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청주 지역 민영방송사 CJB(청주방송·대표 이두영)에서 직장 내 괴롭힘과 성희롱 문제로 한 PD가 해고됐다. CJB는 7명에 달하는 피해자들이 유사 피해를 일관되게 증언함에 따라 최고 징계를 내렸다.

CJB 라디오팀장이었던 PD ㄱ씨는 지난 1월 말 열린 인사위원회에서 해고 징계를 받고 퇴사했다. 표면적 사유인 ‘회사 명예 손상’도 있었지만 이면엔 수년간 누적된 성희롱과 직장 내 괴롭힘 및 퇴직강요 등 강압행위 고발이 있었다.

전·현직 직원 9명이 진정서를 썼다. 성희롱 피해가 최종 인정된 사람은 3명, 직장 내 갑질 피해자로 간주된 사람은 5명이다. 이 중 라디오 작가였던 A씨가 당한 퇴사강요는 인사권 없는 PD가 권한을 남용했단 취지로 주요하게 다뤄졌다. 지난 11월 ‘CJB 성고충 및 직장 내 갑질 진상조사위원회’가 꾸려진 배경이다.

▲ 자료사진. ⓒpixabay
▲ 자료사진. ⓒpixabay

조사위는 유사 피해가 오래 반복돼 여러 여성 피해자를 낳은 사실에 집중했다. 성희롱 사건은 2016~2018년까지 3년에 걸쳐 있었다. 단 둘이 술자리를 계속 요구받던 중 회식 후 새벽 귀가 길에 집에서 커피를 달라는 요구를 받은 사례, 다른 여직원을 두고 처녀라고 언급한 사례, 성희롱수준의 악의적 험담을 하고 다닌 사례 등이다.  

‘강압적 지시와 고성이 일상적이었다’고 밝힌 사람은 일곱이다. 라디오작가 A씨는 3개월 간 지속된 심리적 위축이 정서적 우울감으로 이어져 현재 상담을 받고 있다. A씨는 ‘네가 팀에 얼마나 피해를 주는 지 아냐’ ‘너 없어도 잘 돌아간다’는 질책을 들으며 일했다. “방송 중 DJ 눈을 보고 있지 않아도 고성을 듣고, 회의시간에 핸드폰을 켜도 혼이 나는 게 일상이었다”고도 했다. 쉰다는 말을 못해 감기몸살을 견디면서 일을 끝낸 후 저녁 6시에 퇴근하면 ‘넌 3개월 간 휴가 없다’고 혼났다. 첫 직장에 계약서도 안 쓴 비정규직이었던 A씨는 자책만 했다.

3개월 새 체중이 4kg 줄었고 불면증이 생겼다. 퇴사 후에도 깊은 우울감이 남은 배경엔 ㄱ씨 퇴직강요 사건이 있었다. A씨는 최소 주 5일 하루 8시간 이상씩 일하며 근태도 관리받은 ‘무늬만 프리랜서’였다. 5개월 차 때 ㄱ씨는 A씨를 불러 돌연 ‘그만두라’고 언성을 높였다. A씨는 듣자마자 눈물을 쏟고 선 채로 2시간 동안 퇴사를 강요받았다. ’지금 여기서 정해라. 오늘까지만 하고 나갈래, 어쩔래’라는 말이 반복됐고 A씨는 결국 “이번 달까지 하고 나가겠다” 답했다.

비슷한 괴롭힘을 받은 한 직원은 눈물 때문에 퉁퉁 부은 얼굴로 생방송에 나간 적도 많다. 일부 피해자들은 탈모, 생리불순 등 신체 변화도 겪었다. 

조사위 결론은 ‘엄중한 징계와 특단의 피해자 보호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노·사측 관계자 각 1명, 전문가 2명으로 구성된 조사위는 ㄱ씨가 남녀고용평등법 제2조2항이 적용 가능한 성희롱과 연속적인 직장 갑질 가해를 했다고 봤다. 조사위는 9명의 진정서를 기초로 6명을 조사했고 ㄱ씨도 3회 조사했다.

▲ 사진=CJB 8뉴스 갈무리
▲ 사진=CJB 8뉴스 갈무리

PD ㄱ씨는 조사위 결론을 신뢰할 수 없어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다. 그는 피해자 진술이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은 데다 절반 이상의 사례가 허위라는 입장이다. ㄱ씨는 여직원에게 일대일 술자리를 계속 요구한 적이 없고 '커피를 달라'거나 '처녀'라는 언급을 한 적도 결코 없다고 밝혔다. 

ㄱ씨는 퇴사강요도 A씨의 업무미숙 문제 때문이고 A씨는 이후 3주 더 근무하면서 여름휴가도 썼다고 밝혔다. 갑질·고성 부분은 상사로서 업무지시를 내린 상황이거나 ‘결코 그런 말을 한 적 없다’고 부인했다. ㄱ씨는 조사위 조사가 편파적이고 부실하다고 회사 측에 소명했지만 회사는 해고를 결정했다. ㄱ씨는 같은 이유로 노조에서도 제명됐다.  

CJB 내부에선 구조적인 문제라는 진단이 나온다. 사내 성평등 문화가 제대로 형성돼 있지 않고 임원들도 무관심하단 지적이다. 실제로 CJB엔 고충처리위원회나 성희롱 관련 처벌·수습 사규가 없다.

사업주 의무사항인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CJB청주방송지부(언론노조 산하)가 충북여성회 도움으로 지난해 10~11월 전체 임직원 60명(여성 24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60명 중 41명(68.3%)이 ‘지난 1년 간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을 받아 본 적 없다’고 답했다. ‘매년 1회 이상 교육을 실시하고 있느냐’는 물음엔 32명(53.3%)이 ‘아니’라고, 14명(23.3%)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열에 여덟은 회사를 믿지 못했다. 사내에서 적절하게 성희롱 사건 처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51명(85%)이 ‘아니’라고 밝혔다. 임원의 인식개선에 대한 요구는 매우 높았다. 25명(41.7%)이 가장 필요한 조치로 관리자의 인식과 태도개선을 위한 교육을 꼽았다.

복수의 CJB 관계자들은 “관리자들이 사건 이후 뚜렷한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조사위는 지난해 12월 말 조사결과를 전하며 △사내 성비위 고충 매뉴얼 구축 △피해자 상담창구 마련 △외부전문가 참여하는 상설고충위원회 신설 △철저한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교육 시행을 권고했다.

CJB청주방송지부는 사후 수습 마련 준비에 돌입했다. 지난해 10월 진행된 성고충 실태 전수 조사도 노조가 주도했다. 노조 관계자는 “노조는 이번 사태를 엄중히 보고 재발 방지를 위해 논의 중이다. 상설고충위원회 구성, 매뉴얼 구축, 처벌조항 마련을 단체협약에 넣고 성희롱 예방교육 내실화에 힘쓸 것”이라 밝혔다.

미디어오늘은 이와 관련 20~21일 간 CJB 측에 연락을 시도했으나 답을 듣지 못했다.

※ 기사 수정시간 2019년 2월25일 10시16분 : 2차 피해가 우려돼 원본 기사 내용 중 일부를 축소·삭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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