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가 2016~2017년 계약직으로 채용됐다가 지난해 5월 해고된 전직 MBC 아나운서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방침을 갖고 있었다는 노동위원회 판단이 나와 주목된다.

중앙노동위원회는 지난달 18일 MBC 아나운서 부당해고 구제신청 관련 심문회의를 통해 계약직 아나운서들의 부당해고를 인정했던 서울지방노동위원회 판정을 유지하는 ‘초심유지’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지난 21일 중노위 재심판정서를 보면 중노위는 MBC의 경영방침 등 구체적 근거를 들어 계약직 아나운서 해고의 부당성을 인정했다. 이보다 앞서 지노위는 관계자 진술을 부당해고 판정의 주된 이유로 봤다.

MBC가 해고한 계약직 아나운서 9명은 안광한·김장겸 전 MBC 사장 시절인 2016~2017년 1년 단위 계약직으로 채용됐다. 이들은 형식적으론 계약 기간이 있었지만 실제 정규직과 같은 지위로 채용됐다고 주장했다. “계약 기간이 정해졌더라도 입사 시 정규직 전환이나 계약 갱신을 인정했던 이들에게 계약종료 통보는 부당하다”는 것이다.

▲ 서울 상암동 MBC사옥.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서울 상암동 MBC사옥.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최승호 현 사장이 2018년 2월 취임하고 나서 사측은 계약직 아나운서들에게 계약 갱신이 아닌 ‘특별채용’ 계획을 통보했다. MBC는 특별채용 결과에 따라 근로관계를 종료했기 때문에 문제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16·17사번 계약직 아나운서 11명 가운데 특별채용된 이는 단 한 명이다.

이후 계약직 아나운서 9명은 지난해 6월 서울지노위에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제기했다. 지난해 9월 서울지노위에서 부당해고 판정을 받았다. MBC는 중노위에 재심을 신청했다. 중노위는 이를 기각하고 ‘부당해고’ 초심을 유지했다. 이와 관련 계약직 아나운서 측은 중노위 재심판정서를 지난 21일 받아 일부 공개했다.

쟁점은 아나운서들의 근로계약 갱신기대권(전환기대권) 여부다. 대법원 판례를 보면 근로계약이 갱신되리라는 노동자의 정당한 기대권이 인정되면 계약 만료 후 근로관계는 종전 근로계약이 갱신된 것과 같다. 사용자가 이를 위반해 부당하게 근로계약 갱신을 거절하는 건 부당해고와 마찬가지로 효력이 없다. 

MBC 측은 중노위에 재심을 신청하면서 “아나운서들은 갱신기대권이 있는 기간제 근로자가 아니다”, “회사는 기간제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할 의무, 요건 및 절차에 관한 규정을 갖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중노위는 재심판정서에서 계약직 아나운서들의 갱신기대권을 인정하며 이들의 고용 형태를 변경한다는 MBC의 경영방침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중노위는 “계약직 아나운서들이 근무했던 2016~2017년 당시 부서 책임자인 아나운서국장 등은 정규직 전환이 보장된다는 말을 수차례 반복했다”며 “실제로 MBC는 계약직 아나운서들을 평가 후 고용 형태를 변경한다는 경영방침을 갖고 있었다. 그 경영방침은 2018년도 특별채용으로 구체화됐다”고 밝혔다.

경영방침의 근거가 된 ‘2016년도 MBC 경영평가 보고서’(2017년 11월 발간)를 보면, 2016년 MBC 계약직이 전년에 비해 103명 증가했는데 그 이유를 “정규직 임용 전 검증을 위해 아나운서 등 일부 직무를 계약직으로 고용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보고서는 “이 경우는 일정 기간이 경과한 후에 정규직 임용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고 밝혔다.

▲ 2016~2017년 계약직으로 입사한 전직 MBC 아나운서들이 지난해 5월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부당 해고 철회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사진=노지민 기자.
▲ 2016~2017년 계약직으로 입사한 전직 MBC 아나운서들이 지난해 5월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부당 해고 철회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사진=노지민 기자.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는 매년 MBC 경영평가 보고서를 1년 단위로 작성한다. 보고서는 각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된 평가위원들이 작성한다. 작성된 보고서는 최종적으로 방문진 이사회에 상정된다. 이는 방송문화진흥회법 등 법에 기반한 절차다. 보고서 무게가 남다른 이유다. 

MBC 임원 발언도 고용 형태 전환이라는 경영방침을 뒷받침했다. 2017년 7월 방문진 이사회에서 당시 MBC 핵심 임원은 “아나운서 같은 경우 2년 계약으로 뽑은 다음 실적을 봐서 다시 사원화시키는 게 있다”고 말했다.

중노위는 이런 사정을 종합해 고용 형태 변경에 관한 방침이 아나운서국장 및 관련 간부, 실무자들을 통해 계약직 아나운서들에게 반복적으로 전달됐을 것으로 판단했다. “계약직 아나운서들로서는 근로계약이 갱신되리라는 충분한 기대를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최 사장 취임 후 계약직 아나운서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특별채용의 절차적 하자도 지적됐다. MBC는 “2016~2017년 계약직 아나운서 전체를 대상으로 정당한 절차를 거쳐 특별채용을 실시했다. 특별채용 결과에 따라 근로관계를 종료했기 때문에 근로계약 갱신 거절에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심판정서를 보면 MBC 규정상 특별채용 대상자는 ‘근무성적이 우수한 자’다. 그러나 사측은 사전에 근무성적 평가 절차를 거치지 않고 계약직 아나운서들을 모두 특별채용 대상자로 선정했다.

중노위는 “특별채용 절차는 취업규칙을 준수하지 않았고 특별채용 계획이 확정되기도 전에 절차가 진행됐다. 전체적인 전형 계획조차 대상자들에게 고지하지 않은 채 시행됐다는 점에서 정당성과 합리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계약직 아나운서들은 21일 보도자료를 통해 “하루빨리 일터로 돌아가 MBC 일원으로 녹아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현 MBC 경영진의 현명한 판단이 따를 것이라 믿고 기다린다”고 밝혔다. 

이들은 “노동자에게 해고가 어떤 의미인지 누구보다 뼈아프게 알고 있을 현 경영진은 부당해고 노동자들에 대한 소송 없는 원직 복직으로 화해와 치유의 발걸음을 내딛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MBC는 계약직 아나운서들이 노동위에서 부당해고 판정을 받은 것에 특별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내부에 법원 판단까지 받아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다. MBC가 중노위 판정을 불복하면 중노위원장을 상대로 부당해고 구제 재심 판정 취소소송을 법원에 제기할 수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