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가입하면 방송이 공짜’.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유료방송 논쟁의 핵심 키워드는 ‘결합상품’이었다. 핸드폰이라는 무기를 가진 통신사가 IPTV와 묶은 결합상품을 내세우면서 케이블 SO(System Operater, 케이블 플랫폼)와 불공정한 경쟁을 하고 방송을 ‘끼워팔기 상품’으로 전락시켰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결합상품 논쟁을 찾기 힘들다. 시장의 균형추가 이미 한쪽으로 쏠렸기 때문이다. 지난 13일 방송통신위원회가 발표한 ‘2018년 방송시장경쟁상황평가’ 결과 처음으로 IPTV 가입자(1433만 명)가 케이블 SO가입자(1404만 명)를 추월했다. 2009년 IPTV 전면 도입 10년 만에 점유율 역전현상인 ‘골든크로스’가 발생한 것이다.

여기에 통신3사가 최근 인수합병을 추진하는 케이블SO의 점유율을 더하면 KT+스카이라이프+딜라이브 37.31%, LG유플러스+CJ헬로 24.43%, SK브로드밴드+티브로드 23.83%로 통신사의 유료방송 점유율이 85.57%(지난해 6월 기준)에 이르게 된다. 시장의 판도가 완전히 바뀌는 것이다.

▲ 통신3사 대리점. ⓒ 연합뉴스
▲ 통신3사 대리점. ⓒ 연합뉴스

KT의 경우 3월 국회에서 유료방송 점유율 상한을 33%로 두는 합산규제 재도입 논의가 이뤄질 예정이라 제동이 걸렸지만 LG와 SK는 인수합병 ‘파란 불’이 켜졌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19일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과 여러 차례 의견을 나눴고 두 기관 사이 직·간접 소통이 있다. (인수합병이 불허된) 3년 전과는 같은 상황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통신사에 손 내민 케이블과 지상파의 ‘복잡한 속내’

10년 만에 케이블 산업은 절체절명의 위기다.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는 통신사에 반발하고 있지만 개별 업체의 생각은 다르다. 케이블협회가 합산규제 재도입을 요구한 상황에서 KT 인수합병 대상으로 떠오른 딜라이브가 합산규제 반대 입장을 낸 사실은 상징적이다. 한 케이블업계 관계자는 “솔직히 통신사에 팔리고 싶지 않은 곳이 있겠나”라고 말했다. 케이블 업계는 ‘지역성이 흔들린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고 케이블 업계 노동조합은 ‘고용 승계’ 문제에 주목하고 있다.

방송사들의 심정은 복잡하다. 통신사가 유료방송시장에 독점적으로 군림하게 되면 채널을 제공하는 지상파 입장에서 협상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어서다. 지상파 방송사를 회원사로 둔 한국방송협회는 “실시간 방송과 VOD를 공급하는 지상파·개별PP 등 대다수 콘텐츠 사업자들의 협상력이 대폭 약화될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콘텐츠 제값 받기가 불가능해져 콘텐츠 제작 재원을 확보하기 어려운 악순환 구조에 빠질 것”이라며 현 상황에 반발하고 있다.

지상파 다음으로 유력한 종편도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종편 관계자는 “의무전송이 사라지는 상황에서 통신사 중심의 유료방송 구조는 협상력 차원에서 우려가 있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특히 티브로드가 티캐스트 계열 채널을 소유하고 있고 CJ헬로와 CJENM의 연관성을 고려하면 플랫폼과 인연이 없는 채널들이 불이익과 차별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이 가운데 OTT(Over the top, 온라인 동영상 제공 서비스) 시장에서 지상파의 푹(POOQ)이 ‘원수’처럼 여기던 SK브로드밴드 ‘옥수수’와 합병하는 ‘빅딜’이 이뤄진 대목은 상징적이다. 이 제휴가 지상파에 이익이 될지는 내부에서도 이견이 있지만 푹 가입자가 정체기를 맞은 상황에서 돌파구가 필요했던 건 사실이다.

가입자 늘리면 끝? 관건은 ‘콘텐츠 투자’

한국의 미디어 시장은 방송광고 시장의 붕괴와 해외 뉴미디어의 진출이라는 두 가지 거대한 변화에 직면해 있다. 문재인 정부 공정거래위원회와 미디어 부처들은 ‘플랫폼 독점’에 대한 우려를 고민하면서도 ‘강력한 국내 사업자 양성’을 강조하며 통신사를 지원하는 모양새다.

여기에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한 케이블업계 관계자는 “넷플릭스에 맞서겠다고 하는데 통신사의 목표는 인수합병으로 통신사 내수시장 가입자를 늘리는 것이다. 콘텐츠 시장 활성화로 이어질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 1월3일 지상파3사와 SKT 동영상 플랫폼 공동사업 양해각서 체결식에서 지상파3사 사장단과 SKT텔레콤 사장이 활짝 웃고 있다.
▲ 1월3일 지상파3사와 SKT 동영상 플랫폼 공동사업 양해각서 체결식에서 지상파3사 사장단과 SKT텔레콤 사장이 활짝 웃고 있다.

관건은 적극적인 콘텐츠 투자다. 강정수 메디아티 대표는 지난해 KBS에 공적 기능을 집중시키고 보도기능을 뺀 민영방송은 미국처럼 통신사와 결합도 허용하는 방식의 시장 재편 방안을 제시했다. 미국 2위 통신사 AT&T와 미국 3위 미디어기업 타임워너 인수 같은 사례가 나와야 콘텐츠 중심의 긍정적인 시장 재편을 주도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곽규태 순천향대 글로벌문화산업학과 교수는 “유튜브가 콘텐츠를 만들고 네이버도 V라이브를 직업 운영하는 등 플랫폼 사업자도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콘텐츠에 적극 투자하는 추세”라며 “통신사의 경우 인수합병으로 기업의 역량을 키우는 측면이 있다. 쉽지 않겠지만 국내 경쟁에 그치는 대신 해외에 맞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는 등 적극적인 해외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와 국회는 변화한 매체 환경에 발맞춰 ‘큰 그림’을 그려야 할 시점이지만 여전히 ‘중간광고’ ‘인수합병’ ‘합산규제’ 등 개별 현안별로 대응하기 급급하다. 김동원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은 “법과 규제 논의에 앞서 어떻게 사업자들이 동의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장 획정과 체계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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