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노회찬 의원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포함한 선거제도 개혁을 외쳤다. 3월 임시국회는 2020년 4·15총선에서 ‘노회찬의 꿈’에 한 발자국, 나아갈 마지막 시기다. 앞서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은 의원수를 330석으로 늘리고 정당득표율과 의석수를 100% 일치시키는 완전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요구해왔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석패율제를 도입하며 기존 300석으로 의원수를 유지하는 안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민주당의 선거제도개혁안은 시간이 흐를수록 후퇴해왔다는 평가다. 민주당은 1월 말까지만해도 지역구 200석·비례대표 100석의 선거개혁안을 당론으로 확정했으나 한 달 만에 75석으로 ‘후퇴’했다. 그럼에도 4당은 결국 차선책에 합의했다. 민주당 안을 받아들이며 의원정수는 현행유지하되 지역구는 225석으로 줄이고 비례대표를 75석으로 늘리기로 했다. 기존보다 비례대표가 28석 늘어나게 됐다. 이후 복잡한 세부안은 4당이 추후 논의키로 했다.
정호진 정의당 대변인은 이번 합의를 두고 “아쉬운 면이 있으나 현행보다 진일보했고 법적 처리시한을 고려할 때 더는 늦어져선 안 된다는 판단이 있었다”며 합의배경을 설명했다. 4당은 해당 개혁안을 패스트트랙에 올리기로 했다. 상임위 재적 5분의3이 찬성하면 특정 법안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올릴 수 있다. 이 경우 330일 이내 법안이 처리돼야 한다. 3월15일까지 법안을 확정해 올리면 2020년 4·15 총선에서 변화된 선거제도를 아슬아슬하게 적용할 수 있다.
그런데 자유한국당이 오히려 지역구 의석은 늘리고 비례대표제는 아예 폐지하고 의원수는 30명 줄이는 선거제도 개편안을 당론으로 채택하며 논란에 불을 지폈다. 지난해 말 한국당을 포함한 5당 원내대표 합의안의 첫 번째 조항이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구체적 방안을 논의한다’는 것이었지만 합의내용을 정면 부정하며 헌법 41조3항에 명시된 비례대표제 입법명령 조항마저 무시한 초헌법적 발상을, 제1야당이 내놓은 것이다.
그러자 심상정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 위원장은 11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4당의 ‘패스트트랙’ 합의에 자유한국당이 ‘의원총사퇴’로 맞선 것을 두고 “밀린 숙제하라고 하니까 자퇴서 내겠다는 것”이라며 “국회 불신을 방패막이 삼아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으려고 하는 그런 얄팍한 태도”라고 비판했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정당이 지역구 득표율만큼 지지율을 얻고 있으면 손해 볼 일 없겠지만 자유한국당은 비례대표가 늘어나면 손해를 볼 수 있다. 지난 총선에서 보수층이 국민의당에 많이 투표한 것을 고려했을 것”이라며 자유한국당의 ‘퇴행’ 배경을 짚었다.
언론도 비판에 나섰다. 한겨레는 12일자 사설에서 “자유한국당이 막판 퇴행적 개정안을 제시한 건 사실상 선거제 개혁에 뜻이 없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한국일보 또한 같은 날 사설에서 “스스로 비례대표로 들어와 입지를 다졌음에도 자신이 타고 올라온 사다리를 걷어차는 행태를 서슴지 않으며 위헌 운운하니 개탄을 금할 수 없다”며 나경원 원내대표를 비판했다.
자유한국당의 의도는 무엇일까. 자유한국당은 여야가 개혁 법안을 내면 현행법안보다 퇴행적인 법안으로 맞서거나, 일종의 ‘현상유지’ 전략을 펴고 있다. ‘비례대표’ 폐지 같은 황당한 주장을 펼치는 식으로, 결국 ‘아무것도 못하게’ 만들겠다는 의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