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9시30분까지 일하면 7000원, 11시30분까지 일하면 1만원 지급된다는 말을 들었다. 식대로 생각하라길래 시간당 최저시급은 주고 추가 지급되는 액수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아무리 일해도 하루에 1만7000원 지급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뒤 팀장에게 최저임금 위반 아니냐고 했더니 ‘니가 계약서에 사인했으니까 그냥 이대로 일 하든가 그만두든가’라고 했다.”

“노동시간을 지키지 않는 것은 물론 초과근무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영화제 측의 입장이 가장 큰 문제다.”

영화제 스태프로 일했던 노동자들 증언이다. 청년유니온과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등이 지난해 9월부터 11월까지 받은 제보를 분석한 결과 하루 평균 13시간이 넘는 장시간 노동을 하면서도 제대로 시간외수당을 받지 못했다. 

제보자들은 영화제 개최 한달 전 하루 평균 13.4시간(주 평균 67.1시간)씩 일했고, 영화제가 가까워질수록 총 노동시간이 늘고 연장·야간·휴일노동이 증가한다고 답했다. 심지어 주 90시간 이상 노동했다는 제보도 5건이 됐다.

▲ 영화제 스태프들의 공짜야근 실태. 자료=청년유니온
▲ 영화제 스태프들의 공짜야근 실태. 자료=청년유니온

나현우 청년유니온 기획팀장은 “영화제 특성상 장시간 노동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일각의 의견도 있으나 노동시간을 줄이려는 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장시간 노동은 근로기준법 위반 뿐 아니라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침해 가능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번에 받은 제보 중에 시간 외 수당을 지급하지 않았다는 제보는 총 30건(전부미지급 21건, 일부미지급 9건)이었다. 한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6대 국제영화제들을 대상으로 지난해 스태프들에게 제보를 받은 결과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스태프를 제외한 5개 영화제 스태프들은 시간 외 수당을 전부(4개) 또는 일부 미지급(1개) 받았다고 답했다.

▲ 부산국제영화제 로고
▲ 부산국제영화제 로고

또한 지난해 11~12월에 진행한 근로감독결과 부산국제영화제·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DMZ다큐멘터리영화제·전주국제영화제에서 연장·야간·휴일노동에 따른 시간 외 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제천국제영화제의 경우 시간 외 수당 미지급은 확인되지 않았다. 체불임금 규모가 가장 큰 영화제는 부산국제영화제였다.

청년유니온이 부산국제영화제의 임금체불을 처음 문제제기할 때 제보를 바탕으로 추산한 체불임금은 1억2400만원이었다.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결과 부산국제영화제 시간 외 수당(연장·야간·휴일노동) 임금체불액은 5억2600여만원으로 나타났다.

열악한 노동조건에도 스태프들이 쉽게 문제제기 하긴 어려운 구조였다. 청년유니온에 제보한 스태프 40명 중 38명이 임시직노동자였는데 이들의 평균계약기간은 4.1개월에 불과했다.

한 스태프는 청년유니온에 “당장 이번 계약이 끝나면 다음에도 일할 수 있을지 기약이 없고, 계약이 된다고 하더라도 언제까지 이렇게 단기계약으로 영화제에서 일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며 “나이 들수록 더 이상 영화제에서 단기계약직으로도 안 뽑아줘 정규직이 되지 못하면 결국 영화제판을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의 평균경력기간은 2년이 채 안됐는데 영화제와 근로계약 평균횟수는 3회였다. 4개월 단위로 3개 영화제를 전전하고 있는 꼴이다. 특히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선 9개월 이상 상시지속업무를 하는 스태프들을 수개월 단위로 이른바 ‘쪼개기 계약’을 맺어 정규직화를 막은 것으로 나타났다.

영화제 스태프 처우가 열악한 이유로는 재정 독립성이 낮다는 점이 꼽힌다. 노무법인 화평 대표인 이종수 노무사는 “사용자인 사단법인 영화제들의 재정적 독립성이 매우 낮고 지방자치단체와 정부 예산지원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경우 연간 120억원 정도의 예산이 필요한데 이중 부산시 예산과 중앙정부 예산(영화발전기금)을 합한 금액이 전체 예산의 75%에 이른다. 이는 칸 국제영화제 14.8%, 베를린영화제 29.5%, 도쿄영화제의 46.4%와 비교하면 큰 비중이다.

▲ 김영주,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청년유니온, 영화진흥위원회는 11일 국회에서 '레드카펫 아래 노동, 영화제 스태프 노동환경 진단 및 개선과제 토론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 김영주,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청년유니온, 영화진흥위원회는 11일 국회에서 '레드카펫 아래 노동, 영화제 스태프 노동환경 진단 및 개선과제 토론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이 노무사는 해외사례와 국내 영화제작스태프의 처우개선 노력을 참고해 영화제 스태프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경우 채용단계에서 업무내용과 자격요건을 상세히 공지하고 노동시간·급여 등을 명시했다. 프랑스의 경우 SPIAC(spiac-cgt, 스피악 세제테)라는 노조가 영화제스태프를 대변하고 있어 노동권 개선에 노력하고 있다. 또한 유럽연합의 크리에이티브 유럽 프로젝트와 같은 단체가 영화제를 지원하고 감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내 영화제작스태프들은 노조를 중심으로 제작가단체(사측)와 단체교섭이나 노사정 협의를 해왔다. 또한 영화진흥위원회와 함께 정기적으로 노동환경실태조사, 표준계약서 사용 확대, 직업훈련과 훈련 인센티브 지급, 임금체불 제재 등 여러 방식으로 노동조건 개선에 힘쓰고 있다.

한편 영화진흥위원회는 영화제 스태프 당사자, 노동권익 전문가 등과 함께 ‘영화제 스태프 처우개선 TF’를 만들어 지난 1월부터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고용안정성 확보 방안, 교육프로그램 등 현재 드러난 문제들의 대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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