’라고 인사하면 결례라는 것은 억지”라고 주장했다. 해당 글은 “문 대통령의 또 다른 실수로 오후 인사말 ‘슬라맛 쁘땅’과 저녁 인사말 ‘슬라맛 말람’을 헷갈렸다는 것도 현지 문화를 잘 모르니까 나오는 지적”이라며 “동남아 특유의 느슨한 시간개념 탓이겠지만 현지에서는 시간대를 정확히 구별해 인사말을 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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