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와 시민들이 휴대폰 제조사·이동통신사를 상대로 ‘통신요금과 단말기 출고가를 부풀린 후 고액의 보조금을 지급했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했지만 대법원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난 2012년 공정거래위원회가 휴대폰 가격을 부풀린 후 보조금을 지급해 ‘고가 휴대폰’을 ‘할인 판매’하는 것처럼 소비자를 기만한 휴대폰제조3사(삼성·LG·팬택)와 통신3사(SK·KT·LG)에 대해 시정명령과 과징금 총 453억3000만원을 부과했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본부장 조형수)는 통신사(SK·KT·LG)와 제조사(삼성·LG)의 부당한 고객유인행위에 책임을 묻기 위해 시민 80여명과 함께 같은해 10월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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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법원은 지난 18일 제조사와 통신사의 행위가 기망행위에 해당한다면서도 피해자들이 불법행위를 입증하지 못했다며 손배책임이 없다는 원심판결을 그대로 인정했다.

▲ 서울시내 한 이동통신사 판매점. ⓒ연합뉴스.
▲ 서울시내 한 이동통신사 판매점. ⓒ연합뉴스.

지난해 9월 서울중앙지법은 “출고가에 큰 금액의 보조금을 적용해 가격을 할인해주는 경우 처음부터 낮은 가격을 제시한 경우와 달리 소비자는 고가의 단말기를 싸게 구입한다는 착각에 빠져 더 강한 구매욕구를 느끼게 되므로 용인할 수 있는 과장·허위를 넘어 소비자가 단말기의 복잡한 가격구조를 모르는 상황을 이용해 거래의 중요한 사항(가격)에 관해 비난받을 정도로 허위고지한 기망행위에 해당한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피고들(통신사·제조사)이 담합해 대리점에 지급할 약정 외 보조금까지 고려해 출고가를 결정하는 행위에 위법성이 있다 하더라도 출고가 결정 자체는 원고들(소비자)과 무관하게 피고들 사이에 이루어진 행위”라며 “특정 단말기에 대해 이동통신사가 자체 자금으로 순판매가보다 크게 할인한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단말기를 판매할 수도 있다”고 했다.

재판부는 “소비자들이 출고가와 할인 폭을 확인해 단말기를 구입했고 보조금이 통신사가 아니라 제조사 장려금에서 충당됐다는 점까지 증명해야 불법행위가 성립한다”고 했다. 이어 “소비자들이 개별 피고들(제조사·통신사)이 저지른 불법행위 요건을 주장·입증하지 못했다”며 손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한편 제조사와 통신사는 공정위 과징금 부과가 부당하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2014년 12월 고등법원은 공정위 처분이 정당하다고 인정했고 이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 통신3사 로고
▲ 통신3사 로고
▲ 휴대폰 제조사 로고
▲ 휴대폰 제조사 로고

이에 공익소송을 제기한 참여연대는 대법원 판결을 비판했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는 지난 21일 “대법원이 재벌대기업들의 단말기 보조금 정책이 과장·허위를 넘는 기망행위라 인정하면서도 보조금·단말기 가격 등과 상관없이 단말기를 구입했을 수도 있다는 막연한 추측으로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을 내려 유감”이라며 “명백히 대기업 편들기 판결이며 소비자인 국민을 보호해야 할 사법부가 국민에게 과도한 입증책임을 떠넘긴 무책임하고 기계적인 판결”이라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2심 재판부와 대법원 논리를 보면 소비자들은 단말기 가격이 얼마인지, 보조금이 얼마인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결론에 이른다”며 “당연히 출고가를 고지할 수밖에 없지만 법원은 일반 거래상식과 동떨어진 논리를 내세워 제조사와 통신사에 면죄부를 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정위 처분 관련 행정소송이 4년 넘게 대법원에 계류 중인 것도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이미 2014년 12월 고등법원은 공정위 처분이 정당하다고 인정했다”며 “그런데도 대법원은 4년이 넘도록 아무런 이유 없이 판결을 지연시키고 있다”고 했다. 대법원에서도 공정위 처분이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면 이번 손배소송 결과가 달라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게 참여연대 관계자의 설명이다.

법 개정 요구도 덧붙였다. 참여연대는 “단말기 출고가 부풀리기, 단말기 보조금을 통한 가장할인 판매 관행을 뿌리 뽑기 위해서는 가해 기업들의 입증책임을 강화하고 소비자들의 피해구제를 용이하게 하는 집단소송법을 하루 빨리 개정해야 한다”며 “국회와 정부는 소비자 분야에 집단소송제를 확대도입하고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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