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에 쓰신 ‘정준영 몰카’ 사건 관련 칼럼 잘 봤습니다. 과거에는 몰카 영상이 불법으로 유포됐을 때 ‘X양 비디오’로 불리며 피해 연예인에게 책임을 덧씌우고 불이익을 가했는데 가해자 이름으로 부르는 원칙이 맞고 앞으로도 이를 지켜야 한다는 요지였지요.

그런데 지금은 기사 제목이 “이건 ‘정준영 몰카’ 사건..피해자 대신 가해자를 보라”로 바뀌었지만 이미 많은 독자는 박 부장이 쓴 원래 기사 제목을 “‘정준영 몰카’ 사건...‘O양 비디오’가 아니다”로 봤습니다.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 이름으로 사건을 명명하고 책임을 지워야 한다는 칼럼을 쓰면서 이와 모순되게 피해자를 상기하는 제목에 많은 누리꾼이 분노했습니다.

더구나 수정 전 기사에는 ‘O양’이 누구인지 유추할 뉴스 리포트 화면도 갈무리해 올렸더군요. “언론은 피해자의 신원이 노출될 수 있는 이름, 나이, 주소 등의 신상정보를 공개하지 않아야 한다”는 성폭력·성희롱 사건보도 공감기준 및 실천요강의 ‘피해자 보호 우선’ 원칙은 잊으셨나요? 피해자 이름이 강조돼선 안 된다는 기사의 취지와 진정성마저 의심케 하는 제목과 사진입니다.

박은주 부장은 지난 2009년 3월7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신인 배우가 쓴 이른바 ‘장자연 문건’을 최초로 보도한 기자입니다. 당시 조선일보 엔터테인먼트 부장인던 박 부장은 장씨가 숨진 하루 뒤인 3월8일 장씨에게 문건을 쓰게 한 유장호 호야스포테인먼트 대표 사무실에서 장자연 문건을 촬영했습니다.

▲ 지난 2009년 3월10일자 19면. 박은주 당시 조선일보 엔터테인먼트 부장은 장자연 문건을 최초로 보도했다.
▲ 지난 2009년 3월10일자 19면. 박은주 당시 조선일보 엔터테인먼트 부장은 장자연 문건을 최초로 보도했다.
이후 조선일보 3월10일자 지면에는 장씨가 “저는 나약하고 힘없는 신인 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라는 문구와 주민등록번호, 지장, 사인이 적힌 문건 내용 일부가 보도됐습니다.

이 기사에서 박 부장은 “수억원의 개런티를 받는 연예인, 수십억원의 재력가 스타가 존재하는 우리 연예계의 한쪽에서는 꿈을 담보로 잡힌 채 고통을 겪고 있는 무명 여배우란 존재가 자리를 잡고 있다. 그리고 그들을 유린하는 건 그들보다 힘이 센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당시 박 부장이 문건 전체를 못 봤다면 이 문건에 장씨가 소속사 대표에게 ‘조선일보 방사장’과 잠자리를 요구받았다는 것과 ‘조선일보 방 사장 아들’에게 술 접대를 했다는 내용이 있었는지는 몰랐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라도 문건 내용을 확인했을 것입니다.

박 부장은 기사에서 “과연 우리 대중들은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가, 우리는 정의의 힘을 믿는가. 이건 우리가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고 했습니다. 그때 던졌던 질문에 대한 답은 찾으셨나요?

장자연 문건을 최초로 보도한 기자로 ‘무명 여배우의 인권을 유린하는 건 힘이 센 사람들’이라고 했고, 진정으로 정의의 힘을 믿으신다면 그때 제대로 후속보도하지 못한 장자연 리스트 사건을 지금이라도 진실하게 보도할 생각은 없는지요. 참, 조선일보에서 후속보도 한다면 사건 이름은 꼭 ‘조선일보 방 사장 사건’으로 명명했으면 합니다. 20년 만에 겨우 세워진 원칙을 허물어선 안 되겠지요.

▲ 지난 2014년 3월 박수환 전 뉴스컴 대표와 박은주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 사회부장이 주고받은 문자 내용. 사진=뉴스타파 리포트 갈무리
▲ 지난 2014년 3월 박수환 전 뉴스컴 대표와 박은주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 사회부장이 주고받은 문자 내용. 사진=뉴스타파 리포트 갈무리
장자연 문건 작성 배경과 관련해 박 부장에게 또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당시 유장호 대표 소속사에서 근무했던 매니저들에 따르면 박 부장은 유 대표 소속사에 있던 배우 송선미씨와 송씨의 남편인 고아무개 미술감독과도 잘 알던 사이였습니다. 유 대표 소속사 직원들은 송씨 측에서 부탁해 국정원 직원이 유 대표를 보호하고 있었다고도 증언했습니다.

당시 송씨 측이 왜 국정원 직원에게 부탁해 유 대표를 보호하려고 했고, 이후에 유 대표에게 확인한 문건의 진실(조선일보 방 사장 내용 포함)은 무엇이었는지 아는 내용이 있다면 억울한 피해자를 위해서라도 꼭 밝혀줬으면 합니다.

아울러 ‘박수환 문자’ 보도로 불거진 기사 청탁 의혹과 관련해서도 조선일보 동료들뿐만 아니라 많은 언론인과 대중들이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검찰 고발까지 된 사안이라 민감할 수도 있겠지만,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 범위 내에서 해명을 기다리겠습니다.

[관련기사 : 조선일보 박은주 부장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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